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7.03 20:01 수정 : 2019.07.03 20:53

클립아트코리아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 돈을 내면 “착하다”는 13살 어린 상대방
집 사기 위해 악착같이 돈 모으는 그
사랑과 돈 문제를 별개로 생각하는 걸까요?
A 각자 세대의 가치관 따르니 당연히 싸우게 돼
‘물주인가?’라는 감정 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받는’ 수동적 존재에서 벗어나길

클립아트코리아

Q 남자친구는 13살 연하로 32살입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죠. 남자친구가 도저히 안 되겠다면서 헤어지자고 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난 후 한 달을 못 넘기고 다시 만난 적이 많아요. 제가 없으면 죽을 것 같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만나자고 해서 지금까지 만나고 있어요.

그런데 남자친구와 저는 스타일이 조금 달라요. 남자친구는 철저히 더치페이를 주장하는 타입입니다. 전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그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요. 우리 세대 데이트 풍경처럼 남자가 주로 내고 가끔 한 번씩 여자가 내는 문화에 익숙해요. 저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게 행동했죠. 남자친구는 그런 제 행동에 불만을 얘기하더라고요. “왜 나만 돈을 써야 하냐!” “남자가 주로 쓴다는 건 요즘 세대에게 맞지 않는다” “개념 좀 챙겨라” 같은 말을 했죠. 그러면서 헤어지자고 한 적도 있어요. 그런 말을 들은 후에 한동안 안 보다가 ‘요즘 애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제가 먼저 연락했어요. “데이트 비용 같이 쓰자”고 제가 말하면서 화해를 한 거죠.

저는 지난 1월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남자친구는 4월부터 일을 시작했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평소에도 그랬었지만 남자친구가 자기는 돈이 없다면서 저에게 은근히 기대하는 겁니다. 제가 데이트 비용을 자주 많이 내면 “착하다, 예쁘다”라고 말합니다. 대놓고 좋아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깐 얘는 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아니 자주 들어요. 데이트할 때마다 기분이 살짝 상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안 되겠다 싶어서 말을 꺼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싸우게 됩니다. 남자친구는 욱해서 헤어지자고 먼저 말해버리곤 하죠. 그런데 한 달 후면 다시 연락을 해요. 그는 “잘못했고 잘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만나고 헤어지길 여러 번 했죠. 평소 저 없으면 죽을 거 같이 굴고 예뻐하고 애착을 보이는데 돈 문제에서만은 달라져요. 자신이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해요. 제가 쓰길 원해요. 그런 마음이 너무 잘 보여요. 제가 쓰면 좋아해요. 남자친구는 경제개념이 투철해요. 정말 철저하죠. 어떻게든 한 달에 2백만원 이상은 저축을 한답니다. 계산적이에요.

데이트 비용, 여자친구에게 선물 살 돈 등을 아껴서 본인은 집을 사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악착같이 모으는 거라고요. 그게 다 저를 위한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지, 왜 저를 위한 일이 될까요? 어떻게 저를 위한 일이라고 큰소리를 칠 수 있을까요? 저와 헤어지면 끝인데 말이죠. 이해가 안 가요. 저는 남자친구 생일 선물로 명품 지갑도 사줬어요. 가끔 여유가 있을 때 고급 브랜드 셔츠도 선물했죠. 그는 생일 선물은 10만원을 넘으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주 보고 싶어 하고,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거 먹는 것, 그런 것은 좋아요. 숙박비만 당당하게 본인이 내고 다른 것은 주로 제가 돈을 써야 좋아하는 남자, 저를 좋아하는 건가요? 저를 좋아하는 것과 돈 문제는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사랑에 빠지고 좋아하면 다 주고 싶고 아깝지 않은 것 아닌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길을 못 찾겠습니다.

돈 문제에 상처 입은 여자

A 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시작했지만, 그 감정을 쌓아 나가는 과정에서 데이트 비용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에 감정이 상하는 것은 사실 순식간일 때가 많아요. 이런 부분 때문에 싸움까지 이어진다면, 이제 이 문제를 제대로 직면하고 깊이 통찰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네요.

우리 부모님 세대 때는 사실, ‘데이트 비용 문제’라 거나, ‘데이트 통장’같은 화두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데이트하면 당연히 남자가 돈을 내는 것이 그 시대의 문화였으니까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그저 보조자의 역할에 머무는 것이 기본값이었고, 온전한 경제적 주체로 기능하기 어려웠습니다. 여자는 학교도 제대로 안 보내던 일이 불과 우리 부모님 세대에 벌어졌다는 게 믿어지세요?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통용될 정도로, 여자에게는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 그 남자가 얼마나 경제적 능력이 있는지가 관건이었죠. 남자의 돈과 여자의 젊음(미모)은 그렇게 등가 교환되는 것이 사회의 주된 법칙이었습니다. 남자는 더 많은 돈을 가져야 하고, 여자는 더 어리고 예뻐야 하기에 이 시대의 커플은 나이 많은 남자와 나이 어린 여자의 결합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사회적 조건들이 변했습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교육수준을 갖게 되고, 사회에 진출해 경제적 주체로 기능하기 시작하면서 연애를 둘러싼 모습들에도 상당히 큰 변화들이 찾아왔습니다. 좀 쉽게 표현한다면 이런 겁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 남자의 돈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들이 많아진 거죠. 그 과정에서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겁니다. 돈은 내가 벌 만큼 버니까, 돈 이외의 다른 것들로 나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을요. 드라마 속 재벌남과 어려운 형편의 캔디형 캐릭터의 조합이 조금은 구태의연하게 느껴지고, 능력 있는 연상녀와 귀여운 연하남의 조합이 미디어에서까지 많이 보이는 건 이런 시대적 변화의 반영이기도 한 것이지요.

데이트 비용을 둘러싼 두 분의 싸움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이런 배경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하죠. 두 분은 지금 같이 데이트를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지만, 일단 다른 시대를 살고 있어요. 겨우 40대인데도 당신은 ‘나는 여자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우리 부모님 세대에 사는 사람처럼 굴고 있고, 그는 말하자면 ‘그냥 딱 요즘 스타일’인 거죠. 그는 애초에 당신이 나이가 있고(모아둔 돈이 자기보다 많을 거라 생각했겠죠), 자신에겐 젊음이 있으니, 애초에 데이트 비용은 당신이 대부분 낼 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커요. 그런데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 아닌가요? 이왕이면 더 좋은 조건의 사람을, 이왕이면 더 윤택하고 안정적인 사람을 원하게 되어 있는 것이죠. 예전에 많은 여자가, 자신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았기에 능력남을 기대한 것처럼, 그도 당신에게 그런 능력녀 역할을 기대했을 겁니다. 자, 이렇게 당신은 고전적 가치관인 성별을 기준으로, 그는 요즘 세대의 가치관인 나이 혹은 경제적 능력을 기준으로 돈 문제를 바라보니 당연히 싸울 수밖에요. 각자의 기준에 의하면 상대방이 다 잘못 행동하고 있는 거지요. 어쩌면 그는 매번 당신을 못 잊어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당신을 길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이 시시한 계산법과 기준을 떠나, 조금 우아한 이야기를 했으면 해요.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진심으로 상대방에 대한 내 마음을 체크해보시라는 거예요. 이 사람은 내가 ‘기꺼이’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이 사람은 내가 돈을 쓸 때 그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영혼 없는 칭찬으로 때우려고 하는 사람인지. 그 판단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겠지만, 제가 이것만은 확실히 알려드리죠.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상대방에게 ‘내가 물주인가?’라는 감정이 들게 행동하지 않아요. 자신에게 느껴지는 감정을 외면한 채, ‘잘못했다, 잘할게’라는 상대방의 말만 신뢰해서, 당신이 지금 얻은 결과는 무엇인가요? 돈 쓸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사람과 함께 하기에도 짧은 것이 인생인데요. 돈을 기꺼이 쓰고 싶은 사람과 만나세요, 나에게 돈을 기꺼이 쓰려는 사람과 만나시고요. 내가 기꺼이 쓸 생각도 안 들고, 내게 쓰는 데이트 비용이 아까워 죽는 남자와 데이트하느니, 혼자가 훨씬 낫지 않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랑에 빠지고 좋아하면 다 주고 싶고 아깝지 않은 것 아니냐’고 하셨죠? 네 그 말은 너무나 맞죠. 그런데 그 말이 맞는다면 당신 역시 그 사람을 전혀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네요. 혹시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받고 확인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생각하시는 거라면, 그 생각이야말로 당신의 가장 큰 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곽정은 작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