[토요판] 천종식의 미생물 오디세이
③대장균을 위한 변론
식중독, 더러움 떠올리게 하는
우리 주변 흔한 미생물 대장균
균 자체 크게 위험하진 않지만
식품오염 간접적 지표로 사용돼
실험실에선 유전공학 발전 이끌어
대장 점막에 자리잡고 나쁜 균 막아
장에 해로운 산소 먹어치워줘
동생 ‘O157 대장균'은 조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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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대장에서 빠져나온 대장균은 공기 중에서도 쉽게 배양된다. 사진은 인공 배지를 이용해 대장균의 수를 측정하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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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미생물이 있다. 굴지의 식품회사도 벌벌 떨게 하는 공포의 세균, 바로 대장균이다. 지난 몇년간 보도된 것만 보아도 햄, 시리얼, 절임배추, 젓갈, 김 등 대장균이 검출되어 회수된 식품은 종류도 다양하다. 여러분은 대장균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질병’ 또는 ‘더러움’과 같은 안 좋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장균은 우리에게 유해하며, 그로 인해 곧바로 유죄 판결을 받아야만 하는가?
대장균은 130년 전 독일 태생의 소아과 의사 테오도어 에셰리히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딴 ‘에셔리키아’와 사람의 대변에서 발견돼 대장을 뜻하는 ‘콜라이’를 조합해 ‘에셔리키아 콜라이’(Escherichia coli)라는 학명이 주어졌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통상 이 학명을 그대로 쓰거나 ‘E. coli’(이. 콜라이)로 줄여 부르고,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대장균’(大腸菌)으로 부르고 있다. 대장균은 대장에 사는 세균을 총칭하는 단어가 아니고, 그중 한 종의 세균을 일컫는 단어다.
노벨상 12개와 유전공학 시대 연 대장균
대장균은 지난 100년 동안 가장 많은 실험의 대상이 되어온 생명체다. 자동차로 비유한다면, 대장균과 사람은 겉보기에 완전히 다른 모양과 성능을 보이지만 핵심이 되는 엔진은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실험실에서 쉽게 키울 수 있고 한마리가 20분 만에 분열해 두마리가 되는 대장균은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연구하기가 쉬운 모델 생물이 되었다. 이런 점들 덕분에 생명의 엔진 구조를 밝히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대장균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주어진 노벨상이 총 12개에 이른다고 하니 기초과학의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했다고 봐야 타당하다.
과학자들은 대장균 실험을 통해 디엔에이(DNA) 복제와 이로부터 단백질 발현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생명현상의 규명뿐 아니라 생명체를 직접 조작할 방법까지 제시할 수 있었다. 사실 수천년 전부터 인간은 육종이라는 방식으로 생명체를 조작해왔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돼지를 골라 교배시키길 반복하면 더 무거운 돼지가 태어난다. 유전자를 이렇게 한쪽으로 몰아가는 방식은 가축에게만 적용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친구가 된 개도 불과 3만~4만년 전에는 늑대였고 인위적인 육종을 통해 지금과 같은 다양한 품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지금과 같이 개의 다채로운 품종은 지구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인공적인 선택을 하는 우리 인간이 ‘자연선택설’의 ‘자연’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육종도 결국은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이 정교하지 못하고 거칠다.
여러 과학자가 경쟁적으로 대장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유전자를 이루는 디엔에이의 특정 부위를 자르고 다른 생명체의 두 디엔에이를 연결하는 ‘가위와 풀’ 같은 효소(단백질의 일종)를 발견했다. 이미 디엔에이로부터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과학계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으므로, 과학자들은 이런 여러 기술을 조합해 대장균 안에서 인공적으로 인슐린 같은 인간의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발 빠르게 이 방법의 특허를 낸 캘리포니아대학교의 허버트 보이어와 스탠퍼드대학교의 스탠리 코언 교수는 생명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재산의 소유자가 되었다. 이 특허는 후에 2000개 이상의 생명공학 제품에 사용되었으며 그 매출의 합은 35조원에 이른다. 그로 인해 스탠퍼드대가 벌어들인 특허 수익은 2000억원이 넘는다. 어쩌면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생명공학 회사인 제넨테크가 설립된 것이다. 생명공학은 대장균한테 큰 신세를 졌다.
대장균 ‘경찰론’과 ‘소방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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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필자의 대장에 존재하는 대장균이 전체 장내 세균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낸 그림. 정상적인 한국인은 대개 1% 미만의 대장균을 가지고 있으며 필자의 경우 많을 때에는 10%까지 그 양이 증가했다. 대장균의 증가와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불균형 또는 질병 간의 연관성은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밝힐 필요가 있다. 수백종에 이르는 장내 세균의 양은 대변에서 추출한 세균들의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다. 천종식 교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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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이전의 과학자들은 대변에 상당히 많은 대장균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인 대장균이 특별한 질병을 일으킨다고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주인인 우리가 우리 몸의 세입자인 대장균의 의식주를 모두 제공해주는 대신에 대장균이 우리에게 주는 이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과 대장균의 관계는 한쪽(대장균)은 이익을 얻지만 다른 한쪽(인간)은 이익과 피해를 모두 받지 않는 ‘편리공생’으로 정의됐다. 생물의 세계에서는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상리공생’이 좀 더 일반적인 관계인데 정말 우리가 대장균한테 반대급부로 받는 혜택은 없을까?
지난 20년 동안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대장균이 여러 측면에서 우리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먼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인 비타민 K와 B12를 제공한다.
여기에 인간에게 해가 없는 대장균이 대장의 점막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다른 병원균, 즉 ‘깡패’들이 들어올 틈을 없앤다는 ‘경찰론’도 다른 연구에서 제시되었다. 점막은 인간의 세포와 장내 미생물이 만나는 경계이고 여기를 차지하기 위해 많은 미생물이 경쟁한다. 병원균이 차지하면 당연히 병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 경계에는 우리 몸의 면역을 조절하는 세포의 70% 이상이 모여 있고 세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래서 점막 지역이 어떤 종류의 세균으로 구성이 되어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어찌 보면 장하고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아토피, 비만, 당뇨, 심지어는 자폐증 같은 정신질환까지 이 점막을 차지한 미생물 군집의 종류와 연관이 있다.
‘소방수론’도 있다. 대장의 내부는 캄캄하고 산소가 전혀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내 미생물은 산소가 있으면 오히려 죽어버리는 혐기성 세균이다. 그래서 대장 안에 산소가 있으면 유익한 세입자는 죽고 오히려 산소를 선호하는 깡패들이 설치게 된다. 대장균은 독특하게 산소가 있어도 또는 없어도 살 수 있다. 대장의 산소는 입이나 항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데, 대장균이 고맙게도 재빠르게 산소를 먹어주어 대장의 무산소 환경을 지켜준다. 정상적인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위해 바로바로 불을 꺼주는 ‘소방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그동안 과학에 이바지한 바와 장내에서의 활약으로 보아 대장균은 무죄인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특별히 대장균 검사를 하는가?
대장균 검사가 필요한 이유
사람은 날마다 수천억개의 세균을 몸 밖으로 배출한다. 가축이나 반려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주변에는 늘 세균이 일정한 수준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지침에 따르면 식품의 위생검사에선 보통 일반 세균 이외에 대장균의 수도 함께 조사한다. 예를 들어 집단급식소 음식 1g당 식중독 세균을 제외한 일반 세균은 3000마리까지 봐주지만, 대장균은 단 10마리 미만이어야 한다. 행주나 도마에서는 대장균이 한마리도 검출되면 안 된다. 우리의 식약처는 왜 대장균만 이렇게 미워하는가?
그 이유는 대장균의 생활사를 알면 실마리가 풀린다. 대장균은 사람과 소와 같은 온혈동물의 대장에 주로 산다. 그렇다고 대장균이 대장 미생물의 주요한 종은 아니다. 필자가 속한 연구팀이 진행 중인 ‘한국인 시민과학 프로젝트’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 대부분이 전체 세균 중 1% 미만의 대장균을 가지고 있다. 그 비율은 낮지만, 워낙 세균 수가 많기에 우리가 대변을 통해 몸 밖으로 내보내는 대장균의 수는 만만치 않다.
그럼 몸 밖으로 나간 대장균은 어떻게 될까? 대장균은 우리 주변 환경에서 잠깐은 살 수 있지만 경쟁력이 떨어지기에 결국은 도태된다. 만약 행주나 김밥에서 대장균이 검출되었다면 그건 바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대변에 의한 오염이 의심된다고 할 수 있다. 대장균 자체는 그렇게 큰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은 적지만 위생 상태에 대한 간접적인 지표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대장균은 직접적인 죄가 없어도 ‘위생지표균’으로 이용되기에 우리가 그 마릿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사람 분변에 의해 오염된 식품이나 음식의 제조 과정이라면 다른 식중독균에 의한 오염 가능성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대장균의 깡패 동생 O157:H7
같은 호모 사피엔스 중에도 선한 사람들과 함께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공존하듯이 대장균이라는 하나의 종 안에도 그런 균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O157:H7(오157:에이치7)이라는 병원균이다. 대장균 가족의 패륜아인 이 균은 진화 과정에서 착한 대장균에 비해 약 1천개의 유전자를 더 가지게 되었고 이 중 상당수가 강력한 독소 유전자다. 사람에게서는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O157:H7 대장균은 보통은 소의 장에 사는데 소에게는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소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이 세균이 고기에 묻어서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다. 소의 분변에 오염될 수 있는 채소류에서도 이 병원균이 종종 발견된다.
최근 두달간 미국에서는 샐러드용 상추에서 유래한 O157:H7 균에 의한 식중독 환자가 16개 주에서 걸쳐 발생하기도 했다. 모든 대장균은 충분히 익히면 모두 사멸한다. 소고기 스테이크도 겉을 충분히 익히면 괜찮다. 하지만 햄버거 패티같이 소고기를 갈아서 만든 식품은 대장균이 열이 잘 닿지 않는 내부에 숨어 있을 수 있어서 특별히 신경을 써서 익혀 먹어야 한다. 많이 익힌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가 스테이크는 미디엄 레어를 선호하지만 햄버거는 반드시 웰던을 먹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O157:H7처럼 6대륙의 30여 나라에서 질병을 일으킨 전과가 화려한 깡패를 가족으로 둔 대장균 전체에 면죄부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지막 판결을 해보자. 오늘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미생물, 대장균의 공과 죄를 두루 살펴보았다. 아직도 대장균이 실제 우리 장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많이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인간과 공생해온 관계라면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생명체라는 확신이 든다. 실제로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이시엔(EcN)이라고 부르는 대장균이 들어 있는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장염이나 변비 환자에게 사용해왔다. 다만 식중독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획득한 O157:H7 같은 병원성 대장균에는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인류 전체를 한가지 관점에서 정의할 수 없듯이 대장균도 그런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대장균 전체에 대한 오늘의 판결을 간단히 유죄나 무죄로만 내릴 수는 없다.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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