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22 09:41
수정 : 2018.08.2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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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튀스, <꿈꾸는 테레즈>, 1938년,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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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튀스, <꿈꾸는 테레즈>, 1938년,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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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이유리의 그림 속 육아 코드〕
1년 사이 부쩍 커버린 9살 딸아이를 위한 옷을 사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했다. 그러다 어린이 모델의 모습이 일상 속 또래 여자아이와 비교해 괴리감이 상당하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그냥 ‘축소한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하얀 피부에 분홍색 볼 터치, 붉게 칠한 입술, 고데기로 말아 풀어헤친 머리. 마치 표정 없는 도자기 인형 같았다. 뒤돌아 선 채 얼굴만 돌려 몽롱한 시선을 던지는 내 딸 또래의 모델을 보며, 나는 그냥 착잡한 마음으로 인터넷 창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걸 그룹 멤버들이 무대에 오를 때 교복을 입고, 심지어는 턱받이까지 했다는 뉴스를 봤다. 방송에서 성인 여성에게 ‘혀 짧은 목소리로 애교를 부려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을 접하며, 사회가 선호하는 여성상은 ‘무해하고 순진한 아동’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아동 모델은 성인 여성처럼 성숙한 모습으로 연출되는 양상이라니. 쇼핑몰 아동 모델이 손수 화장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걸 그룹 멤버들에게도 아이 같은 옷을 건네준 이는 따로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는 사회가 바라는 이중적인 여성상, 즉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여성을 원하는 사회의 모습이 투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성인 여성에게서 아이의 모습을 집요하게 찾고, 아이에게 어른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사회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랑스화가 발튀스(Balthus)의 1938년 작 <꿈꾸는 테레즈>가 떠올랐다. 머리 위에 두 손을 올린 채 눈을 감고 있는, 무방비 상태의 아이. 그런데 포즈가 영 야릇하다. 치마를 입은 상태로 한쪽 무릎을 의자 위에 세워 흰 속옷을 기어이 노출했다. 사실 저렇게 불안정하고 불편한 상태로 잠이 오겠는가? 꿈을 꾸는 쪽은 모델 테레즈가 아니라 오히려 어린 테레즈에게 포즈를 직접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발튀스, 그리고 어른스런 소녀를 욕망하는 남성사회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한 시민이 이 작품을 소장처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치워달라는 청원을 해 약 7000명의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사춘기 소녀를 대상으로 관음증을 자극하고 소아성애를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고 보니 큰 화제를 모았던, 미국의 유명 생활용품 브랜드의 캠페인 영상이 생각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른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고 “여자아이처럼 달려보라”고 주문했더니 그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두 팔을 흐느적거리면서 뛰었다. 그렇다면 진짜 여자아이들에게 같은 주문을 해봤더니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편견과는 달리 그들은 ‘여자아이답게’ 씩씩하고 힘차게 뛰어다녔다. 실제로 대부분의 ‘진짜 여자아이’들은 그렇게 수동적이지도, 무표정한 인형 같지도, 그리고 순진과 도발을 넘나드는 모습도 아니다.
우리 집 소녀에게 한번 주문을 해봤다. “어린이 모델이 됐다는 상상을 해보고, 포즈를 취해줄래?” 그랬더니 아이는 양손으로 허리를 힘차게 잡은 후, 얼굴이 찌그러지도록 함박웃음을 지어주었다. 비로소 현실 속 ‘진짜 여자아이’의 모습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유리 작가
sempre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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