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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20 19:50 수정 : 2018.06.20 20:04

노보의 전시장. 이우성 제공

[ESC] 이우성의 낙서 같아

노보의 전시장. 이우성 제공
노보는 유명한 타투이스트다. 그를 대표하는 문양은 종이비행기다. 그의 종이비행기는 ‘희망’을 상징한다. 그는 몸에서 종이로, 캔버스로, 벽으로 그림을 확장시켜 나갔다. 희망이라는 관념은 ‘HOPE’라는 활자로 구체화되었다.

올봄 나이키는 노보의 그림, 예를 들어 종이비행기와 ‘HOPE’라는 글자가 새겨진 러닝화를 출시했다. 신발 갑피를 캔버스로 만들어버린 사람은, 조심히 단언컨대, 노보가 유일하다. 노보는 일주일에 30~40㎞ 이상 꾸준히 달리는 러너기도 한데, 그가 ‘그린’ 신발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달리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정말 날고 싶어 한다. 그의 그림에서 색은 중요한 요소다. 그는 파란색을 즐겨 사용한다. 하늘의 색이며, 희망의 색이니까. 그는 ‘네온’으로 글자 형상을 만든다. 희망을 주는 여러 문구는 스스로 위로하는 주문 같기도 하다.

노보의 새 전시 ‘호프 포트(Hope Port)’가 7월8일까지 서울 도산대로 <오드 포트(Ode Port)>에서 열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주제는 ‘포트(port)’ 즉 항구다. 희망과 항구 사이의 여러 관념을 상상하는 일은 꽤 흥미롭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1m가 족히 넘어 보이는 배가 선체에 파란색 네온을 두르고 당당히 서 있다. 돌아온 배가 아니라 출항하는 배다. 전시장 곳곳엔 ‘당신의 항구는 어디인가?’ ‘당신은 언제 떠날 것인가?’와 같은 글자들이 파란색 네온으로 제작돼 있다. 유년을 돌아보고, 미래를 더듬어 나가는 드로잉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쉽고 명확하다. 그래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자신의 삶과 대입하게 된다. 의심할 바 없이 지금, 노보는 스타 작가다.

다만, 이런 언급을 할 권위가 나에게는 없지만, 그래서 어디까지나 감상에 불과하다고 전제하며, 나는 노보가 작가로서 아직 불안하다고 생각한다. 노보의 전시를 여러 번 보았지만 다음 전시가 궁금해졌던 적은 없다. 노보의 전시는 재밌고 다채롭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상처와 치열하게 싸운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그는 애써 그런 흔적들을 외면하는 것 같다. 나는 그가 종이비행기를 바닥에 추락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서지고 소멸하는 순간들을 그가 온전히 지켜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내 팔에는 그가 그린 종이비행기가 날고 있다. 힘을 주면 종이비행기에 근육이 생긴다. 나는 노보가 용감해지면 좋겠다. 그가 가진 감각들 특히 동시대 작가로서의 공감 능력, 곡선을 다루는 미세한 균형감, 여백을 확장하고 동시에 꽉꽉 채워 나가는 상상력을 존중한다. 그러나 본질을 파헤치는 건 감각의 영역이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의 다음 전시를 보아야 할 이유가 나에겐 명백하다.

이우성/시인·미남 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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