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_ ① 남아공, 끝나지 않은 ‘흑백분리’
*피스머스트폴(FeesMustFall) = 등록금은 내려야만 한다
가난한 흑인 대학생 트왈라
알바 뛰어 장사 밑천 대고
그 돈 불려 학비 마련
“백인은 의사·변호사 되는데
흑인은 정원사·가정부”
‘피스머스트폴’ 앞장 마세베
“등록금 내려 무상교육 가야
흑백 교육격차 줄어들어”
미세먼지 한 점 없을 것 같은 공기가 건조하고 탑탑하게 느껴지는 건 자동차가 흙먼지를 날리고 지나가서만은 아니었다. 포장되지 않은 길바닥, 오밀조밀한 담벼락, 낡고 작은 집들의 벽돌까지, 흙으로만 빚은 듯한 마을은 단일한 황토색이었다. 또 하나의 단일 색이 있기는 했다.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의 피부색은 모두 검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동쪽으로 100㎞가량 달리면 나오는 흑인밀집구역 오기스의 지난 16일 풍경이다. 이곳 300여 가구엔 흑인만 산다. 주민들은 자기 땅이 없고, 평화원정대가 이곳까지 오며 지나친 광활한 농지는 거의 다 백인 소유라고 했다.
지난 4월1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츠와네 산업기술대학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공하는 시포 트왈라가 흑인밀집구역 오기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한겨레평화원정대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기스/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마을 안쪽 자그마한 교회에서 만난 시포 트왈라(26)는, 물론 흑인이었고 양복 윗도리는 하필 황토색이었다. 그러나 황토색은 본디 척박한 색이 아니었다. 그의 윗도리는 때깔이 반드르르했다. 와이셔츠와 조끼, 바지는 짙은 남색 계열이었고, 넥타이는 빨강과 남색, 검정이 섞인 체크무늬였다. 그는 마치 이 마을 상공을 지나가다 불시착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오기스에서 매우 귀한 대학생이라는 사실만으로 이처럼 튀는 패션을 설명하기는 버거워 보였다.
“학교 앞에서 향수나 여성용 가방을 팔고 있어요.”
유행에 민감한 제품을 파는 직업이라면 수긍하지 못할 패션은 아니다. 다만 대학생인 그가 한국의 과외나 편의점 알바와는 성격이 크게 다른 ‘투잡’을 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더 있을 터였다.
시포 트왈라의 아버지 토코자니 트왈라(44)가 아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폭 내쉰다. “시포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어요.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미안할 뿐입니다.” 토코자니는 교회 목사이면서 이 지역 고등학교에서 영어와 줄루어 등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다. 그의 한 해 수입은 10만랜드(약 880만원). 오기스 지역에선 결코 적다 할 수 없으나, 한 해 3만랜드(260만원)에 이르는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
시포는 음푸말랑가 지역의 츠와네 산업기술대학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공한다. 2011년에 입학해 4년짜리 디플로마 과정을 마친 뒤 3년째 학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올해 학위를 따고 나면 소프트웨어나 모바일앱 개발 쪽 직업을 갖는 게 목표다. 지난해 하반기 55%까지 치솟은 청년 실업률은 고민의 목록에서 제외했다. 그의 취업은 꿈과 이상이기 전에 당위다. 대출받은 돈부터 갚아나가야 한다. 시포의 인생 첫 대출은 1학년 때 국가장학재단에서 빌린 3만랜드였다. 그나마 2학년이 되면서부터 신입생과 더 가난한 학생들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제 손으로 학비와 기숙사비를 버는 도리밖에 없었다.
“우선 석탄 광산에서 광부들이 갱도에 들어갈 때 체크인 작업을 돕거나 지역 보건소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검사를 돕는 알바를 해서 돈을 모읍니다. 다시 그 돈으로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떼다 팔아 돈을 불립니다. 그렇게 해서 가까스로 학비와 기숙사비를 댑니다.”
그는 아이티(IT) 기술보다 장사 수완에 먼저 눈을 떴고, 대학에 다니기 위해 스스로 옷차림을 꾸며야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올해가 마지막이니까 시포는 오는 10월을 조용히 넘길 수 있겠죠.”
오기스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토고자니 트왈라 목사가 지난 4월15일 등록금인하투쟁(#feesmustfall)과 토지개혁 문제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시포 트왈라의 아버지다. 오기스/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토코자니는 대학 등록금 투쟁인 ‘피스머스트폴’(FeesMustFall, 등록금은 내려야 한다) 운동에서 이젠 아들이 비켜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2015년 10월 피스머스트폴 운동이 시작된 이래 시포는 해마다 이 운동에 동참했다.
졸업반인 시포는 더는 등록금 낼 일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와 생각이 달랐다. 등록금은 개인 문제가 아니었다. “백인들은 교육을 많이 받아 의사·변호사·회사원이 되지만, 흑인은 정원사·가정부가 됩니다. 피스머스트폴은 흑인들도 평등하게 교육받게 해달라는 요구입니다.”
아직 4월이지만, 남아공 어디에서나 10월의 피스머스트폴에 관한 얘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지난 10일 웨스턴케이프주의 혼혈인 빈민촌 시몬디움. 남아공에서 혼혈인은 흑인보다 못한 ‘3등 국민’ 취급을 받는다. 경제적으로도 흑인 못지않게 열악하다. 여기에서 만난 루벤 퍼센츠(22)는 볼란드대학 파를 캠퍼스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다. 그는 장학지원금을 받는다. 지독한 가난 덕분이다. 빈곤을 두고 만인과 경쟁하는 퍼센츠는 피스머스트폴에 참여한 적이 없다. 그러나 퍼센츠는 “취지에 공감한다”며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요하네스버그의 비트바테르스란트대에서 만난 오레디레체 마세베(27)는 2015년 이후 3년 내리 피스머스트폴에 참여했다. 현재 이 대학 학생협력기구(한국의 총학생회 격) 의장을 맡고 있는 그도 국가장학재단에 5만6000랜드(500만여원)의 빚을 지고 있다. 마세베는 이 운동이 등록금 투쟁이 아닌 교육 평등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교육은 수도나 전기처럼 공공재니까요. 모든 이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선 최종적으로 등록금 없는 교육 서비스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는 정확히 등록금 폐지를 주장하고 있었다.
등록금 폐지 운동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가령, 우리의 반값 등록금 운동에 ‘곱하기 2’를 하더라도 등록금 폐지 운동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왜 등록금 폐지가 아니라 반값 등록금일까. 반값 등록금 주장에는 색깔론에 대한 무의식적인 자기검열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등록금에 대한 우리와 남아공 청년들의 ‘상상력’ 차이는 남북 분단과 아파르트헤이트(흑백 분리)라는 역사적 경험의 차이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남북 분단은 현재진행형인 반면 아파르트헤이트는 1994년 공식 철폐됐다.
지난 4월12일 남아공 웨스턴케이프주의 혼혈인 빈민촌 시몬디움에서 만난 루벤 퍼센츠(왼쪽 셋째) 가족. 퍼센츠는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지만, 그와 가족은 남의 사유지에서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산다. 그의 아버지는 포도주 양조장에서 일하며 농장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으나, 22년 전 주인이 바뀌면서 쫓겨나 이곳으로 왔다. 시몬디움/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24년…“토지의 자유는 오지 않았다”등록금 문제 뿌리는 땅 문제 만델라, 유상 매입-분배에도 백인 토지 점유율 85%→73% 독과점 해소커녕 부 쏠림 여전 판자촌 사는 혼혈청년 퍼센츠 “이 동네 봐라, 토지 나눠야” 라마포사 대통령 토지개혁 추진 무상몰수 개헌안 9월 국민투표 무지개나라 ‘흑백 공존’ 찾을까
지난 4월16일 오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비트바테르스란트대에서 만난 오레디레체 마세베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마세베는 백인이 세워 놓은 학문과 제도 등을 흑인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오하네스버그/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도로서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는 남아공 역사에서 거대한 전진이었다. 남아공 흑인은 역사의 승리자다. 하지만 승리의 기억은 지난 24년 동안 제도 바깥으로 뻗어나가지 못했다. ‘경제적 분리’의 장벽은 굳건하다. 2015년 통계를 보면, 흑인의 63%, 유색인종의 37%, 아시아계의 7%는 절대빈곤선보다 못한 삶을 산다. 제도 철폐 20년이 지나 불붙은 피스머스트폴 운동은 등록금 문제의 뿌리인 아파르트헤이트를 공략하고 있는 셈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악의 시대였어요. 그 뒤 자유의 시대가 왔지만, 진정한 토지의 자유는 오지 않았습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장사까지 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한숨을 내쉬던 토코자니 트왈라는 토지 문제 얘기가 나오자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토코자니는 “남아공 토지 대부분을 백인이 갖고 있고 흑인은 좁은 집에 살면서 농사지을 땅도 없다”며 “토지를 재분배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농사일에 관심이 없는 아들 시포도 “라마포사 대통령의 토지 개혁이 성공해야 흑인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아버지 말에 동의했다.
지난 2월 말 남아공 의회는 사유재산권을 보장한 헌법 25조의 개정을 추진하는 법안을 241 대 83의 압도적인 차이로 통과시켰다. 핵심 내용은 국가가 백인들의 토지를 대가 없이 몰수한 뒤 이를 흑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의회 내 헌법검토위원회가 오는 8월30일까지 해당 조항의 수정방안을 검토해 그 결과를 보고하면 의회는 이를 토대로 헌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민 투표에 부칠 계획이다.
장학지원금을 받는 루벤 퍼센츠도 토지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판자촌이 즐비하고 상·하수도도 없는) 이 동네를 봐라. 이 사람들에겐 집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다 집을 줄 순 없겠지만,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겐 땅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지게 하는 토지 개혁, 특정인이 아닌 모든 남아공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토지 개혁이라면 나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12일 오전 남아공 케이프타운 외곽 시몬디움의 한 농장에서 일꾼들이 일을 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일용직 노동자들로, 추수가 끝나면 일이 없어진다. 하루에 일당으로 150랜드(약 1만3000원)를 받는다. 시몬디움/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원내 제2당이 초과이익환수제 구상에 이념 공세를 퍼붓는 나라에서 온 우리는 역시 상상력의 한계를 느꼈다. 하지만 이 나라 흑인과 유색인종이 정부의 극단적인 정책에 박수를 보내는 사정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24년 전엔 전체 인구의 10% 수준이던 백인이 전체 농지의 85.1%를 소유했다.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이후 넬슨 만델라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백인이 내놓은 땅을 사들여 흑인에게 되파는 정책을 펴왔다. 현재 전체 인구의 8.4%인 백인은 전체 농지의 73.3%를 갖고 있다. 토지는 철폐되지 않은 제도 밖 아파르트헤이트의 토대이자 상징이다.
흑인과 유색인종이 환호하는 만큼 백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난 17일 요하네스버그에서 동쪽으로 50㎞가량 떨어진 델마스 지역에 있는 한 농장. 무려 800헥타르(24만2000여평)에 이르는 드넓은 농장에 달랑 250여 마리의 소가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고 있었다. 백인 주인 디터 라부샤그네는 두 가지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첫째는 소도둑이다. 지난해에만 모두 46마리의 소가 죽거나 사라졌다. 소도둑은 한밤중에 농장에 침입해 소를 죽인 뒤 고기가 많은 일부 부위만 가져갔다. 그렇게 30마리가 희생됐다. 16마리는 하룻밤에 1마리씩 따박따박 사라졌다. 라부샤그네는 사설 보안업체 직원 4명을 쓰는 것으로 대응했다. 예상대로 그의 둘째 골칫거리는 정부의 토지 개혁 정책이었다. 하지만 두통의 강도는 소도둑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정부 정책이 실현되면 그는 14년 전 2000만랜드(18억여원)를 주고 산 농지를 몰수당할 판이다.
지난 4월17일 오후 남아공 프레토리아 외곽 델마스 라부샤그네 브라만농장에서 농장주 디터 라부샤그네가 농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농장의 규모는 800만㎡ 규모다. 소 250~300마리를 600만㎡에 방목하고 200만㎡에는 옥수수를 키우고 있다. 델마스/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라부샤그네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공공의 논리로 표현할 줄 알았다.
“매우 현명하지 못한 정책입니다. 나는 흑인 노동자 12명을 고용하고 있어요. 내가 농장을 몰수당하면 내가 고용한 사람들, 그들이 부양하는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흑인 고용 문제를 적이 걱정하는 그는, 이미 2014년에도 전기요금과 인건비 부담을 들어 30명을 한꺼번에 해고한 전력이 있다.
백인들은 토지 과점의 정당성을 역사 속에서 찾았다. 조상들이 오래전 정당하게 취득했고, 자신들은 합법적으로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케이프타운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우스터 지역에서 남편과 함께 100헥타르 토지에 포도·수박·멜론 농사를 짓는 백인 농장주 질리언 빌리언(55)은 “남편은 프랑스에서 온 이주민 6세대이고 내 조상은 영국에서 왔다. 우리 조상이 왔을 때 이곳은 버려진 땅이었고, 그 땅을 조상들이 개간했다”며 정부의 토지 무상몰수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흑인들도 백인 토지 과점의 부당성을 역사 속에서 찾는다.
“식민주의 자체가 모든 토지 문제의 시작입니다. 백인들의 땅은 우리 조상을 투옥하고 고문하면서 식민화한 땅이거든요.”
시포는 아버지 토코자니보다 신념이 더 확고해 보였다. 그는 “그 땅을 다시 나누자는 것이다. 백인은 불평하면 안 된다”며 “토지 없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소수가 가진 땅을 다수에게 나눠주는 게 다수가 평등해지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백인들은 거시경제적인 논리도 내세운다. 이 정책이 사유재산을 부정함으로써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결국 남아공 경제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백인 농장주 4000여명이 가입한 농장주단체(TAUSA) 회장을 맡고 있는 루이 마인키스(65)는 “경제가 발전하려면 개인 재산과 자유시장 경제가 보호돼야 한다. 그것에 대한 보증 없이 어떻게 투자를 하라고 하겠는가”라며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가 대사관 등을 통해 남아공 정부에 ‘남아공에 투자하는 게 과연 안전한가’라고 물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4월17일 오전 남아공 컬리난(Cullinan)의 백인 농장주 루이 마인키스가 자신의 농장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마인키스는 남아공 동북부 지역 농장주단체(TAUSA)의 의장을 맡고 있다. 컬리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흑인들은 땅을 받아 봐야 경영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도 단골 메뉴다. 흑인 노동자 8명을 고용하고 있는 마인키스는 “4명이 문맹이고 그들은 숫자를 50까지밖에 세지 못한다. 그들이 어떻게 헌법을 이해하겠느냐”며 흑인들에게 농장을 나눠주면 남아공의 농업이 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웃 나라 짐바브웨가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시절인 2000년 백인 소유 땅을 흑인에게 돌려주는 토지 개혁을 시행한 뒤 4500개이던 상업농장이 300여개로 줄고 500여개 커피 회사 가운데 3곳만 생존하는 등 농업 생산력이 급락한 사실도 타산지석으로 거론된다. 이를 의식해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틈나는 대로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식량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를 달고 다닌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 단정할 수 없지만, 토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의 근거는 교육 불평등이었다. 물론 교육 불평등은 토지 불평등의 결과다.
토지 몰수가 흑인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거라고 우려했던 농장주 디터 라부샤그네는 농장에서 일하며 먹고 자는 흑인 노동자들을 간섭 없이 인터뷰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불안한 안색으로 인터뷰 자리를 지켰다. 흑인 노동자들은 “급여가 애들 키우는 데 충분치 않다”면서도 “우린 보상 없는 토지 국유화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화원정대에게 이 나라의 색깔은 흑과 백, 그리고 황토색으로 각인됐다. 오는 8월 헌법이 개정되면 시포의 옷차림처럼 다양한 색을 띨 수 있을까? 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데즈먼드 투투 주교는 일찍이 ‘무지개의 나라’라는 표현으로 평화와 공존이라는 남아공의 이상을 제시했다.
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전종휘 유덕관 기자 symbio@hani.co.kr
지난 4월17일 오후 남아공 프리토리아 외곽 델마스에 있는 디터 라부샤그네 농장에서 클레인보이(왼쪽)와 패트릭이 철조망 보수 작업을 잠시 쉬고 있다. 두 사람은 한달 월급으로 세금을 제하고 각각 3500랜드(약 30만원)와 6000랜드(약 51만원)를 받는다. 델마스/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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