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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11 16:00 수정 : 2018.07.11 21:10

이란 테헤란 시민들이 6월30일(현지시각) ‘그랜드 바자르’ 시장을 오가며 물건을 사고 있다. 여성들은 모두 히잡이나 차도르를 하고 있다. 테헤란/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⑬ 이란에 번지는 ‘히잡 벗기’ 운동

지난해 말 한 여성 1인시위 뒤
SNS에 히잡 벗은 사진 올리고
수요일마다 ‘하얀 스카프’ 운동도

일부 국가선 한때 저항의 상징
계급 따라 착용 찬반 갈리지만
문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
“여기서 태어났다고 써야 하다니…”

이란 테헤란 시민들이 6월30일(현지시각) ‘그랜드 바자르’ 시장을 오가며 물건을 사고 있다. 여성들은 모두 히잡이나 차도르를 하고 있다. 테헤란/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히잡을 하고 있어야 하나요?”

낯선 이방인이 던진 질문이 아니다. 히잡을 쓴 여성들의 입에서 나온 탄식이다. 지난 1일 이란의 날씨는 뜨거운 태양 아래 바람 한점 없이 더웠다. 해 질 무렵 나스린 파테미, 아잠 파테미, 아크람 파테미 세 자매는 토찰산(해발 3964m)이 바라다 보이는 테헤란의 한 카페에 모였다. 일을 마친 뒤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지만 이들은 히잡을 벗지 않았다.

히잡에 관해 묻자 바로 날 선 답이 돌아왔다. 맏언니 나스린(34)은 “히잡은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이다. 히잡을 쓴 여성은 대학이나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말했다. 치과의사인 동생 아잠(29)은 “히잡을 쓴 여성 의사를 보면 ‘수술을 잘 못 할 거야’라고 하면서 남성 의사를 찾는다. 차별적인 언어를 늘 들으면서 히잡은 무슬림 사회의 낮은 여성권리를 상징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비다 모바헤드(31)라는 여성이 테헤란 도심의 번화가 엥겔라브 거리 높은 곳에 올라가 히잡을 벗어 막대기에 걸고 흔들었다.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히잡 벗기는 올해 들어 운동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히잡을 벗어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여성들이 잇따랐다. 종교경찰이 있는 이란 정부는 히잡을 안 한 여성 29명을 체포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최근엔 이들을 옹호하던 여성 인권변호사도 체포된 상태다.

지난해 12월 테헤란 엥겔라브 거리에서 비다 모바헤드가 히잡 강요에 항의해 히잡을 막대기에 걸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비다 모바헤드 페이스북
히잡은 이슬람 종교를 믿는 여성이 하는 전통 복장 가운데 하나다. 얼굴 전면부를 빼고 귀와 머리카락을 가리는 일종의 스카프다. 이슬람 경전 코란도 여성에게 히잡을 쓰라고 했다. 그러나 이란 여성이 히잡을 강요받기 시작한 때는 그리 오래지 않다. 페르시아에 뿌리를 둔 이 나라는 다른 아랍 국가와 달리 히잡 착용은 관행적이었다. 오히려 1925년 들어선 팔레비 왕조는 이란 근대화를 내세워 여성의 히잡 착용을 폐지했으나, 1979년 이슬람 혁명 뒤 호메이니 정부는 이를 뒤집었다. ‘이슬람 정신을 되살리겠다’며 여성이 외출할 때 의무적으로 히잡을 착용하도록 했다. 외국인도 예외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6년 이란을 방문할 때 히잡을 썼다.

그러나 히잡을 바라보는 시선은 단일하지 않다. 서구에서는 히잡을 여성인권 억압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중동 일부 국가에서 근대화와 서구화를 이유로 히잡 착용을 금지했을 때에도 이에 반발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오히려 히잡이 억압이 아닌 저항의 상징으로 기능하던 때도 있었다. 히잡에 대한 인식은 종교가 아닌 교육과 계급에 따라 더 다양하게 나뉠 수 있다. 히잡 의무에 반대하는 파테미 자매를 만난 카페는 테헤란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북쪽에 있다. 이들 자매의 건너편 테이블에서 검은 히잡을 쓰고 있던 네진 카리미(30)는 “직장에 다니거나 테헤란 남부(가난한 지역)에 사는 여성 가운데는 (히잡 의무 폐지에) 찬성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요르단에서는 국민들은 히잡을 써도 왕비는 쓰지 않는다.

문제는 착용 금지든 착용 의무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데 있다. “난 믿음이 강하지 않은데도 무슬림으로서 잘 믿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게 싫다. 우리는 단지 여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히잡을 쓸 뿐이다.” 회사원인 카리미는 히잡 강요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반영돼 있다고 했다. “회사에서 여직원이 화장을 하고 있으면 고객과 사귀려 한다거나 ‘섬싱’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의심한다. 화장을 하고 회사에 갈 수 없고, 항상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한다.” 이란에서 정부기관이나 회사에서 여성이 승진하려면 히잡이 아닌 온몸을 덮는 차도르를 입어야 가능하다고 그는 전했다.

카리미와 함께 앉아있던 마잔 모바헤드(30)는 수요일마다 하얀색 스카프를 쓰자는 운동이 있다고 소개했다. “거리에서 직접 히잡을 내려놓는 이들도 있지만 소심한 사람들은 하얀색 스카프를 쓰고 운동을 응원하고 있다.” 베이지색 히잡을 쓴 카리미는 “텔레그램으로 히잡 벗기 운동 상황을 듣는데 최근에 텔레그램 접속이 가끔 차단된다. 이런 정보가 돌아다니는 것을 정부가 막으려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테헤란/유덕관 이완 기자 yd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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