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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28 20:22 수정 : 2018.03.29 15:16

클립아트코리아.

[ESC]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클립아트코리아.
Q 저는 서로 합의했다면 연애의 형태는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쿨하게 만나기로 서로 동의했다면 ‘원 나이트 스탠드’(하룻밤 섹스) 같은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하룻밤 사랑’은 가벼워서 ‘좋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당히 섹스만 나눠도 좋은 상대가 있을 때는 거절하지 않아요. 그런 관계는 짧게 끝나지만 나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대강대강 연애를 해왔어요. 연애라고 말하기 뭐하지만, 나름 쿨하고 몸이 외롭지 않은 연애였던 거죠. 저는 상당히 개인적인 사람입니다. 외로움 해소나 행복 같은 걸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면, 쌍방이 피곤해진다는 게 제 기본 생각이죠.

그런 제가 지금 3년째 연애 중입니다.(저 스스로 놀라워요.) 연애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덮어놓고 사랑한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그런 사랑을 하고 있어요. 상대의 따뜻한 마음이 제 이기적인 마음을 다 녹여버렸거든요.

제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어요. 저는 섹스를 정말 좋아하는데, 제 남자친구는 저보다 16살이 많습니다. 물론 남자친구와의 잠자리는 좋아요. 하지만 사귄 지 3년이 지나면서 그와 섹스 하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그를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그래요. 마치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제 몸의 쾌감에 집중하는 일이 어려워요. 남자친구에게 물으니 그는 여전히 좋다고 해요. 하지만 그건 그냥 제가 좋아하라고 한 말이고, 그의 상태도 전 충분히 알 거 같아요. 우리가 더는 ‘덮어놓고 화끈하진’ 않다는 것을요. 너무 사랑하는데 섹스에 집중하기 어렵다? 좀 이상한 문제죠.

그와 적당히 섹스를 지속해서 즐기다 보니, 요즘엔 전에 없는 성욕이 들끓는다는 것도 문제예요. 도톰한 입술, 남자다운 손, 중저음의 목소리 등 이런 것들에 제 몸이 격하게 반응해요. ‘저 남자랑 지금 당장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직장 동료에게서 이런 느낌을 계속 받고 있어요. 이 문제를 남자친구와 얘기 나눠 봤어요. 그는 “바람을 피우겠다는 말이냐?”며 차라리 듣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구구절절 쓰긴 했지만, 제 문제는 결국 우리 커플의 섹스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남자친구 한 사람이에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남자친구 말처럼 성전문병원에 함께 갔다 와야 하는 걸까요?

애인과 섹스가 힘든 여자

A 일단 당신의 과거로 들어가 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네요. 원 나이트, 쿨하게 만나기로 동의한 관계, 적당히 섹스만 나누는 상대, 짧은 연애, 대강대강 하는 연애…. 이것은 모두 당신이 과거에 지향하던 어떤 것들이죠. 이렇게 핵심만 늘어놓고 나니 어떤 느낌이 드나요? 쿨하고 유쾌한가요? 저는 누구에게도 절대로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안간힘을 쓰는 한 사람이 보이는데요.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신은 누군가와 깊고 유일한 관계를 맺고 타인에게 그런 상대가 되는 것도 의식적으로 피해 왔던 것 같아요. 누군가와 잠시 몸으로 연결되긴 하지만 아주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그래서 언제 헤어지더라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관계요. 이 과정에서 상처를 받지 않겠다는 당신의 의도는 만족이 되었겠지만 추측건대 당신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생겼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스스로 내면에 대한 오해일 겁니다. 사랑이란 걸 믿지 않는다는 듯 세상 쿨한 사람인 듯 굴었지만, 스스로 물어보시죠. 당신 정말 쿨한 사람 맞나요? 쿨한 걸 추구한다고 입 밖으로 말하는 사람일수록, 사실은 유일하고 믿음직한 사람과 깊고 충만한 사랑을 하길 바라는 경우를 저는 너무도 많이 보아 왔어요. 진실한 사랑을 받길 원하지만 그런 걸 원하는 자신이 상처받는 것 역시 두렵기에, 이루지 못할 것 같은 꿈이니 아예 버려 버리는 거죠. 스스로 개인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사실 당신은 그저 깊이 외로운 사람 아니었을까요? 나라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다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길,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맘을 알아줄 사람을 만나기 어려우니, 몸이라도 외롭지 말자고 적절한 타협을 했던 것이 아닌가요?

당신에게 생겼을 두 번째 문제는 당신 몸에 대한 오해죠. 정확히는 당신의 욕구에 대한 오해요. 적당히 만나지만 질리면 그만 만나고 마는 관계에서 당신은 섹스는 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당신이 침대 위에서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어떤 상대를 만나야 최고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탐구할 기회를 찾지 못한 것 같네요. 자기가 늘 하던 방식대로 일방적인 섹스를 하려고 하는 남자는 참 많아도, 여자의 반응을 섬세하게 읽어가면서 여자에게 더 큰 쾌감을 주려고 노력하는 태도와 능력이 있는 남자는 만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니까요. 정말 좋은 파트너를 만나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는 이상 자신의 욕망을 알아차리게 되는 일이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죠. 어렸을 때부터 성적인 정보들로부터 차단당하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나는 여성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당신이 맞닥뜨린 문제는 이 두 가지 오해가 결합되어 일어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당신은 당신이 침대 위에서 어떤 은밀한 욕망을 갖고 있는지 아직 모르고 있을 거예요. 거칠게 몰아치고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압도당하는 섹스를 선호하는 한 사람이 있다 치죠. 그런 사람이 3년간 달콤하고 휴식 같은 섹스만 하게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성적 욕구는 다소 해소되겠지만 성적 욕망은 그대로 남아 있는, 당신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동안 내내 이기적인 사람이었던 나를 바꿔준 따뜻한 남자였기에, 당신은 이렇게 내면에 쌓여가는 불만족을 직시하지 못했을 거예요. 예전에 만난 사람과의 잠자리에서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면 당장 그만뒀겠지만, 그렇게 쿨하게 정리할 수도 없었겠죠. 상처 주는 사람들이 싫어 스스로 쿨해지길 선택했다면 더더욱 이 관계에서만큼은 쿨해질 수 없었을 겁니다. 따뜻한 남자친구에게 상처 주는 순간, 당신은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니까요.

당신의 성욕은 문제가 없어요. 다만 당신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하고 있는 오해가 문제입니다. 3년이면 어떤 커플이든 서로의 몸에 익숙해져 초반의 화끈함을 잃는 게 당연한 시기이고, 예전이라면 진작 터졌을 문제가 ‘이 사람은 정말 따뜻하고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해'라는 당신의 속마음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터진 것일 뿐입니다. 발산되지 못한 당신의 성적 욕망이 고개를 들고 있을 뿐이죠. 병원에 가는 것을 말리진 않겠어요. 하지만 당신의 은밀한 욕망이 뭔지는, 당신과 그가 함께 침대 위에서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요? 스무 살에 첫 섹스를 했으니 20년차 섹스라이프를 갖고 있는 저도, 저의 은밀한 욕망을 완벽히 알아챈 것이 불과 작년 여름이라는 게 당신에게 위로가 될까요? 아! 위로 완전 될 것 같은데!

곽정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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