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아이 용돈 교육 잘하면 마음 부자로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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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사단법인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에서 제공하는 용돈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한 아이들이 용돈기입장 쓰는 법을 포함한 용돈관리법에 대해 배우고 있다.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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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번 추석 때 받은 돈은 내 마음대로 써도 되지? 내가 사고 싶었던 장난감 다 살 거야. 아이~ 신나~.”
김나영(41·서울 마포구)씨의 아들 태훈(8)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태훈이는 추석에 할아버지에게 5만원, 큰아버지에게 5만원, 이모들에게 3만원을 받아 총 13만원이라는 거금이 생겼다. 김씨는 아이의 말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태훈이가 더 어릴 때는 어른에게 용돈을 받으면 거리낌없이 엄마에게 주었다. 김씨는 그 돈을 아들 이름의 통장에 차곡차곡 저금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가 받은 용돈을 모아 나중에 아이 대학등록금으로 쓸 계획이었다. 물론 아이 통장에 넣지 않고 가끔은 김씨가 장보는 데 돈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아들이 이제는 어른들이 준 돈을 자신의 돈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니 약간 당황스럽다. 김씨는 “엄마가 네 통장에 저금할 테니 그 돈을 달라고 할지, 아니면 아이에게 돈을 사용할 권한을 줄지 아직 결정을 못 내렸다”고 말했다.
“돈 다룰 줄 아는 경험 있는 어른으로”
다수의 어린이 경제교육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하면, 아이가 지폐와 동전의 가치를 구별하고 물건을 살 때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단계라면 용돈 교육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대략 그 시기는 이르면 만 4~5살이고, 늦어도 초등학교 입학한 뒤부터는 용돈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용돈 교육이란, 부모가 아이에게 일정한 돈을 정기적으로 주고 그 돈을 아이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말한다. 용돈 관리를 통해 수입, 지출, 저금, 기부, 소비, 투자 등의 경제적 개념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미국의 개인자산관리 인기 칼럼니스트 론 리버는 <내 아이와 처음 시작하는 돈 이야기>에서 “용돈의 가장 큰 장점은 인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라며 2011년 뉴질랜드에서 진행된 한 연구를 소개한다.
돈 가치 아는 경제적 개념은 기본
참을성, 호기심, 균형감까지
이르면 만 4~5살부터 시작
너무 적게 줘도, 너무 많아도 탈
처음엔 하루에 한번 주다가
점차 기간 늘려 주 2회, 주 1회 등으로
계약서 작성하고 기입장 쓰게
확인하되 문책하지 않아야
시험성적이나 함께해야 할 집안일엔
추가용돈 보너스 주지 말아야
명절·생일 등 특별한 날 목돈은
전액 통장 넣고 스스로 관리하도록
당시 1000명의 출생부터 32살까지를 추적 연구했더니, 어린 시절 자제심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자제심이 많았던 사람들에 비해 저축도 덜 하고 집이나 주식을 소유할 확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신용상의 문제도 많았다. 연구진은 이 연구를 통해 어린 시절 자신이 속한 사회적 계층이나 지능지수보다 자제심의 유무를 통해 성인이 되었을 때의 금전적 문제를 더 잘 예측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론 리버는 “용돈 교육은 부모가 아이를 15~20여년 동안 돈을 다루어본 경험이 있는 어른으로 키워낼 기회”라고 말한다. 그는 또 돈의 가치를 이용해 아이에게 참을성, 겸손, 관대함, 호기심, 균형감 같은 덕목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태훈이 어머니도 올 추석 때 아들이 받은 용돈을 본격적인 용돈 교육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나이별로 규모와 쓰임새 정해야
아이에게 언제 얼마를 주고 어떤 방식으로 용돈 교육을 해야 할까? 일본의 금융교육 전문가 사카키바라 세쓰코는 <행복한 부자로 키우는 우리 아이 용돈 교육>에서 “용돈을 너무 적게 주면 앞으로의 즐거움이나 목적을 위해 돈을 모으는 습관을 기를 수 없고, 너무 넉넉히 주면 아껴 쓰고 절약하는 마음을 키울 수 없다”고 말한다.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에서 용돈 교육을 꾸준히 해온 정민주 금융교육 강사는 연령별로 적절한 용돈의 규모와 용돈 쓰임새를 정할 것을 권한다.
6~7살 정도의 아이라면 처음에는 매일 100원씩 돈을 주고 절약하는 습관과 참는 습관을 길러준다. 매일 100원씩 모아 일정 돈이 모이면 일정 금액을 저금한 뒤, 나머지 돈으로 아이는 원하지만 엄마가 잘 사주지 않는 과자나 학용품, 장난감 등을 살 수 있도록 허용한다. 처음에는 용돈을 하루에 한번 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 2회, 주 1회, 2주에 1회로 간격을 늘려나간다. 초등학교 1~2학년 정도가 되면 주 2회를 주되 한 번에 500~1천원 범위가 적당하며, 초등학교 4학년 정도가 되면 일주일에 2천~3천원이 적절하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한 주당 용돈이 5천원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정 강사는 “아이에게 용돈을 주기로 했다면 아이와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용돈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라”고 말한다. 계약서에는 용돈 액수와 시기, 저축 비율을 포함한 사용 범위, 추가 용돈 받는 방법, 그 외 용돈과 관련한 세부적인 사항들을 반드시 명시한다. 용돈을 주면 반드시 일정 액수를 저금할 수 있도록 하되, 저축 비율은 받은 금액의 50% 이하로 정한다. 또 용돈기입장을 작성하고 부모가 확인한다는 사실도 명시한다. 단, 부모는 용돈기입장을 확인하되 어디에 썼는지는 추궁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부모가 사용처를 꼬치꼬치 따지기 시작하면 아이는 용돈을 사용한 이유를 솔직하게 적지 않고,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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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나 추석 등 특별한 날 아이가 친척들로부터 받은 목돈은 아이 통장에 전액 넣어주고 통장은 스스로 관리하도록 하는 게 좋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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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사줘야 할 것과 용돈으로 사게 할 것
부모가 용돈을 주기 시작하면 아이를 위한 물건을 살 때마다 ‘용돈도 주는데 이것을 내가 사줘야 하나’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에게 용돈을 주는 목적은 인내심을 가르치고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따라서 기본 학용품이나 책 등은 부모가 사주되,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샤프펜슬이나 꼭 필요하지 않은데 자신이 원하는 학용품, 장난감, 친구 생일 선물 등을 스스로 용돈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만약 아이가 5천원 이상의 고가의 장난감을 갖고 싶어하거나 자신이 원해서 피자나 치킨 등 외식을 하고 싶어하면 비율제를 적용한다. 부모와 아이가 6 대 4나 7 대 3의 비율로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시험 점수를 높이면 용돈을 올려주겠다거나 집안일을 도우면 용돈을 주겠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부에 관련된 것이나 자기 방 치우기, 가방 챙기기, 책 읽기, 장난감 정리와 같이 스스로를 위해서 하는 것에 대해 용돈을 추가로 지급해서는 안 된다. 집안일 역시 마찬가지다. 설거지나 방 청소 같은 가족 모두가 함께해야 할 일에 추가 용돈을 지급하는 것은 좋지 않다.
정 강사는 추가 용돈을 지급해도 좋을 일은 아이 스스로 ‘조금 힘들구나’라고 느낄 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못 박는다. 실내화 빨기, 구두닦기, 엄마 아빠가 요청한 신문 스크랩, 분리수거 날에 맞춰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분리수거책임제, ‘일요일 대청소 전담’ 등 집안일 전담제, 전기 절약 등이 추가 용돈 지급이 가능한 일들이다.
추석 때 친척들로부터 받은 목돈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초등학교 3학년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이것은 너무 큰 돈이고, 나중에 네가 꼭 필요할 때 써야 한다”고 말하고 아이 통장에 전액 넣어준다. 이때 반드시 아이가 통장을 스스로 관리하도록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일정 부분은 아이에게 떼어주고 아이 스스로 저축하고 통장을 관리하도록 한다.
용돈기입장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 초등학교 1~2학년에게는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정도만 기록하도록 한다. 거스름돈 계산이 어려워 기록 자체를 싫어하는 아이도 있기 때문이다. 결산을 포함한 제대로 된 용돈기입장은 3학년 이상부터 꾸준히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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