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23 09:58
수정 : 2018.11.2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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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피스(surface)>. 사진 갤러리2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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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의 낙서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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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피스(surface)>. 사진 갤러리2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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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등단하기 전에 한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반은 네가 쓰고 반은 귀신이 쓰는 거지.”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어떤 불가해한 영역이 존재하며, 그것이 존재해도 괜찮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시에 가끔 나도 잘 모르는 문장을 쓴다. 누군가 그 문장의 의미를 물으면 물론 설명을 해준다. 헛소리다. 모르는데 어떻게 설명해?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다. 귀신은 결국 내 안에서 나온 나의 귀신이기 때문이다. 아마 귀신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분명히 느끼고 있을 어떤 것들을 적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것을 잘 모르고도 조금은 설명할 수 있다.
다 알 필요가 없다. 다 알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좋은 예술 작품은 미지의 영역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미지’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속으로 들어가 상상을 펼칠 수는 있겠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니까 작가를 만나서 이건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라고 묻는 건 어쩌면 굉장히 불필요한 일이다. 작가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느끼는 것, 당신이 느끼는 것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 역시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 그의 귀신이 그의 창작을 도왔으니까.
신건우의 전시를 보았다. 나는 이 작가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과거에 어떤 작품을 했는지도 모른다. ‘갤러리2’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서피스(surface)>다. 표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란 의미다. 야심만만한 제목 아닌가! 표면을 다루는 작가는 없다. 누구든, 본질로 들어가려고 한다. 표면을 다룬다는 것은 어떤 것을 재현한다는 것이니까. 전시된 그림 중 몇 개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풍경들이 겹쳐져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또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기억이 쌓여가듯, 그 기억들이 각각의 기억에 영향을 미치듯. 그것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그걸 굳이 다 이해해야 한다고 느끼진 않았다. 어떤 선은 왜 거기 그렇게 그어져야 하는지 작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 우연의 선들이 조형적으로 꽤 아름답다. 그걸 그저 감각이라고 하기엔 물론 매우 부족한데, 다른 표현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전시장 내부에는 표면이 파란 탁구대가 놓여 있다. 표면이 붉은 탁구 라켓도 놓여 있다. 그 옆에 이젤이 있고, 이젤 위에 그림이 놓여 있다. 어떤 그림은 바닥에 놓여 있다. 어떤 그림은 벽에 낮게 걸려 있다. 한쪽 벽면은 전체가 창이다. 그 창의 표면 역시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내부를 늘어놓거나 겹쳐 놓거나 낯설게 놓아두고서 ‘표면’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마음을 즐겁게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정답이야, 라고 적으면 유치한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살면서 이 사회가 나에게 요구한 건, 늘 정답이었다. 조금만 엉뚱한 것들을 꺼내 놓으면 그게 뭔지 그게 왜 필요한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라고 했다. 그래서 좋았구나, 귀신에 대한 이야기. 불가해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그런 것들도 괜찮다는 이야기. 12월15일까지 들을 수 있다.
이우성(시인·미남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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