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17) 안 의사 순국한 뤼순감옥을 가다
남북 10년 전 발굴작업 성과 못내
뤼순감옥 주변 20만㎡ 옛 숙소·묘지
추가 발굴해볼 만한 곳 아직 남아
문 대통령 “남북 공동 유해발굴 추진”
<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평화원정대, 희망에서 널문까지> 인터렉티브 바로보기
지난 12일 오후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일러감옥옛터박물관의 안중근 의사 추모관에서 한 관람객이 안 의사의 영정사진을 스마트폰에 담고 있다. 안 의사 추모관은 수많은 공산주의 계열 중국 해방열사들 사이에서도 가장 눈 에 띄는 자리에 있다. 다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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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뤼순감옥, 이젠 박물관으로
폭염에도 중국인 발걸음 이어져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안 의사 영정 “청일전쟁 뒤 중국·한국 양국 국민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은 20세기 초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부터 시작됐다.” 1963년 6월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담화에서 내놓은 안 의사 의거에 대한 평가다. 중국 쪽이 해방투쟁사에서 안 의사를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놓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언급이다. 그럼에도 남과 북이 아직 안 의사의 주검조차 찾지 못한 대목은 뼈아프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안 의사의 증손자 토니 안씨 등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내년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는 북한과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남과 북은 2008년에도 뤼순감옥 터 북쪽 안 의사 유해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터 3000여㎡를 대상으로 공동발굴 작업에 나섰으나 동물 뼛조각과 도자기 몇 점만 건진 채 발굴 작업을 마친 바 있다. 결국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객지에서 숨진 이의 주검을 고향으로 모시는 일)해 달라”던 안 의사의 유지는 108년이 지나도록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서울 효창원에는 1946년 백범 김구 선생이 조성한 안 의사의 가묘가 자리잡고 있다. _________
“안중근 의사는 남북 모두 추앙…공동의 역사 써보자”
지난 12일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일러감옥옛터박물관 바깥을 관람객들이 오가고 있다. 박물관 너머로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다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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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유해 발굴 실패 교훈 삼아
서두르지 말고 과정 중요시해야
안 의사 중심 역사 남북 함께 정리를” 장석흥 국민대 교수(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는 평화원정대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동안 유해를 찾으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비전문가들이 신뢰할 만한 정보도 없이 이벤트성으로 접근하고 정부 관료들은 당장의 성과에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장 교수는 “유해 발굴은 매우 길고 지난한 일이라는 걸 먼저 인식하고 유해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중시해야 한다”며 “안 의사의 유해를 찾으려는 이유는 동양의 평화를 위한 그의 염원을 우리 시대의 염원으로 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안 의사가 묻혔을 것으로 보이는 일대를 나타내는 조형물 등을 우선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남과 북이 안 의사 유해 발굴 못지않게 일제에 맞서 싸운 해방까지의 근대사를 공동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 모두 그 의의를 부정하지 않는 안중근 의사 등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역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좁혀갈 수 있지 않으냐는 얘기다. 김성호(67) 연변대 교수(전 조선력사연구소장)는 지난 9일 지린성 연변대 연구실에서 평화원정대와 만나 “남한은 김일성 장군의 항일투쟁 업적을 인정하지 않고 북쪽은 상해임시정부, 광복군, 조선의용군을 평가하지 않고 있다. 남북한 모두 여전히 분단사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중근, 신채호 선생처럼 남북 양쪽 모두 인정하는 분들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8·15 광복까지 공동의 역사를 쓰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롄 옌지/전종휘 유덕관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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