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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16 20:25 수정 : 2019.01.16 20:29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 드문드문 연락하다 결국 좋아진 남자
필요할 때만 부르는 느낌 지울 수 없어
정리하겠다 마음먹었는데 연락이 오면 좋아

A. 진심인 사람은 ‘간 보나?’하는 생각 안 들게 해
‘노’(NO)를 잊은 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여
마음 얻으려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건 아닐지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Q 저는 30대 후반 여성입니다. 이혼했고 아이도 있어요. 10년을 알고 지낸 언니가 자기 친구인 ‘돌싱’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어요. 전 거절했어요. 하지만 언니는 둘만 보기로 한 장소에 그를 데리고 나왔어요. 그 오빠가 친구 한 명을 더 불러 4명이 밥을 먹었어요. 저녁 시간이다 보니 술자리가 되었고요. 별로 내키지 않아 안 마시려고 했는데 한 잔 만 하라는 언니 말에 술을 마셨습니다. 2차로 다른 식당을 갔는데, 거기서도 술을 마셨습니다. 노래방도 갔는데, 언니는 먼저 가고 셋이 남아 놀다가 오빠의 친구도 가서 둘만 남게 되었어요. 저는 만취했고, 결국 ‘관계’를 하게 되었어요.

아침에 눈을 뜨고 어찌나 황당하고 민망했는지요.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저와는 반대로 그는 자연스럽더라고요. 같이 밥을 먹고 연락처를 주고받고 헤어졌어요. 헤어질 때 그는 연락하라고 했지만, 솔직히 이렇게 시작된 사람과 어찌 연락하겠냐며 전화를 안 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 날 새벽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전화를 안 받았어요. 다음날 메시지가 와 연락을 주고 받다, 일주일 쯤 지나 동네에서 만났어요. 그날은 술 가볍게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헤어졌고요. 그렇게 메신저로 계속 연락하면서 지냈어요. 새벽에 전화가 온 적도 몇 번 있었죠. 전화는 대부분 안 받았어요. 그러다 한 번 받았는데 계속 나오라고 조르는 겁니다. 안 나갔어요. 그랬더니 ‘이래서 여자가 싫다’는 문자가 왔고, 그냥 무시하고 말았지만 계속 연락은 이어졌어요.

그렇게 드문드문 문자를 주고 받았어요. 그러다가 그가 “복잡한 일이 있다”고 해서 한동안 만나지는 못한 채 3개월이 지났죠. 그 뒤 연락이 와 오빠 친구들 있는 곳으로 가서 같이 술을 마신 적도 있어요. 얼마 있다 그가 친구들하고 있는데 또 오지 않겠냐고 해서 못 갈 거 같다고 했지요. 그때 전 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그런데 계속 기다릴 테니까 오라고 하더라고요. 영화 보는 내내 언제 오느냐고, 아직 영화 안 봤으면 다음에 보라는 말까지 하면서 계속 오라고 했어요.

영화를 보고나니 자정이 넘었어요. 그래서 안 가려고 했는데, 잠깐이라도 보자고 해서 결국 만났고요. 오빠가 먼저 “네가 편해서 좋다”, “오빠는 편한 사람이 좋아 편한 사람만 만났다”고 하더군요.

제가 느끼기엔 필요할 때만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 술 먹을 때만 찾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하루는 “우리가 무슨 사이냐”고 했더니 “왜 그러냐”며 대답을 피하더군요. 바쁘고 아팠다고 하는데 핑계 같았어요. 그런데 기분이 너무 나쁜 겁니다. 제가 이미 오빠를 좋아하게 됐거든요.

그 뒤로 만날 때마다 “너는 참 편하다, 오빠를 참 편하게 해준다, 징징거리지 않아서 좋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다 갑자기 낚시를 가자고 해서 갔는데, 친구들과 가는 자리에 절 부른 거였어요. 너무 불편했지만, 티를 안내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어요. 친구들이 “성격 좋다, 착하다”며 칭찬을 했어요. 오빠는 “그러니까 내가 얘를 좋아하지”, “성격 좋아”, “착해” 뭐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밤이 깊어지자 갑작스럽게 따로 우리끼리만 식당에 갔습니다. 그는 “너는 남자가 많고 남자관계가 복잡해 보인다”고 하는 겁니다. 친구와 잘 어울리는 것도 싫다는 식으로 돌려 말하더군요. 좋아하는 사람이니 모든 말이 신경이 쓰였어요. 신경 안 쓰는 척, 쿨한 척하는 것도 모르고 상대방은 그게 참 좋다고 해요. 다른 여자들처럼 징징거리지 않고, 다 받아주고, 오빠를 기다려주고, 맞춰줘서 정말 좋다고 하네요. 이 사람한테 저는 뭘까요? 계속 이 사람과 만나야 할까요? 솔직히 드문드문 연락 오는 사람인데, 내가 연락 안 하고 그 사람 연락 안 받으면 쉽게 이 관계가 끝날 것 같아서 연락을 무시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면 그때마다 그가 집착하며 문자를 보내고, 전화하고 하는 모습에 흔들려 다시 연락 주고받고 만났어요. 오빠가 하는 행동과 말만 보면 절 좋아하는데, 간을 보는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연락을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을 땐 열심히 하면서 막상 내가 연락하면 연결이 잘 안 됩니다.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도 모르겠어요. 자꾸 자기 지인들과 있는 자리에 저를 부릅니다. 전 불편해요. 이제 제가 문자를 해도 답장이 늦어요. ‘연락하지 말아야지, 정리하자’고 마음먹으면 연락이 와요. 막상 연락이 오면 좋아요. 이 사람은 저를 좋아하긴 하는 걸까요?

진심을 모르겠는 여자

A 결론부터 이야기할게요. 그는 당신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백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가지의 사랑이 있겠지만, 그렇게 사랑하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해도 친밀한 관계에는 ‘보편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거든요.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상대방에게 ‘나를 간 보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진실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진실한 노력을 하죠.

때때로 당신에게 만나자고 하면서 당신이 원할 땐 연락조차 잘 안 된다는 건, 술자리에 갑작스럽게 부르는 일만 반복한다면, 당신과 진지한 관계를 맺을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명확한 증거이지요. 복잡한 일이 있어 3개월씩 연락이 안 될 수도 있고, 너무 바빠서 연락을 받기 힘든 일을 하고 있다 쳐도 당신을 진지하게 만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후에 상대방과의 관계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노력합니다. 새벽에 갑자기 전화하거나, 늦은 저녁 갑자기 ‘지금 나와’라고 하는 식이 아니라 당신과의 약속을 미리 잡고 당신을 제대로 알아가려는 시간을 보내려고 했을 거란 뜻이에요.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보면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가도, 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신다고 하셨죠. 당신을 정말로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은, 한 가지만 합니다. 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 그게 바로 그 사람이 진지함이 없다는 증거죠. 자신의 그 느낌을 왜 존중하지 않으세요? 당신 내면에 존재하는 현명함이, ‘이건 진짜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당신의 마지막 질문, ‘이 사람이 저를 좋아하긴 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은 사실 어리석은 것이 되고 맙니다. 네. 좋아하기야 하니까 당신을 술자리에 계속 불러내겠죠. 싫어하는 사람을 불러내기야 했겠습니까? 좋아하긴 하지만 당신을 딱 그렇게, ‘술자리에 불러낼 정도’로만 좋아하는 것이라고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좋아한다, 싫어한다’ 두 가지만 있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는 당신을 딱 그 정도의 상대로 생각합니다. 가끔 만나 술 마시고 분위기 맞춰주고 욕심을 채우기에 적절한 상대요. 이것은 제대로 된 연애가 아니며, 그는 당신에게 진지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당신이 그 ‘오빠’의 마음을 갖고 고민하는 건 솔직히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이토록 명확한 증거들이 있는 데도 여전히 그 오빠와 만나는 게 그 자체로 좋다면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당신의 선택일 테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고민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사전에는 ‘거절’과 ‘솔직함’이라는 단어가 있습니까? 왜 당신은 누군가가 당신의 인생에 크든 작든 영향을 끼치려고 할 때, 당신이 진짜 뭘 원하고 바라는지 생각하지 않나요? 불편하면서도 만남을 거부하지 못하고, 밤 12시가 넘어 만나자고 할 때 나가기 싫었지만 결국 나가고, 남자의 지인들과 어울릴 때 불편했지만 거부도 하지 못하고….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노’(NO)라는 말을 잊은 채 사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당신의 편지 속에서 당신은 잠깐은 싫다고 생각하고, 망설이기도 하지만 결국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맞춰줘요. 물론 모든 걸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죠.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노력, 배려하는 마음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할 때는 그걸 표현할 수 있어야 상대방도 당신을 존중하는 법입니다. 혹시 ‘징징거리지 않아서 좋다’, ‘다 받아주고 편하게 해준다’는 말이 나를 특별하다 인정해주는 칭찬으로 들리시나요? 그 사람의 그런 태도나 여성관도 문제지만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이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당신이 다른 사람인 척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은 신경 안 쓰는 척, 쿨한 척하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상대방의 마음도 모르겠고, 나는 나대로 쿨하고 사람 편안하게 해주는 여자인 척 연기하는 관계에서 그 어떤 진실한 만남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일일이 집착하고 상대를 못 믿는 것도 문제겠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서로에게 요구하고 협상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사회가 혹은 상대가 규정하는 ‘바람직한 여성상’에 자신을 맞추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요? 나에게 진지하지 못한데, 어떻게 상대에게는 진지함을 바랄 수 있겠어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세요. 거절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술자리에 안 나갔다고 화낼 남자라면 안 만나는 게 맞지 않습니까? 당신을 존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했다고 해서 당신을 떠나거나 떠나갈 것을 예고하며 협박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인 척 연기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본래 모습을 존중하되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솔직해지고, 상대방에게 단호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당신은 당신 곁에 있을 가치가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노’(NO)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세상이 비로소 나에게 ‘예스’(YES)라고 말하는 법이더라고요.

곽정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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