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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17 09:34 수정 : 2019.01.17 20:09

김준의 설치물. 사진 송은아트스페이스 제공

이우성의 낙서 같아

김준의 설치물. 사진 송은아트스페이스 제공
이 글이 연재의 마지막인 것 같다. 10년 전쯤 한 미술평론가랑 전화 통화하면서 싸웠던 적이 있다. <한겨레>에도 종종 기고하는 유명 평론가다. 그때 나는 패션 매거진 피처에디터로 일하고 있었다. 취재 때문에 전화를 걸었는데 평론가가 말했다.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마세요.” 하지만 나는 그 사람 글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적이 정말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비꼬면서 대답했다. “잘 모르니까 아는 척하죠.” 전화를 끊고 며칠을 분노했다. 그 자식은 지금도 유명 평론가고 나는 지금도 그 자식이 왜 유명한지 이해가 안 된다. 그저 그 목소리가 여전히 선명할 뿐이다. 나는 늘 다짐한다. 아는 척할 바엔 알지 말자. 그러니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관객은 언제나 추측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은가? 심지어 작가도 자기 작품을 잘 모른다. 만들었다고 아는 게 아니다.

작품은 일종의 발판 같은 거라고 나는 믿는다. 밟고 뛰어오른다. 그러면 뭔가 보이겠지. 이 과정이 추측일 거다. 작품은 눈앞에 있지만, 작품이 보여주려고 하는 건 다른 곳에 있다. 그러니까 작품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은 아니다. 사진이냐, 그림이냐, 조각이냐 뭐 이딴 것도 별로 안 중요할 수도 있다. 무엇을 추측하게 하는가가 중요하지. 상관없는 듯 상관있는 얘긴데, 나는 사운드 작업을 미술의 영역 안에 넣을 수 있는 건지, 늘 약간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전시가 흥미로웠다. 제18회 송은미술대상전이 서울 압구정로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중이다. 대상은 ‘특정 장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사운드 아카이브 설치작업’을 하고 있는 김준이 받았다. 보도 자료에 적힌 문장을 쉽게 번역하면, 김준은 소리를 모은다. 예를 들어 서울, 런던, 시드니, 베를린 등 도시의 소리와 뉴질랜드 남섬, 호주 블루마운틴, 제주도, 지리산 등 자연 속의 소리를 모아 한 공간에서 들을 수 있도록 한다. ‘관객’은 이 상반된 소리를 들으며 무엇인가 본다. 추측하는 것이다.

유년을 보낸 전라도 지역을 순회하며 채집한 소리도 전시했다. 놀랍게도 이 소리를 서랍이 달린 설치물에 담았다. 여러 개의 서랍을 하나씩 열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리를 채집할 때 촬영한 사진도 인화해서 붙여 두었다. 그러니 이것은 단순한 사운드 작업이 아니다. 소리를 설치한 작품이다. 그래서 사운드 작품이 미술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내 의구심은 다소 희미해진다. 나는 이 작품들이 미술 작품처럼 보인다. 이쯤에서 추측할 거리를 하나 던지자면, 앞서 거론한 작품인, 도시와 자연에서 모은 소리는 어떻게 설치했을까? 안 가르쳐주지. 2월28일까지 전시가 열리니까 직접 가서 보자. 소리의 물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경험은 흔치 않다. 간혹 어떤 소리는 그림이나 사진을 볼 때보다 더 풍성한 세계를 추측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사운드 작업이 미술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무엇을 추측하게 하는가가 의미 있겠지만 그조차도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그 유명 평론가의 말은 아직도 선명한데 분노의 감정 외에는 떠오르게 하는 게 없다. 가난하고 가엾은 소리이기 때문일까? 우리는 누군가에게 예쁜 소리일까? 다시 만납시다, 여러분! (끝)

이우성(시인·미남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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