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24 20:13
수정 : 2018.10.2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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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호의 개인전 <더 그레이트 챕북II>. 사진 이우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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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의 낙서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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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호의 개인전 <더 그레이트 챕북II>. 사진 이우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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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호가 앞으로 무엇을 그릴지 예측하는 일이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그려오던 것들을 그리겠지. 예를 들어 동시대의 어떤 흐름들. 에스엔에스(SNS)에서 쉽게 ‘스킵’되는 이미지들. 시대가 변한다면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을 그릴 것이다. 그게 뭐가 될지 일단 나는 모르고, 관심도 없다. 내가 주목하는 건 지금 이 시점의 노상호니까. 노상호에 대한 내 편애는 온전히 주관적이다. 이 회화 작가(라고 굳이 강조하듯 적는 이유 역시 내 의식의 흐름에 기댄다)는 대중들의 관심에 힘입어 지금의 위치를 점유했다. 그는 꽤 괜찮은 ‘순수한’ 미술 공간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진 바 있다. 솔직히 나는 그가 ‘순수한’ 미술 현장에서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권위 있는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고 있다면 다행이겠지.
노상호는 동시대의 숱한 이미지들을 수집해 골라낸 후 먹지를 대고 베낀다. 자세히 보면 유명 패션 브랜드의 로고, 디자이너, 뮤지션 등이 등장한다. 그는 어떤 대상을 베껴 그리지만 그가 그리는 본질적인 것은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문화이거나 문화를 이루는 흐름들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대상의 세부를 생략하거나 일부 왜곡하는 것은 전략이라기보다는, 온전히 내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그가 그런 것들에 별로 흥미를 못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 걸음만 방향을 틀어서 말하자면 노상호는 무엇인가를 어떻게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갖고 있지 않다. 그는 모사가인 동시에 방관자다. 동시대를 기록하지만 무엇을 기록해야겠다는 의사가 명확하지 않고, 그 기록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으며, 어떤 기대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눈에 들어온 동시대의 장면들을 빠르고 낯설게 복원할 뿐이다. 그 각각의 그림들을 붙이고 자르고 다시 붙이면서 더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 나간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노상호의 개인전 <더 그레이트 챕북II>가 열리고 있다. 전시장 가운데 그림들을 합체해 만든 거대한 그림이 걸려 있고, 전시장 벽에는 뜬금없이 행어가 설치되어 있다. 옷걸이에는 옷 말고 그림이 걸려 있다. 의도와 관심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게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리타분한 부연을 다 집어치우고 나면, 그냥 재밌다. 노상호의 그림들은 재밌다. 그림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여주는 방식도 재밌다. 골치 아픈 사건·사고조차 엉뚱한 그림 한 장일 뿐이고, 그 그림 속에 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들을 쌓아 놓거나 걸어 놓거나 붙여서 늘어놓으면 개개의 사건·사고 따위는 잊힌다. 한없이 가볍고 더 가볍다. 지금 이 시대를 이보다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이 가능한가? 하지만 그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무엇을 규정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려고 한다. 무엇이든 충분하지 않은가, 라고. 전시는 내년 2월10일까지다.
이우성(시인·미남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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