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18) 북-중 접경지대 ‘6개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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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배경으로 한복 빌려 입고… 투먼 북-중 접경지역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기념사진 을 찍는 중국인 관광객들. 투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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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인 “견본 2장 빼곤 진짜”
북 중앙은행 권위 따윈 관심밖 “한국 돈도 받아요. 9천원.” 어색한 억양의 우리말이 관광객을 부른다. 두만강 연안 도시 중국 지린(길림)성 투먼(도문)에서 만난 상인은 북한 돈 수집책을 펼쳐 보인다. 표지에 ‘조선돈’이라고 적힌 책엔 북한 지도자의 초상이 있는 50원짜리 우표가 3장, 5000원, 500원, 200원 등 모두 6천원어치가 좀 넘는 빳빳한 새 지폐가 들어있다. 진짜 돈일까? 상인은 ‘견본’이라고 적힌 2장 말고는 모두 진짜라고 했다. 지폐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 표시와 일련번호가 있다. 북한 돈 6천원의 가치는 공식환율로는 한국 돈 6만1천원이지만, 시장환율로는 840원 정도다. 공식환율과 시장환율 격차가 큰 이유와 관련해,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중경제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개혁·개방 초기 중국·베트남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북-중 접경지역을 돌아보기 위한 출발점이었던 투먼에서 처음 맞닥뜨린 ‘북한 돈 세트’는 단둥(단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두만강·압록강 주요 도시에서 기념품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가격 차이가 조금씩 나긴 했지만, 하나같이 시중에서 쓰인 적이 없는 듯 빳빳한 새 돈이었다. 혹시나 싶어 알리바바의 인터넷쇼핑몰 타오바오에서 검색해보니, 북한 돈 5천원(공식환율 5만800원, 시장환율 700원)짜리 지폐를 0.99위안(162원)에 팔고 있다. ‘진짜’를 확신하는 댓글이 달려 있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을 고려하면 가짜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접경지역의 ‘북한 돈 세트’라고 다를까. 러시아나 베트남 접경지역 중국땅에서 건너편 나라 위조지폐를 기념품으로 파는 일은 없다. 중국이 북한 중앙은행의 권위를 조금이라도 신경 쓴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이토록 무례한 기념품이 북한과 분단된 나라에서 온 관광객의 호기심을 겨냥한 얕은 상술이라는 점에서는 남북 평화에 대한 반면교사로 보이기도 했다.
북한 남양역이 코앞 8월 중순 중국 지린(길림)성 투먼(도문)시 북-중 접경지역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두만강의 도문다리에 올라 북한 함경북도 온성시 남양리 쪽을 건너다보고 있다. 투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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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기지국서 로밍 메시지
북 통신 고립돼 전파도 갇혀 북-중-러 3국 국경이 만나는 훈춘 팡촨(방천) 풍경구에 도착할 즈음, 휴대전화에 생각지 못했던 ‘러시아 로밍 요금 안내’, ‘러시아 여행 주의사항’ 메시지가 떴다. 국경에 가까워지니 러시아 기지국의 신호를 잡으면서, 해외 로밍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북-중 접경지역을 다니는 내내 휴대전화에 ‘북한 로밍 요금 안내’ 메시지가 뜨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의 휴대전화 보급 대수가 400만대에 이른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 통신사와 로밍을 위한 협약이 체결되지 않은 탓이다. 취재 등 목적으로 방문하는 일부 외국인은 심카드 구매를 통해 북한에서도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한다지만, 대부분 관광객에겐 이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북한 관광을 다녀왔다는 중국인들은 ‘통신 두절’에 대한 엇비슷한 사연을 털어놓는다. 북한에 도착한 뒤 줄곧 휴대전화가 신호를 못 잡다가, 특정 지점에 도착하자 갑자기 해외 로밍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바로 판문점 인근의 한국 기지국 신호를 잡은 것이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중국인 이용자가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접했다면서 평양, 개성, 판문점 등에서 찍은 사진을 기념 삼아 올린 것을 더러 보게 된다. 전파는 국경의 장벽을 넘나들기에 평화의 전령 같지만, 그중 하나의 장벽을 넘지 못하기에 유예된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신의주 관광 갔다가… 8월 중순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압록강 철교 위로 이날 북한 신의주시 1일 관광에 나섰던 중국인들을 태운 버스가 돌아오고 있다. 단둥/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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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선 당일치기·신의주 2박 등
중국인 무여권 북한 여행 즐겨 북-중 접경지역이 여느 국경과 다른 게 있다면 많은 이들의 주된 방문 목적이 ‘통과’가 아닌 ‘관광’이라는 점이다. 통과하지 않을 국경에 갈 일이 뭐가 있으랴만, 이곳은 다르다. 백두산은 말할 것도 없고, 강폭이 20~30m밖에 되지 않는 두만강 상류 투먼과 압록강 상류 창바이(장백)에서도, 바다가 가까워진 두만강 하류 팡촨(방천)과 압록강 하류 단둥에 이르기까지, 주된 방문객은 중국 안팎에서 온 관광객들이었다. 온전히 개방되지 않은 나라는 국경 지역의 일상이 관광상품이 된다. 관광객들은 강가에서 북한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북한 쪽에 사람이 지나가면 사람을 보며, 차량과 열차가 지나가면 또 그것들을 보며 신기해했다. 지붕에 고추를 말리는 사람들도, 강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도, 고기 잡는 청년들도, 빨래터의 아낙네들도 모두 구경거리가 됐다. 단둥 압록강변에서 한 중국인 가족은 북한 쪽 밤 풍경을 보며 “저것 봐. 불이 다 꺼져서 캄캄해”라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무엇이 찍혔는지 알 수 없다. 주요 도시에서는 중국인들을 위한 ‘무여권 당일치기 북한 여행’이 이뤄지고 있었다. 중국인 신분증만 있으면 여권·비자 없이 하루 일정으로 북한에 다녀오는 코스다. 두만강 하류 훈춘에서는 북한 라선시에 가서 동해산 수산물을 먹고 돌아오는 여행상품이 있었다. 압록강 중류 린장(임강)에서는 강 건너 양강도 혜산시와 자강도 중강군을 둘러보고 온다. 이미 널리 알려진 단둥~신의주 프로그램은 어느새 반일, 1일, 2일짜리로 상품이 세분돼 있었다. _________
중국 사업가들, 북 들락날락 “제재만 풀리면…” 몸풀기 한창 #4. 중국이 먼저냐, 한국이 먼저냐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 소문 퍼져
북에 지을 시설 조감도 보여주기도
한국 기업인 “껍데기만 남을라”
경제 숨맥 이을 두만강 다리 8월 중순 중국 지린성 투먼시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 함경북도 온성시 남양리를 연결하는 옛 다리(왼쪽)와 새로 건설 중인 다리가 보인다. 투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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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물 등 양국 교역은 사라져
헤엄쳐 건넜는데 이젠 밀수 단속
환한 단둥 저쪽은 캄캄한 신의주 8월 중순 압록강을 사이에 둔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다리 아래쪽)와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시의 야경. 불빛의 밝기 차이가 두드러진다. 단둥/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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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지역은 한반도와 운명 공유
“북 열리면 엄청난 기회” 기대감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 창바이(장백) 조선족자치현 압록강 건너편 북한 양강도 김정숙군의 들녘에서 북한 주민들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창바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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