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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4 08:23 수정 : 2019.01.04 20:29

전시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이우성의 낙서 같아

전시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나는 사진가 이명호의 팬이다. 나는 이 작가가 개념이 분명하며,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좋다. ‘좋다’보다 덜 주관적인 단어를 쓰자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한 그루의 나무 뒤에 캔버스를 설치하는 순간 나무라는 존재의 개념은 일순간 바뀐다. 나는 그러한 시도가 완벽히 새로운 것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이전의 누군가 그런 작업을 시도했을까? 그러나 나는 그 고요한 풍경 뒤에 숨겨진 소란의 시간들은 이명호의 고유한 세계라고 믿는다. 이른바 ‘나무 연작’ 앞에 서면 누구나 나무를 본다. 정확하게는 캔버스 앞의 나무를 본다. 캔버스 뒤의 풍경은 볼 수 없다.

누군가는 상상할 것이다. 여러 사람이 캔버스를 붙들고 있을까? 서로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있을까? 떠들고 웃을까? 캔버스가 차단한 모습은 이런 것만이 아닐 것이다. 원래 거기 있던 많은 모습이 있다. 하다못해 바닥의 모래들, 작은 나무들. 캔버스는 나무를 새삼 드러내지만 다른 많은 것을 가린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은 ‘어떤 소리들’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다. 이명호가 이후 선보인 작품들, 사막에 길게 캔버스를 이어 붙이고, 멀리서, 아주 멀리서 그 풍경을 찍은 이른바 ‘신기루 시리즈’는 풍경을 찍지만 풍경을 지운 것이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은 물론 빛이다. 이명호는 빛이 모래처럼 만지고 쌓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믿음으로 이 시리즈를 찍었다. 정말로 빛의 속성이 그러하다면 거기엔 당연히 소리도 쌓인다. 그것은 파도가 밀려올 때의 소리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이명호의 사진을 보며 시적이라고 말하는데, 그들이 어떤 점에 주목해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는 빛과 소리 때문이다. 시는 찰나를 붙들고, 그것을 오랜 시간 관찰하며 보이지 않는 빛과 들리지 않는 소리를 상상하도록 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명호가 찍은 사진은 시적인 무엇이 아니라 명백히 시라고 생각한다.

이명호가 1월5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전시를 한다. 나무 연작, 신기루 연작을 볼 수 있고, 새로운 시리즈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도 볼 수 있다. 이 연작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제 캔버스 앞에 아무 것도 없다. 원래는 나무가 있었고, 사막이 있었다. 뭐가 없어진다고 해서, 반대로 무엇이든 있다는 식으로 작품의 방향이 나아가지진 않을 것이다. 제목은 다분히 그런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단계에 이르면 단순히 캔버스 앞에 무엇이 있는가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제 캔버스가 스스로를 비추기 시작했다고 하면 과한 해석인가? 나는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팬심으로.

이우성(시인·미남 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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