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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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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 5년 반 만난 남자친구
회사 동료·친구에게 나를 소개시키지 않아
싸운 뒤 연락없는 그, 이대로 끝내야 할까?
A. 당신도 모르지 않았을 관계 속 결핍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
뭔가 애원해야 하는 상대와 더 사귀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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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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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7년 전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거기에서 그를 만났어요. 5년 반째 연애를 이어가고 있어요. 성향과 가치관 등이 비슷해서 잘 만났지요. 둘 다 사람이 많은 자리 싫어하는 ‘집순이’랍니다. 그래서 주로 집에서 데이트했어요. 최근에는 그가 진급 시험을 준비하느라 한 달에 두 번 정도밖에 못 만났지만, 가능한 날에는 꼭 만나 데이트를 했어요.
그와 만나면서 그의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은 없어요. 남자친구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워요. 지역에 있는 고향에 살다, 회사 기숙사로 이사를 왔죠. 남자친구의 친구들은 다른 지역에서 일하면서 살고 있기에 모이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5년 넘는 시간 동안 모이는 걸 딱 한 번 봤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고 해서 혼자 가라고 보내줬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왜 나를 친구들에게 소개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자기는 여자친구와 친구를 구분해 만나는 편이라고 말하더군요. 신경 쓰는 게 싫다고 했어요. 남자친구는 제 친구들이 궁금하다거나 만나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회사 동료와 아주 가깝게 지냅니다. 기숙사에 살아서 그런 걸까요? 같이 해외여행이나 캠핑도 가며 함께 잘 놀러 다닙니다. 그동안은 남자친구만 만났지, 딱히 남친 주변은 안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자친구와 회사 동료들이 그렇게 친해지고 나니 궁금해지더군요. 동료들과 같이 보자고 몇 번을 말했어요.
남자친구가 최종 진급 시험에 합격한 날이었어요. 상사와 술 한잔 한다고 말하기에 같이 가겠다고 했어요. 평소 남자친구가 자주 이야기하는 상사도 나이는 5살 정도 차이가 나고 친하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친한 회사 동료와 술을 마신다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꽤 높은 직급인 상사와의 술자리였습니다.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어려운 분과의 술자리인데, 제가 이해를 못 하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난감했긴 했겠죠. 어쨌든 그 건으로 싸웠어요. 서로 사과는 했지만, 이후 연락이 없더라고요. 전화 걸어 그 얘기를 하면서 “헤어지고 싶어서 그래?”라고 물었더니 처음엔 “아니야”라고 했지만, 결국 헤어졌어요.
화가 나서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제가 먼저 그렇게 싸움 걸어주길 바랐다고 하더라고요. 권태기였을까요? 그가 싫다고 했을 때 기다려 줄 걸 그랬어요. ‘더 잘해 줄 자신도, 의지도 없고 더 좋은 사람 만나라’는 문자가 왔어요. 다음날 만나 울면서 붙잡았어요. 일단 한 달 동안 시간을 갖기로 했죠.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없어요. 3주쯤 지났을 때 제가 한 번 연락하고, 지금은 저도 연락하지 않고 있어요.
전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제가 먼저 연락하는 게 오히려 관계를 더 나쁘게 할까 조심스러워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같진 않아요. 집과 회사 그리고 뭔가 배우는 곳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우린 오래 만나서 연결고리가 정말 많아요. 제 적금도 그의 이름으로 들었어요. 그의 직업 특성상 그 사람 이름으로 가입하면 이자가 높았거든요. 커플 적금도 있습니다. 해약도 못 하고 묶여 있어요. 남자친구가 마음이 정리되면, 해약하고 연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제 명의로 된 커플 통장도 해약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는 적금 해약을 안 했더군요. 아직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요? 해약해서 아예 연결고리를 끊고 기다려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연락 올 때까지 두고 봐야 할까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적금 해약하면 정말 끝일 거 같기도 하고요. 그와의 관계 이대로 끝내야 할까요? 이대로 ‘잠수 이별’을 맞이해야 할까요?
연락이 망설여지는 여자
A. 제가 운영하는 작은 공간에는 식물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아주 작은 화분부터 제 키보다 큰 야레카 야자까지 다양한 나무들이 있죠. 처음에 식물을 그 공간에 들였을 때는 모든 나무가 다 싱싱했어요. 당연한 일이죠. 우리가 구매할 때 모든 나무는 가장 좋은 상태로 배달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며칠간 바빴고 그 공간에 일주일 만에 들렀던 어느 날 오후, 저는 그만 걸음을 멈추고 작은 탄성을 지르고 말았어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싱싱하던 허브가 완전히 말라 죽어 있었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옆의 허브는 멀쩡했지만 그 허브만은 어쩐 일인지 거의 '과자'가 되어 있었죠. 네, 그걸로 끝이었어요. 제가 사흘만 일찍 도착해서 물을 주었다면 살아났을 그 허브는 결국 화분에서 분리되어 쓰레기장으로 직행하고 말았습니다. 이젠 아무리 물을 주고 값비싼 영양제를 주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걸, 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일주일 전에 푸릇푸릇 자신을 뽐내던 작은 생명이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죠.
왜 이렇게 화분 이야기를 길게 하냐면요, 우리가 누군가와 맺는 관계가 때로 이와 참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나무에도 한 시절이 있듯이, 관계에도 한 시절이 있어요. 5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두 사람이 만들었던 관계에는 분명 설렘도 있고 신뢰도 있었을 겁니다. 함께 하는 미래도 이따금 떠올려 봤을 테고요. 하지만 관계에 생로병사가 있다면, 당신이 5년 반 동안 만들어온 이 관계는 아마도 '병과 사 사이 어디쯤'에 있을 수도 있고, 이미 '사'의 범위에 들어와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당신도 모르지 않잖아요? 오랫동안 만났지만 당신은 늘 결핍을 느꼈을 거예요. 여자친구로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소개받고 '내가 너에게 어떤 사람인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상사와 술 한잔 하는 자리에 가겠다고 해서 싸움이 났고 그래서 결국 헤어지게 되었으니 '내가 그러지 말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죠. 건강하게 소통이 잘 되는 관계에서는 이런 식의 상황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지인에게 나를 소개하고 말고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 사람에게 내가 의미 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었으니까요. 애초에 둘 사이에는 제대로 된 소통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고,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마음에도 다소 차이가 있었을 거라는 짐작도 충분히 가능해요.(당신에겐 오해해서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잘못 정도가 있긴 한데요, 같은 한국말을 쓰는 관계에서 이 정도 오해는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부분이었죠.)
당신의 전 남친은, 그냥 여러 가지로 '귀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요. '잘해줄 의지가 없다'는 그의 마지막 문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죠. 이미 마음이 식어버린 지 오래이지만 딱히 헤어지자고 하기에도 모호해서 그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정말 많거든요. 손가락으로 만지니 시리얼처럼 바스러져 버리고 말았던 저의 허브 나무도, 멀리서 흘깃 보았을 땐 적어도 '초록색'이긴 했어요. 여느 식물들처럼 말이죠.
다시 만나고 싶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요. 자기 손으로 관계를 끝낸 사람이나 속 시원하지, 일방적으로 당한 사람은 언제나 강한 미련이 남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당신이 더는 다치지 않아요. 적금 통장 때문에 다시 연락하다가 술 한잔하고 다시 회복되고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 인간세계의 연애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저 두 가지 통장 때문에 미련을 갖지는 말았으면 해요. 혹시 마음이 남아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는 그 돈은 그냥 자기 몫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중도해지수수료를 무느니 일단 만기를 채우고 나중에 절반의 금액을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 문제는 적금이 아니잖아요, 그가 두 달 동안 당신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연결고리가 많았다고 추억하시지만, 그는 그런데도 당신을 여자친구로 소개한 적도 없고 이 관계를 먼저 끝내자고 했죠. '잠깐 시간을 갖자'고는 했지만 너무 많은 연인이 그 말을 이별할 때 연착륙하기 위해 씁니다. 5년 반이나 만났지만 점점 마음이 식어 버린 사람에게 어쩌면 그건 마지막 배려는 아니었을까요. 혼자 맘 끓이고 추측하는 것은 모두 그만두시고, 정말 마지막으로 한 번 마음을 표시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결과가 나쁘더라도, 너무 큰 상처로 남지 않길 바라요.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맘대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운 것만으로, 5년 반은 헛된 시간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생각해보세요. 늘 뭔가 애원하고, 소통하는 데에 힘이 드는 상대와 꼭 더 사귀셔야겠어요?
곽정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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