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8.31 08:54 수정 : 2018.08.31 13:35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19) 미얀마 최초 공개결혼 동성가족

19세기 영국 제국주의가 심은 ‘형법 377조’
‘자연 섭리에 어긋나는 성관계 금지’ 아시아 옛 식민국가들에 잔재로 남아

틴코코-묘민텟, 2014년 결혼식 ‘감행’
형사처벌 피했지만 사회적 관계 단절
입양한 아들은 법적으로 한부모 자녀

“숨기고 사는 많은 가족들 목소리 내야”
형법 377조 폐지·동성결혼 법제화 등
성소수자 인권 신장 위해 다양한 활동

[인터랙티브] 바로가기▶ <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평화원정대, 희망에서 널문까지>

지난 7월 하순 <한겨레> 평화원정대는 미얀마를 거쳐 타이에 이르렀다. 지난 4월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한 여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으나, 큰 차질 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7월23일(현지시각),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라오스에서 에스케이(SK)건설이 시공하던 댐이 무너져 수많은 희생자가 목숨이 희생됐다. 평화원정대는 일정을 중단하고 사고 지역으로 달려갔고, 한국 언론 최초로 피해 마을에 진입해 참극의 현장을 보도했다. 한반도를 향한 지체된 일정은 8월 들어 재개됐지만, 앞서 미얀마와 타이에서 취재한 내용을 보도할 기회를 놓쳤다. 일상의 행복과 평화를 바라는 두 나라 사람들의 메시지를 늦게나마 전한다.

7월19일(현지시각) 미얀마 양곤에서 묘민텟(왼쪽부터)과 코코텟, 틴코코 세 가족이 <한겨레> 평화원정대와 인터뷰를 마친 뒤 가족사진을 찍고 있다. 동성 커플인 묘민텟-틴코코는 지난 2014년 미얀마 최초로 공개 결혼식을 올렸으며, 2년 전 코코텟을 아들로 입양했다. 양곤/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틴코코(38)와 묘민텟(40)은 동일 전과의 범법자 커플이다. 둘은 동시에 미얀마 형법 377조를 어겼다. 최고 징역 10년형까지 가능한 범죄다. ‘377’은 이 나라 입법부가 임의로 매긴 수가 아니다. 같은 내용의 ‘형법 377조’는 인도에도 있고,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도 있다. 이성애를 제외한 모든 관계를 처벌하도록 하는, 이른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성관계 금지’ 조항이다. 지금은 왕실에서도 동성결혼을 하는 영국이 19세기 식민지 국가들에 동시에 심어놓은 뿌리 깊은 잔재다.

틴코코와 묘민텟은 지난 2014년, 사귄 지 10년 되는 것을 기념해 범법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둘은 호텔을 빌려 결혼식을 올렸다. 사람들을 초대하고 케이크도 잘랐다. 여기까지는 여느 결혼식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동성 커플의 공개 결혼식은 미얀마에서 최초의 일이었다. 나란히 남성 전통복장을 입은 두 사람의 모습과 사연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물론 좋은 의미만의 ‘주목’은 아니었다.

“당당하게 행동하려고 애썼어요.”(틴코코)

지난달 19일 양곤에서 <한겨레> 평화원정대와 만난 두 사람은 모두 두 겹의 표정을 갖고 있었다. 위로 드러나는 행복과 아래로 깔리는 그늘.

“결혼식 뒤로 회사 동료나 친구들로부터 일제히 연락이 끊어졌어요. 부모님도 6개월 정도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결혼식을 공개하기로 결정할 때부터 예상했던 거라 크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다만 형법 377조를 위반하면 어떤 처벌이 뒤따를지 몰라 두려웠습니다.”(묘민텟)

한동안 이들은 언제 경찰이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실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377’은 두 사람에게 사회적 낙인으로 깊이 새겨졌다. 틴코코는 “미얀마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정신적 문제나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 심지어 죄를 갖고 태어난 사람으로 보는 사회적 편견이 큰 장벽이다”라고 말했다.

2013년 미얀마 2대 도시 만달레이에서는 경찰들이 트랜스젠더 여성들을 체포해 옷을 벗도록 강요한 뒤 경찰서로 데려가 폭행하고 성적 학대까지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 당국은 “트랜스젠더가 모이는 것을 막는 공공서비스를 했던 것”이라며 폭행과 학대에 가담한 경찰관들을 두둔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미얀마에서 성소수자의 정체성 공개는 여전히 위험하고, 국가는 그 위험의 방조자를 넘어 유발자이기도 하다.

지난 2014년 결혼식에서 묘민텟과 틴코코가 샴페인을 따르고 있다. 묘민텟-틴코코 제공

_________
가족 꾸리고 싶은 건 보편감정…범죄 취급 않는 세상 만들 터”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싶었어요.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어떤 위험도 감수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결혼식을 올린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틴코코와 묘민텟은 여전히 ‘가족’이 아닌 ‘동거인’이다. 법으로도 그렇고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다. 가족과 동거인은 얼핏 동의어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의 간극은 까마득하다.

틴코코와 묘민텟은 가족관계등록증에 같이 기록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가족이 구성되면 공동으로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과 세금 감면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한다.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발생하는 유산도 법적으로 증여하기가 쉽지 않고, 증여가 가능해지더라도 매우 큰 증여세를 낼 수밖에 없다.

틴코코와 묘민텟 사이에는 세살배기 아들 코코텟(3)이 있다. 2년 전 지인한테서 보육원 입소 직전의 아기를 소개받았다. “똘망똘망한 눈을 보며 바로 입양을 결심했어요. 이 아이가 보육원으로 가 외롭게 크는 것보다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틴코코와 묘민텟의 결정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아이의 이름은 두 사람 이름에서 하나씩 따와 지었다.

요즘 틴코코와 묘민텟은 코코텟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다. 조금씩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워가는 코코텟이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 없다. 그러나 법적으로 이들 세 사람의 삼각형은 완성될 수 없다. 틴코코와 묘민텟이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틴코코가 한부모 가정의 아이로 코코텟을 입양할 수밖에 없었다. 틴코코와 코코텟은 법적으로 부자 관계이지만, 묘민텟은 남이다.

코코텟이 성장하면서 겪게 될 혼란도 큰 걱정거리다. 지금은 두 아빠가 낳은 아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누가 엄마 역할을 할지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코코텟이 아직 어려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틈날 때마다 우리의 관계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틴코코는 다른 성소수자들과 만나는 자리에 코코텟을 꼭 데리고 간다. 동성애자의 삶이 비동성애자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두 사람과 성소수자 공동체 안에서 코코텟은 혼란을 극복하고 편견 없이 자랄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코코텟이 이들 공동체 안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

틴코코는 코코텟이 머잖아 학교에 들어가면 ‘엄마는 죽었다’거나 ‘원래 엄마가 없다’고 소개하도록 가르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말하는 틴코코나 듣는 묘민텟이나 얼굴빛이 어두웠다. 자식 문제에서 부모는 누구나 약자다. 틴코코와 묘민텟은 자신들의 존재가 코코텟의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될까 봐 벌써부터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이들 문제의 뿌리는 언제나 어른이다. 아이들의 편견은 어른들의 편견이 투사된 그림자다.

묘민텟이 코코텟을 들어 안아 눈을 맞추고 있다. 법적으로 가족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는 묘민텟-틴코코 커플은 코코텟을 틴코코의 아들로 입양했고, 이 때문에 묘민텟과 틴코코도 법적으로 남남이다. 양곤/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러나 숨죽이고 슬퍼하기만 할 거였으면 애초 결혼식도 감행하지 않았을 터이다. 틴코코는 미얀마의 성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인권 운동을 하고 있다. 인권단체 ‘팅가하’에서 성소수자들을 위한 교육 자료를 만들고 강의도 한다. 단체를 찾아온 성소수자들에게 상담도 한다. 동성결혼 법제화는 물론 형법 377조의 폐지 주장에도 앞장서고 있다. 틴코코와 묘민텟은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도록 알리는 자료를 만들어 유튜브 등에 배포하기도 한다.

“미얀마에는 성소수자로 가족을 꾸렸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곳곳에 많아요. 앞으로는 시민운동가나 국회의원 등을 적극적으로 만나 성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숨죽이고 있는 이들이 바깥으로 나와 더 많은 목소리를 내면 좋겠습니다.”

틴코코는 “가족을 꾸리고 싶은 보편적인 감정이 범죄로 취급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양곤/유덕관 전종휘 기자 yd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창간 30돌] 평화원정대 : 희망봉에서 널문리까지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