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12.22 19:37 수정 : 2018.09.17 17:43

지난달 1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 매현초등학교에서 열린 매현병설유치원의 신입 원아 추첨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추첨함에서 탁구공을 뽑고 있다. 이날 추첨에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추첨에 참가한 모두가 비닐장갑을 착용했다. 연합뉴스

[베이비트리]
대도시·농어촌 일부 지역은 부족하나
영유아수 대비 시설 총량은 충분
집 근처라도 질 안좋으면 선택 안해
충원율 70% 이하 서울 유치원 14.4% 달해
유치원 주변환경·비용 개선 방안 나와야
정책 목표 너무 많아…우선순위 검토를

대학 입시를 방불케 하는 서울시 유치원 입학 경쟁이 올해 또다시 재연됐다. 서울시교육청이 중복 지원으로 인한 지나친 경쟁을 막기 위해 가나다군별로 총 4회만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까지 내놨지만, 각종 행정 절차의 미숙으로 오히려 혼란만 가중됐다. 4회 추첨 가운데 원하는 곳에 당첨되지 못한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만족스럽지 않은 기관에 아이를 보내야 하거나 영어학원과 같은 대안을 알아보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유아를 둔 부모들은 막대한 재정이 무상보육에 투입되고 있어도, 왜 집 가까운 곳에서 마음 편하게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낼 수 없는지 불만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유치원·어린이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일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은정 부연구위원이 최근 내놓은 ‘영유아 보육·교육기관의 수급 현황 및 지리적 접근성’ 연구를 보면, 현재 국내 보육·교육 시설의 총량은 영유아 수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부 대도시나 농어촌 지역에서 유치원·어린이집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런 지역에 사는 부모들일수록 치열한 입학 경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서울 서초·마포·송파·용산구 등지에서는 보육·교육 시설 현원이 해당 지역 만 0~5살 인구의 50% 안팎이다. 2012년 현재 우리나라 평균 시설 이용률은 73%이므로, 이들 지역은 공급 부족으로 볼 수 있다. 서초·송파 지역의 경우 아이를 영어학원 등에 보내려는 부모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시설이 적은 편이다. 이외에도 진안, 옹진, 보성, 강진, 의령군 같은 농어촌 지역도 수요에 비해 시설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원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지역별로 각 동에 영유아가 얼마나 분포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정부가 지역별 시설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 임대료나 영유아 수가 부족해 민간시설이 쉽게 진입하지 않는 곳은 정부가 공공성을 위해 시설을 공급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지역 유치원 원아 선발 추첨 첫날인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유치원에서 4살배기 딸이 유치원생으로 당첨되자 어머니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시설 수가 부족하지 않은데도 입학 경쟁이 치열하고 학부모들의 불만이 계속되는 곳도 있다. 전문가들은 부모들이 교육철학과 맞벌이 여부 등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기관을 선택하므로 시설이 충분해도 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시교육청 정책연구과제였던 ‘유치원 원아모집 방법 개선방안 연구’ 최종보고서를 보면, 서울시 사립유치원 674개 가운데 모집 정원의 50~69%만 충원한 유치원이 67개(9.9%)이고, 50%도 충원하지 못한 유치원이 30여개(4.5%)나 된다. 4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직장맘 김태은(35·서울 성북구)씨는 “시설이 노후됐거나 도로 가에 있어 아이의 안전 문제가 걱정되는 기관은 아무리 가까워도 꺼려진다. 또 놀이터 공간 등 기관을 둘러싼 환경과 추가 비용·셔틀 유무 등을 고려하면 가고 싶은 기관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은혜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보고서에서 “입소 경쟁 문제는 단순히 접근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비용 대비 질 좋은 공교육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요구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정책이 결합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또 주로 연령이 어릴 때는 어린이집을 선호하지만 4~5살이 되면 유치원에 대한 수요가 늘고 7살이 되면 병설 유치원 등에 대한 수요가 느는 등 연령별 수요도 정책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무상보육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가 너무 많고 우선순위가 없어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출산 문제,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 미래 인적자원인 아동에 대한 공정한 교육의 기회 보장, 보육비 부담 경감 등 다양한 정책적 목표를 해결하려다 보니 가야 할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 자녀, 맞벌이 가구라 하더라도 기관 입소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나타나는 등 정책의 실효성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세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고 있는 김아무개(40·서울 구로구)씨의 예가 그렇다. 김씨는 4살인 셋째 아이를 아파트에 있는 가정식 어린이집에 맡겨왔다. 집 근처에는 병설 유치원 1개, 구립 어린이집 2개, 사립 유치원 2개가 있다. 김씨는 이번 유치원 추첨에서 병설 유치원에만 참여했는데 합격하지 못했다. 김씨는 “병설 유치원은 특별활동비도 저렴하고 추가 비용이 거의 없다. 사립 유치원은 추가 비용이 30만~40만원이나 들어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셋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집 근처 구립 어린이집 두 곳에 대기 등록을 해놓았지만, 여전히 대기 순번이 8번과 13번이다. 김씨는 “다자녀, 맞벌이 가구지만 유치원 입소할 때는 우선순위 혜택이 없었다. 어린이집은 우선순위 혜택이 있지만 최근 두 자녀 부모에게도 세 자녀와 동등한 자격을 주면서 대기 순번이 미뤄졌다. 정부가 저출산이나 일·가정 양립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선순위 등에 대한 정책도 정책 목표에 맞춰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