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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26 09:34 수정 : 2018.04.27 11:40

클립아트 코리아.

[ESC]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클립아트 코리아.
Q 저는 3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안정된 집안에서 그저 뭐든 평균 정도만 유지하자는 주의였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퇴직 뒤 거액의 사기를 당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학교도 자퇴하고 3년 정도 온 가족이 달동네 단칸방에 살며 허드렛일 비슷한 일을 하며 빚을 갚아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한 대형 자동차 공장 보안운영팀에 계약직으로 들어갔습니다. 계약직 신분이었지만 급여와 각종 혜택이 단번에 상승했고 제 이상형인 여자를 만나 연애도 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얼굴만 바라보아도 좋다는 걸 그녀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까요. 2년 뒤 정규직 심사에서 탈락한 후 상사의 추천으로 경남 양산 쪽 공장의 생산직에 들어갔지만, 줄어든 급여와 복지는 제게 부족했습니다. 그녀와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자격지심이 생겼지요.

그래서 백방으로 다른 직장을 찾아보다가 경기도의 한 자동차 공장에 취업하게 됐습니다. 연봉이 6천만원이란 얘기에 저는 너무나 기뻤죠. 1년 뒤 결혼하자고 그녀와 약속했지요. 2조2교대 패턴의 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하루 12시간 근무에 한달에 2~3일 정도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퇴근 뒤, 사는 집의 주인이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고(같은 건물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거리낌 없이 내려갔지요.

집밥이 그리웠던 저는 맛나게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 일이 자주 생겼습니다. 주인 부부는 “자넬 보니 내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내 딸과 한번 만나보지 않겠나?”라는 얘길 꺼냈습니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절했지만 한사코 얘기만이라도 해보라고 해 결국 그 딸을 만나 차 한잔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묘하더군요. 넉넉한 집안에서 온실 속 화초이겠거니 했는데, 수수한 모습과 알뜰하고 선한 품성이 보였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이 저를 고평가해주고 너무 잘해주니, 그런 경험이 없던 저는 당황스러웠지요. 당시 여자친구 부모님은 ‘투룸’ 따위에선 우리 딸을 살게 하지 못한다고 했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 저는 업무적인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누적되어 여자친구에게 짜증을 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일에만 더 몰두했죠. 어느 날 연장근무로 파김치가 되어 귀가한 저녁. 몸살 기운까지 겹쳐 쓰러져 누워 있는데 그녀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다짜고짜 “자네 이럴 거면 우리 딸과 헤어지게.” 울고불고 매달렸어야 했는데 어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는지 홧김에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가 울음을 터트리며 왜 그랬냐고 난리를 쳤지만 이미 독한 감기약에 취해 대답을 피하고 말았습니다. 일사천리로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우습게도 주인집 딸과 만나게 됐습니다. 예전 여자친구처럼 가슴 벅찬 사랑과 설렘이 없었지만, 마음은 편했습니다. 결국 상견례까지 하게 됐습니다. 주인집 쪽에서 전셋집, 차, 결혼비용 일체를 내고, 차후 육아까지 책임지겠다는 겁니다. 결혼식 날짜까지 잡았는데, 그녀가 싫은 것도 아니었는데, 결혼을 못하겠다고 말해버렸습니다. 1주일을 고민했습니다. 이 여자와 결혼해 경제적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사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도 했지만 평생의 부끄러움으로 남아 내 마음을 괴롭힐 것 같았습니다. 지난 옛 그녀에 대한 죄책감까지 더해졌습니다.

저는 모든 걸 버리고 그 하숙집에서 나와버렸습니다.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두 마리 다 놓친 격이었지요. 옛 여자친구는 저와 헤어지고 곧 다른 남자를 만나 얼마 전에 결혼을 했지요. 매일 ‘난 쓰레기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살면서 나 자신은 정말 도덕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것이 무너졌지요.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 스스로 잘못으로 잃어버렸다는 크나큰 상실감에 너무 힘이 듭니다. 이제는 옛날 여자친구만큼 사랑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또 그럴 의욕조차 생기질 않습니다. 자살까지 상상할 정도입니다.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 50평 빌라에 살다가 집이 망해 달동네 단칸방에 갔을 때보다 더 큰 상실감을 갖고 사는 지금,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요. 죄책감에 시달리는 남자

A 상실감 때문에 괴로워서 연락을 주셨네요. 사랑하는 사람을 놓쳐버렸고, 그 와중에 다른 여성을 만나다 깊은 자괴감까지 경험했으니 상실감과 괴로움은 몇배가 되었겠죠. 극도의 슬픔 속에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아버지의 퇴직 후 갑작스럽게 벌어진 경제적 상황,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빚을 갚아야 했던 힘든 상황은 당신에게 아주 확고한 삶의 명제를 갖게 한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는다면,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거라는, 그런 명제요. 물론 세상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돈돈돈’ 하며 사는 것이 현실이지요. 하지만 갑작스러운 위기로 인해 삶의 큰 변화를 겪었던 당신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경제적인 안정에 대해 훨씬 더 염려하고 두려워했을 겁니다.

삶을 살아가는 기준선이 온통 경제적인 안정인가, 그렇지 못한가에 맞춰졌을 테죠. 저는, 당신이 당신의 지나온 시간을 서술하는 방법을 보면 더 확신할 수 있었어요. ‘계약직 신분이었지만’ ‘줄어든 급여와 복지로 그녀와 결혼할 수 있겠느냐’ ‘연봉 6천만원’ 등.

당신은 스스로의 인생을 오직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겁니다. 사랑하던 그녀가 있었으니 당신은 사랑도 중요했노라 말하고 싶겠죠. 저는 당신에게 사랑이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1순위의 관점이 ‘돈’과 ‘경제적 안정’이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에요.

건물주 내외를 만나기 전까지는, 힘들긴 했어도 즐거웠던 건 당연합니다. 당신에게는 딱히 다른 옵션이 없었으니까요. 지긋지긋한 경제적 불안정,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도 원룸이냐 투룸이냐를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당신이 기댈 사람은 여자친구뿐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당신에게,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와 환대 어린 분위기라는 조건은 너무도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당신 아니라 누구라도 혹할 만한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혼란스러웠겠죠. 사랑하는 여자, 그러나 가난함과 부모의 반대. 사랑하진 않는 여자, 그리고 여유로움과 환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고군분투했던 건 당신의 세계를 지켜내기 위함이었겠지만, 그 세계가 어쩌면 별것 아니라는 자각이 당신으로 하여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이 만남 이후로 보였던 행동들은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신이 새롭게 내린 선택들인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한 당신의 서술은, 그래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홧김에 어떤 말이 나왔고, 대답을 피하고, 헤어짐의 수순을 밟고, 상견례까지 하게 됐다.’ 이 모든 행동의 주체는 당신인데, 당신은 이것들이 당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까지 일이 되어버렸다’고 한걸음 떨어져서 말하고 있으니까요.

네, 당신은 그저 새로운 상황 앞에서 혼란스러웠을 뿐입니다. 종교처럼 믿고 있던 경제적 안정이라는 가치가 손쉽게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단순한 사람도 아니었고, 돈이면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죠.

스스로를 비겁하고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그래요? 정말 당신이 비겁하고 비도덕적인 사람입니까? 당신은 열심히 살아왔고, 어떻게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고 했는데요. 현실의 고단한 무게를 버텨내기 위해서 애썼던 당신이 어떻게 비겁한 사람입니까? 무시와 반대에도 사랑하는 여자와 행복하게 사는 꿈을 꿨던 당신이 어째서 비도덕적인가요? 당신은 다만 흔들렸을 뿐이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선택을 하지 못했을 뿐이죠. 잘된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은 그것대로 후회할 가치가 있겠으나, 스스로의 인생 전부를 부정할 필요까지는 없는 겁니다. 당신은,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조언은 이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두 여자와의 관계를 날려버린 그 모든 일의 중심에 당신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슬픈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그건 당신이 한 선택이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게 버티듯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의 당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죠.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비로소 당신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실패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외부가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돈과 미래의 안정을 위해서만 골몰하는 삶이었으니, 이젠 삶의 기준선을 조금 수정해 살아보는 것도 방법이 되겠군요. 상처는 아프지만, 그 상처가 아물 때쯤 분명히 성장도 뒤따르는 법이죠. 모쪼록, 당신이 하게 될 새로운 선택을 기대합니다. 곽정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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