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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27 11:31 수정 : 2018.10.05 17:06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를 쓴 오은영 박사가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찻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오은영 전문의가 권하는 감정조절법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를 쓴 오은영 박사가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찻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각종 비리 의혹에 이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불법 성매매 의혹 동영상 보도로 많은 사람이 욱하는 날이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초콜릿 전문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을 만났다. 그가 펴낸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가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제치고 7월 2주와 3주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육아 프로그램에서 아이의 문제행동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제시해온 오 원장의 이 책에 왜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걸까. 그에게 우리 시대 부모를 비롯한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욱하는 감정의 정체가 뭔지, 또 어떻게 욱하지 않고 자녀를 대할 수 있는지 들어봤다.

슬픔, 걱정, 불안, 실망, 분노인지
먼저 감정 정체부터 파악해야

차선 바꿨다고, 불친절하다고
아이가 떼를 쓴다고…
성인 절반이 분노조절장애

과정 생략하고 빨리빨리 결과만
압축성장 사회에 뿌리

교육이나 육아도 마찬가지
‘빨리 많이 먼저…’ 다그쳐

분명한 지침 주고 허용-불가 확실히
외면도 무시도 말고 지켜봐야

갈등 조정하는 ‘도덕 발달’ 미성숙도 원인

 “‘욱’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확 와닿았을 거예요.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는 데 미숙한 사람이 많거든요. 자기 감정을 잘 알고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참았다가 욱하고 폭발하는 사람이 많아요.”

 오 원장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대한정신건강의학회에서 2015년 발표한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 절반이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다. 운전 중에 내 앞에 가던 차가 갑자기 차선을 바꾸면 욕설을 퍼붓다 싸운다. 식당 직원이 불친절하다고 폭행을 하고, 아이가 떼를 쓴다고 때린다. 자신의 감정을 잘못된 방식으로 분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우리는 왜 욱하는 감정에 휩싸여 있을까.

 “우리 사회는 산업혁명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압축성장을 했습니다. 정치경제, 사회문화적으로 모든 면에서 과정이 생략된 경우가 너무 많아요. 어떤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하는 과정을 ‘러닝 프로세스’라고 하는데, 이것이 생략되고 결과만 중시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죠.” 결과만 평가하는 효율성 제일주의는 우리 사회가 중시해온 가치였다. 건물을 지어도 안전하고 튼튼한 것보다 빨리, 높이 짓는 것을 중시했다.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한 연구개발보다 외국 기술을 들여와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기에 급급했다. 그는 ‘도덕 발달’의 미숙도 ‘욱하는 사회’의 원인으로 꼽았다. “누구나 자신에게 옳은 명제, 참된 명제가 있습니다. 사회에서 이런 명제들끼리 충돌하고 갈등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럴 때 상위의 개념들이 충돌하지 않게 조정하고 타협하는 것이 도덕 발달인데,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이런 것에 취약하죠.”

감정도 과정 빼고 무조건 없애려

 교육이나 육아도 마찬가지다. 원칙을 지키고 본질을 추구해야 하는데, 많은 것을 빨리 가르치려다 보니 선행학습이 일상화됐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부정적 감정이라도 느끼고, 표현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그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은 생략한 채 무조건 없애려 한다. 아이가 울면 “남자가 씩씩해야지. 왜 울어!”라며 감정을 부정하고, 징징대면 ‘왜 아이가 징징댈까’ 궁금해하지 않고 “왜 이렇게 징징대!”라며 소리부터 지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감정은 억압되고 마음 깊은 곳에 딱딱한 덩어리를 만든다. 꾹 참다가 이 감정의 덩어리가 어떤 계기로 폭발적으로, 공격적으로 터져나오는 것이 ‘욱’이다. 

 “인간의 감정이 잘 발달하려면 최소 20년이 걸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아이에게 감정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역할모델이 되어야 하고, 사회에서도 다양한 감정 처리 방법을 배워야 하지요. 만약 내가 부모나 사회로부터 감정조절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내 감정을 잘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오 원장은 내 감정이든, 아이 감정이든 먼저 관찰하라고 강조했다. 욱하는 감정이 슬픔인지, 걱정인지, 불안인지, 실망인지, 분노인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정체를 파악하는 게 감정조절 첫 단계라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누구도 해결되지 않은 나의 감정을 다른 이에게 폭발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울든, 징징대든, 떼를 쓰든,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욱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아무리 아이가 욱할 만한 상황을 만들어도, 내 감정의 주인은 나다. 소리 지르고 야단치고 때리는 것은 잘못된 표현방식이고, 전적으로 내 탓이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뒤 아이가 도발했다는 식으로 말해선 안 된다. 오 원장은 “내 감정을 파악하고 ‘이렇게 화를 내는 사람이 나구나’라고 인정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성찰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 좋은 부모”라고 말했다. 

부모 스스로 감정 대물림 끊어야

“아이 입장에서 집안은 가장 안전한 곳이 돼야 합니다. 부모는 나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내 감정을 수긍해주는 존재여야 합니다. 그렇게 아이의 의존욕구가 충족돼야 그 아이는 결핍이 적고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지요.” 다만 그는 감정 수긍이 모든 것을 허용하라는 얘기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분명한 지침을 주고 허용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가르쳐야지요.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에게 안 된다고 하면 아이는 불편한 감정을 느껴요. 악을 쓰고 울고불고할 수 있어요. 아이가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도 부모가 잘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해요.” 아이의 감정을 외면하지도 무시하지도 말고 ‘그래, 네가 화나는 것은 알겠어’라고 있는 그대로 수긍해주고, 아이 스스로 진정될 때까지 지켜봐주면 그때야 아이는 감정조절법을 배운다고 조언한다. “평소에 잘하다가도 이럴 때 훈육한답시고 소리 지르고 화내고 협박하면, 아이는 혼란스럽죠. 아이의 의존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결국 이런 아이가 욱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감정은 대물림된다. 압축성장 사회에서 현재 부모세대는 자신의 부모나 사회로부터 감정조절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오 원장은 “많은 부모가 이런 얘기를 하면 펑펑 운다”며 “가족 속에서 나의 정서발달은 어땠는지,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무엇인지 성찰하고, 부모 스스로 감정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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