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08 11:08
수정 : 2018.08.0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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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9일 서울 엔피오(NPO)지원센터 회의실에서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 소장이 ‘제5차 찾아가는 육아현장 간담회’를 열어 질병을 지닌 아동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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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필락시스 반응 유아
응급 상황 대처 인력 없어 거부
교육부와 전남도교육청 나서
학교 보건교사 유치원 겸임 발령
보조 간호사 채용 승인도
육아정책연구소 부모 초청 간담회
차별, 교사 이해 부족 등 목소리
국공립 기관 우선 입소 등 요청
지난 6월6일 <한겨레>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는 식품 알레르기를 앓는 아이, 특히 중증 알레르기 반응에 해당하는 아나필락시스를 앓고 있다는 이유로 병설 유치원에 입소하지 못한 민수(가명) 사례를 보도했다. (관련 기사:
어린이집·유치원 퇴짜…식품 알레르기 아이 어쩌나) 이 사례를 통해 건강 취약층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교육 및 돌봄받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를 했다.
보도 뒤 지난 두 달여 동안, 교육부·전라남도 교육청·학교·부모는 이 문제 관련해 협의하고 관련 대책을 모색했다. 그 결과 민수가 오는 20일부터 유치원에 입소할 수 있게 됐다. 민수 사례는 앞으로 민수처럼 중증 알레르기 증상인 아나필락시스 반응을 보이는 유아가 유치원에 입소할 때 응급 상황 발생 시 대처할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입소를 거부할 명분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수의 입소가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식품 알레르기 등을 앓는 아이를 위해 추가적으로 어떤 대책들이 필요한지 짚어본다.
“유치원에도 보건교사 배치 필요”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학교보건법을 개정해 학교 내 보건교사가 아나필락시스 쇼크 또는 제1형 당뇨로 인한 저혈당 쇼크로 생명이 위급한 학생에게 투약 행위 등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교장이 질병이나 장애로 특별히 관리·보호가 필요한 학생을 위해 보조 인력을 둘 수 있도록 했다.
개정된 학교보건법과 시행규칙은 5월29일부터 시행됐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초등학교 소속 보건교사가 유치원 원아까지 맡느냐 여부를 두고 혼선을 빚었다. 민수가 입소하고자 했던 전라남도 화순의 ㄷ병설 유치원에서도 “초등학교 보건교사가 초등학교 내 뇌전증 환자나 백혈병 환자 등을 보살펴야 하는데 유치원 원아까지 맡기엔 업무가 많다”고 했다. 학교는 군청 등에 간호사와 같은 보조 인력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인력 지원에 대한 답을 받을 수 없었다.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현장에서 제도가 제대로 안착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민수는 응급 상황시 대처할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유치원으로부터 가정 보육을 권유 받았다.
<한겨레> 보도 뒤 교육부는 전라남도교육청에 “초등학교 교장은 유치원 원장을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병설 유치원까지도 초등학교 보건교사가 응급 조처를 취해야 한다. 또 직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초등학교에 배치된 보건교사는 병설 유치원 유아 대상 보건 관련 업무 겸임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겸임 발령을 위한 공문을 띄우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전교조 보건위에서 초등학교 보건교사가 유치원으로 겸임 발령이 가능한지를 두고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여러 논의 끝에 “겸임 발령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교육부의 공문을 토대로 화순교육지원청은 ㄷ초등학교 보건교사에게 유치원 보건교사를 겸임하도록 발령을 냈다. 전라남도교육청 학교지원과에서는 ㄷ유치원의 보조 인력 필요성 검토해 보조 인력 채용을 승인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ㄷ유치원에서는 아나필락시스 유아를 보조할 간호사를 채용하기로 했다.
국가인권위에서도 현황 파악 필요 공감
‘병력에 의한 아동 차별’ 유무 등 검토
건강 취약층 아이 돌봄 위한
사회 제도적 시스템 디딤돌 삼아야
전라남도교육청 관계자는 “아나필락시스에 대한 응급조처 등을 이유로 보건교사 유치원 겸임 발령 및 보조 인력 요청은 도 내에서 ㄷ초등학교가 처음이었다”며 “이번 조처는 유아교육 및 돌봄이 절실한 민수를 위한 긴급 대책이지만, 이런 아이들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강 취약층 유아들이 차별받지 않고 교육 및 돌봄을 받으려면, 유치원에도 보건교사가 배치되고 급식이나 안전 등을 다루는 관련 법에서 초·중·고 외에도 유치원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기본법상 학교에는 유치원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급식이나 안전 등을 다루는 관련 하위법에서는 초·중·고로만 명시돼 있어 만3~5살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보건 인력을 늘려 유치원에도 보건 교사를 배치하고, 급식 등 관련법을 고쳐야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기관마다 다른 지원 격차도
이외에도 국책 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는 민수와 같은 건강 취약층 자녀를 키우는 부모를 초청해 의견을 듣는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 7월19일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 소장은 서울 엔피오(NPO)지원센터 회의실에서 ‘제5차 찾아가는 육아현장 간담회’를 열어 질병을 지닌 아동 부모들에게 어떤 육아 정책이 필요한지 의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는 아토피나 알레르기 등 특이 체질을 지닌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이 참석해 자녀의 기관을 이용할 때 받는 차별, 교사와 기관의 질병에 대한 이해 부족, 지역 및 기관마다 지원의 질적인 격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이 간담회에서 식품 알레르기를 겪는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교사 및 보건교사, 영양사 등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 교육이 절실함을 호소했다. 태어날 때부터 8개의 알레르기를 지닌 아이를 키우는 김아무개씨는 “어린이집 교사에게 부모가 식이 알레르기 교육을 시켜야 할 정도로 교사들이 이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진다”며 “형식적으로 하는 교육이 아닌, 제대로 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또 이런 질병을 지닌 아이들이 기관에 다닐 때 부모가 밀착해 보살펴야 하는데, 국공립 기관에 입소할 때 가산점을 부여해 우선 입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기를 요청했다. 또 대체 급식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거나 도시락을 부모가 직접 싸는 경우에는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외에도 환아동의 심리 치료 지원 필요성도 언급됐다.
관련 피해자 사례 수집 나서
국가인권위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해 ‘병력에 의한 아동 차별’이 있는지 유무 등에 대해 검토할 계획이다. 홍준식 아동청소년인권과 조사관은 “민수의 경우 교육부와 도교육청 등의 조처로 입소 문제는 해결됐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나는지 등 현황을 파악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홍 조사관은 “관련 피해자들의 사례를 수집하고, 당사자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볼 계획이며, 이 문제를 정책적 문제로 다룰 만한 사안인지 현재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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