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기업의 직장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수업을 듣고 있는 장면이다. 직장어린이집은 부모에게는 근무 시간 동안 어린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육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에는 가족 친화적인 기업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으며 우수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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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초과로 3년째 대기 중” 50명 미만이 절반
공간 확보 어렵고 공동화 우려해
기업들 소규모로 운영 그나마 직접 설치보다 위탁보육
연령별 자리·집과 거리 안 맞기 일쑤 기업 공동 설치로 규모 늘리거나
지역 사회에 개방해 ‘공동화’ 대처 국내 최대 게임업체에 다니는 ㄱ씨는 5살 아이를 3년째 직장어린이집에 보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언론에서 모범 사례로 꼽힌 이 회사의 직장어린이집은 아이티(IT) 기업의 근무 성격에 맞게 아침 8시부터 밤 9시 반까지 운영하고 질 좋은 보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인기가 있다. ㄱ씨는 “전체 직원이 수천명인데 회사는 달랑 100여명이 다니는 어린이집을 만들어놓고 생색만 낸다”며 “아무리 좋은 직장어린이집이 있어도 내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 보니 한번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계속 다니는 아이들이 많고, 입소 시기가 맞지 않으면 직장어린이집이 있더라도 자녀가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ㄱ씨는 “회사가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홍보할 것이 아니라 수요에 맞춰 어린이집을 확대하는 등 별도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데 별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근로복지공단 산하 직장보육지원센터에 따르면, 2014년 12월 말 기준 전체 직장어린이집 가운데 정원이 50인 미만인 사업장이 전체의 51.16%에 이른다. 정원이 100명 이상인 곳은 전체 사업장의 18%에 불과하다. 김온기 푸르니보육지원재단 상임이사는 상당수 기업들의 직장어린이집이 소규모인 이유에 대해 사내에 설치하려다 보니 공간 확보의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2013년 옥외 놀이터 등을 허용하기 전까지는 50인 이상의 원아를 수용하려면 집단 급식소나 놀이터 기준을 별도로 충족해야 했기 때문에 편의상 50인 미만으로 짓는 기업이 많았다고 한다. 또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우려도 한몫했다. 김 상임이사는 “정확한 장기 수요 예측과 함께 주변 기업들과 공동으로 어린이집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직원들의 수요에 맞는 어린이집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수출입은행이나 한국개발연구원 등은 소규모 직장어린이집으로 시작했다가 직원 수요가 늘면서 차차 규모를 확대해 직원들의 만족도가 크다고 김 이사는 전했다. 정부는 그동안 일정 규모의 회사들이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지 못하면 영유아를 키우는 직원들에게 보육 수당을 주는 것도 허용했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부터 보육 수당을 인정하지 않고 여러 이유로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지 못할 경우 근로자 영유아의 30% 이상에 대해 지역 어린이집과 위탁계약을 맺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이 같은 위탁 보육안에 대해 해당 회사의 직원이 실질적으로 위탁 기관을 이용하려면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기업이 직장 보육을 제공한다는 요식행위에 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대표 보안회사에 다니는 ㄴ씨는 지난해 회사가 위탁 계약을 맺은 보육기관 7곳에 3살 아이를 맡기려 했지만 결국 어떤 곳에도 맡기지 못했다. 회사는 위탁 보육기관과 계약을 맺으면서 연령대별로 정원을 책정했다. 마침 한 곳에 한 자리가 생겨 ㄴ씨가 아이를 입소시키려 했는데 여직원에게 순위가 밀렸다. 다른 기관 3살 반에는 이 회사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ㄴ씨는 “위탁 보육기관에서 빈자리가 생기는 연령과 내 아이의 연령이 맞아야 하고, 집과의 거리 등을 따지다 보면 회사가 아무리 위탁 보육기관을 여러 곳 정해도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ㄴ씨는 개인적으로 다른 보육기관에 아이를 맡겨야만 했다. 법적으로는 근로자 영유아의 30% 이상만 위탁 계약을 맺으면 되기 때문에 회사는 ㄴ씨에게 다른 조처를 취해주지 않았다. ㄴ씨는 “회사가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하면 할 일 다했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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