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28 20:08
수정 : 2018.10.24 14:49
청소년의 무지갯빛 삶 담은
보기 드문 청소년희곡집 두 권
왕따와 친구 된 ‘일진’
펄떡이는 고등어 보려 떠나
여학생-청소년희곡집/배소현·황나영·박춘근 지음/제철소·1만3000원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청소년희곡집/김슬기·이오진·허선혜 지음/제철소·1만2000원
희곡집은 워낙 잘 안 팔리는 책이라 만나기 쉽지 않은데, 게다가 청소년희곡집이라니! 희곡집을 전문적으로 펴내는 출판사 제철소가 최근 청소년희곡집 <여학생>,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를 냈다.
대한민국 어른이 바라보는 청소년의 삶은 오로지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두 희곡집에 실린 ‘고등어’ ‘좋아하고 있어’ ‘후배 위하는 선배’ ‘남자 사람 친구’ 등 다양한 단막·장막극에는 상투적인 설정이 없다. 그들의 삶에 밀착해 우정과 성장, 동성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진로 고민, 성과 사랑 등 청소년의 무지갯빛 삶을 온전히 담았다.
국립극단 소극장 무대에도 오른 ‘고등어’는 주인공들의 대사는 물론이고 구성, 지문까지 빛나는 문학 작품이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인 지호와 경주는 같은 듯 다른 존재다. “나는 어쩌면 책상, 아니면 그 밑의 의자”라고 말하는 지호는 반에서 존재감이 없다. 그런 지호에게 마냥 멋있게 보이는 친구가 경주다. 경주는 학교에 오면 엎드려 잠만 자지만, 선생님들마저 움찔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일진’이다. 지호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일종의 왕따를 당하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지호가 경주에게 말한다. “꼭 혼자 작은 유리컵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 그냥 적당히 적응해야 되는 걸까. 원래는 잘 참았는데, 요즘은 잘 안 참아져. 기침처럼 자꾸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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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19일부터 29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초연된 ‘고등어’는 경주와 지호라는 여중생들의 우정과 성장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수조 속에 갇힌 물기처럼 답답한 삶을 살아가는 지호와 경주는 파닥거리는 고등어를 보기 위해 무작정 경남 통영으로 여행을 떠난다. 사진은 연극 ‘고등어’의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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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답답하지 않느냐고 묻는 지호에게 경주는 이렇게 말한다. “니가 답답한 걸 왜 니가 무시하냐? 기침 같다며. 그건 똥 같은 거 아닌가? 야, 참지 마. 변비 걸려. 니가 힘든 걸 하찮게 여기지 마, 안 그래도 참아야 될 거 존나 많은데.”
수조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답답한 삶을 살아가는 둘은 어느 날 파닥파닥 살아있는 고등어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파닥거리는 고등어와 그물에 걸려든 고등어를 힘을 합쳐 바다로 돌려보내는 두 소녀가 오버랩되며,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느라 힘겨울 청소년을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본인이 희곡작가이기도 한 제철소 김태형 대표는 “우리 삶에 이로운 제 철에 맞는 책, 제철처럼 단단한 책을 만들고 싶어 출판사 이름을 제철소라고 지었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처럼 이들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희곡은 청소년은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청소년기에 딱 맞는 물음들을 다룬다. 또 청소년기를 단지 성인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만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십대 학생들 역시 삶이라는 무대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며,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성장의 증거라는 깨달음을 건네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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