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15 09:13
수정 : 2019.08.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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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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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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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끓인 육개장. 정말 맛있습니다.” 동네에서 딱 마주친 세움 간판. 바로 가게를 찾아가 한 그릇을 주문. 그런데 의아했어요. 고기는 많이 넣었는데 국물이 ‘장례식장 육개장’ 수준이더군요. 맛이 없지는 않아도 특별히 찾아가 먹을 만하지는 않았어요. ‘자신 있게 광고할 맛인가? 무엇보다도 이 가격을 받을 맛은 아닌데?’
“이상해요, 저기 위쪽에 새로 생긴 육개장집이요.” 며칠 후 동네 단골 찻집에 갔다가 의문이 풀렸습니다. 찻집 사장님은 내 말을 듣더니 야릇한 표정을 지었어요. 목소리를 낮추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찻집 사장님도 세움 간판을 봤어요. 사장님이 가게 구석에 앉아 육개장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육개장집 주인의 친구가 찾아왔대요. “야, 웬일이냐, 네가 무슨 육개장이냐?” “아, 모르는 소리 말아, 요즘은 이런 국물을 다 ‘파우치’로 받아온단 말이야.” 손님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큰 소리로 떠벌인 ‘자랑 아닌 자랑’.
아, 그랬군요. 그렇다면 설명이 돼요. ‘직접 끓였다’는 광고도 거짓말은 아니겠어요. 뚝배기에 옮겨 담을 때 고기를 더 넣고 한 번 끓이긴 했을 터이니까요. 파우치 음식은 ① 조리가 편하고 ② 맛이 없지는 않죠. ③ 하지만 딱히 맛이 있지도 않은데 ④ 가격은 비쌉니다. 집에서 파우치 주문해 먹는 친구도 봤어요. 데우기만 하면 바로 먹고 맛도 어느 선 아래로는 떨어지지 않지만, 집에서 먹기에도 싼 가격은 아니라지요.
속았다는 기분이 들기보다는 안타깝더군요. 육개장은 사랑받는 음식이라 제대로 차리면 손님이 넘칠 텐데요. 말 나온 김에 말씀드리자면, 저는 진짜 맛있는 육개장을 두 번 다 제주에서 먹었어요. ① 제주 음식인 고사리 육개장. 고사리와 고기를 길게 찢고 하얀 국물을 되직하게 데워 먹어요. ② 뭍에서 먹는 ‘빨간 육개장’도 제주에 유명한 맛집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죠. 아무려나 그 비슷한 맛을 낼 솜씨가 있다면 파우치를 받아오지는 않았겠지요.
이른바 ‘인생 2막’.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며 중년의 회사원이 자영업 사장님이 되기 시작했어요. 업종 선택은 어떻게? 불황이어도 사람들이 먹기는 해야 할 테니, 먹을거리 장사를 하면 어떨지. 그렇다면 메뉴는 어떻게?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깃국물이나 고기 요리가 좋을 듯. 요리를 배우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치킨집과 고깃집을 창업하는 과정을 보통 이렇게 설명하죠.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장소를 알아보는 것도 창업 아이템을 선택하는 것도 여간 살 떨리는 일이 아니니까요. 트렌드니 ‘니즈’니, 사람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 듯 모를 듯합니다. 집에서 먹을 때 “우와 가게에서 먹는 것 같다”라고 칭찬하다가도, 막상 가게에 와서는 ‘집밥 같은 맛’을 찾으니 말이에요. 남보다 싼 가격에 남보다 질 좋은 고기를 떼어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죠. 그러다 보니 파우치를 쓰기도 하지만, 가성비 떨어지는 음식은 사람들이 금세 외면한답니다.
동양에서 외식업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어요. 중국 한나라 말의 유물을 보면 시장에서 음식을 사 먹는 그림이 남아있죠. 수천년 전에도 잘 팔리던 메뉴는 고기. 큼직한 덩어리는 처마에 걸어놓은 채 잘게 자른 고기를 꼬치로 구워 팔았던 것 같아요. 이때도 자영업은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들, 위로는 안 되겠지만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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