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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4 22:39 수정 : 2018.05.18 10:10

[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 한국사회는 어떤 장면으로 기억되는가

1996년 헌재 결정 이후 10년간
‘표현의 자유’ 힘입어 소재 다양화

386세대·X세대 영화판 유입
기존과 다른 개성적 작품 쏟아져

대형 투자·배급사 등 자본력은
양적 성장·질적 퇴보 ‘명암’ 엇갈려

<한겨레>가 창간 30돌을 맞아 선정한 1988~2018년 한국영화 30편을 시기별로 보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 사이에 나온 영화들이 집중적으로 꼽혔다. 1988~1995년 영화가 7편, 1996~2006년 영화가 16편, 2007~2018년 영화가 7편이다. 1996~2006년 나온 영화들이 30편 중 절반을 넘는다.

새로운 감독군이 대거 등장해 이전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타일과 이야기로 무장한 작품들을 폭발적으로 쏟아낸 이 시기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실제 선정된 이 시기의 작품들을 보면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97년 <넘버3> <접속> <초록물고기>, 98년 <8월의 크리스마스>, 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000년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 <박하사탕>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2001년 <소름>, 2002년 <복수는 나의 것>, 2003년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지구를 지켜라!>, 2004년 <송환>, 2006년 <괴물> 등으로 극영화 15편 가운데 8편이 감독 데뷔작이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로 봉준호 감독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고, 같은 해 박찬욱 감독은 세번째 연출작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영화는 왜 이 시기에 르네상스를 맞은 걸까? 먼저 제도적 변화를 들 수 있다. 96년 10월4일 헌법재판소는 영화 사전심의제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97년 상영등급제가 도입됐고, 영화의 삭제, 수정 등을 지시하는 검열은 사라졌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영화가 다룰 수 있는 소재와 주제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여기에 포스트모더니즘 등 국외 문화담론이 밀려들어오면서 ‘싸구려 소비재’였던 대중문화가 하나의 문화적 텍스트로 격상됐다.

이와 함께 대중문화와 할리우드 영화를 불량식품 간식이 아닌 ‘일용할 양식’으로 먹고 자라며 충무로 도제 시스템이 아닌 방식으로 영화를 공부한 감독군이 등장했다.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홍상수, 허진호, 김지운, 류승완 등이 그들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체제 변화와 문화 변혁을 꿈꾼 386세대와 개인의 문화적 욕구가 강한 엑스(X)세대가 대거 영화판으로 들어오면서 기존과 다른 문법의 영화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양대 재학 시절 영화운동에 뛰어들어 영화단체 ‘장산곶매’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를 공동 연출한 장윤현 감독이 헝가리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돌아와 충무로 데뷔작으로 만든 <접속>(1997·22위)은 “한국영화 기획의 분기점”(송형국 평론가)으로 꼽힌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작사 명필름과 함께 작품을 발전시키면서 당시 젊은층의 트렌드를 반영한 소재, 기존 멜로드라마와 다른 세련된 플롯, 폭발적 반응을 일으킨 영화음악까지 이후 충무로 멜로영화의 공식을 재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 감독뿐 아니라 이은 필름 공동대표, 홍기선·공수창 감독 등 ‘장산곶매’ 출신 영화인들은 이후 한국영화가 다양성을 확보하고 질적, 양적 성장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위를 차지한 송능한 감독의 데뷔작 <넘버3>도 도드라진다. 주인공 한석규를 비롯해 최민식, 송강호 등 충무로를 이끌어갈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 이 영화는 조폭보다 더 조폭 같은 검사를 등장시킨 풍자 코미디극이었다.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덜떨어진 조폭을 연기한 송강호는 이 영화를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송 감독은 1999년 <세기말>을 내놓은 이후 영화판을 떠났다. 허지웅 평론가는 “나에게 9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딱 한 작품만 고르라면 당연히 이 소스라치게 웃기는 걸작이어야 마땅하다”며 “단언컨대 송능한이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한국에 계속 남아서 작업을 했더라면 2000년대 한국영화는 지금보다 더 풍요로워졌을 것”이라고 애정을 나타냈다.

송 감독의 대학 영화동아리(서울대 ‘얄라셩’) 선배였던 박광수 감독과 장선우 감독은 일종의 ‘낀’ 세대로 80년대 충무로를 경험하면서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박 감독이 내놓은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의 작품들이 다음 세대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면, 장 감독은 <경마장 가는 길>(1991),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등에서 한국 사회의 위선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나쁜 영화>(1997), <거짓말>(1999) 등의 도발적 작품으로 스스로 논쟁의 중심에 서면서 끊임없이 후배들을 자극했다. 이번 선정에서 두 감독은 <칠수와 만수>(1988), <우묵배미의 사랑>(1990)으로 같은 순위(18위)에 올랐다.

영화계가 산업적으로 급작스럽게 발전한 것도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주요한 배경이다. 90년대 중반 씨제이(CJ)가 영화산업에 뛰어들면서 대형 투자·배급사 시대가 열렸다. 98년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에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인 씨지브이(CGV)가 문을 열면서 복합상영관 시대를 맞았다. 심재명(명필름), 차승재(싸이더스) 등 재능 있는 제작자들의 활약과 강우석의 시네마서비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배급 3강체제의 등장으로 영화 제작·배급이 체계화되면서 한국영화 시장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들어 대기업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부작용도 심각해졌다. 대자본이 집중되며 안전한 기획영화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한 작품의 대규모 흥행이 비슷한 기획작들의 범람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시각과 파격적 실험은 사라져갔다. 선정된 30편 가운데 2010년 이후 주류 영화로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만이 눈에 띄는 이유다. 오동진 평론가는 “한국영화계는 거대자본의 독점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표현의 자유 억압으로 위기를 맞았다”며 “시장에만 맡겨선 안 되고 국가 정책이 움직여 종 다양성을 회복하는 것만이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다시 여는 길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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