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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0 20:33 수정 : 2019.07.10 20:45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재수생 시절 극장에서 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했어요. 스파이크 리 감독의 <말콤 엑스>를 보자고 약속했죠. (내 취향이 이렇게 ‘고급’집니다.) 그런데 친구가 당구를 치다가 늦었네요. 결국 그날 친구와 극장에서 코미디 영화 <못말리는 람보>를 봤어요. (사실 이쪽도 내 취향입니다.)

기억에 남는 웃긴 장면 하나가 떠올라요. 미국과 일본 정상이 만찬을 해요. 식탁에 생선회가 올랐는데 생선 대가리가 ‘윙크’를 합니다. 눈이 마주친 미국 대통령이 식사를 하다말고 일본 총리 허벅지에 토하고 맙니다.

상 위에 오른 생선 머리. 눈을 마주치면 마음이 편하지는 않죠.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듭니다. 하나, 저 생선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아있었다는 것. 둘, 물고기는 우리와 다른 낯선 생물이라는 생각. <물고기는 알고 있다>을 읽으면 ‘물고기도 포유류처럼 표정이 있었다면 우리가 물고기를 대하는 태도는 지금과 다를 터’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불편한 생선 머리가 가장 맛있다는 말이 있어요. 다음은 ‘어두일미’라는 말에 관한 주장들입니다.

(1) 사람들이 생선 머리를 안 먹으니까 먹게 하려고 지어낸 말이라는 설. 우리 아버지 주장. (2) 남들 안 먹는 부분을 골라 먹으며 미식가인 체하는 사람이 꼭 있다는 설. 내가 뜨끔한 이야기입니다. (3) 생선 머리를 먹는 수고 때문에 고생한 만큼 맛있다고 느낀다는 설. 어려운 책일수록 읽은 사람이 교조적으로 매달린다는 이야기와 비슷하지요. (나도 글을 더 어렵게 써야 하는데, 기회를 놓쳐 아쉽습니다.)

그리고 (4) 정말로 맛있어서 맛있다는 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저는 어릴 때는 생선을 잘 몰랐어요. 먹어본 생선이 꽁치나 조기였으니, 대가리 맛을 알 턱이 없죠. 나이가 들어서야 대가리다운 대가리를 먹어봤어요. 그 맛이란! 볼살과 목덜미살은 쉬지 않고 늘 쓰는 근육이라 맛도 더 있나 봅니다. ‘물고기는 머리, 고기는 꼬리가 맛있다’는 뜻의 ‘어두육미’라는 말도 마찬가지 뜻이죠.

나는 생선 대가리 중에 객주리 머리가 제일 좋아요. 객주리는 쥐치의 제주도 방언입니다. 살이 달고 단단해 쥐포로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생물로 먹으면 더 맛있어요. 고소한 간도 큼지막하고, 머리가 몸통의 절반쯤 됩니다. 덕분에 여러 부분을 발라먹으며 다양한 맛을 비교할 수 있어요. 볼살은 쫄깃쫄깃, 이마의 껍질은 야들야들, 목덜미는 탱글탱글. 조림으로 먹으면 최고입니다. 객주리로 된장국을 끓여도 맛이 있고요.

도미 머리도 좋아합니다. 도미는 객주리와 달리 눈도 크고 입술도 두꺼워 쫀득쫀득한 맛이 더 합니다. 눈과 입술은 양념이 잘 배는 곳이기도 하죠. 그래서 술찜도 좋지만, 일본식으로 달고 짜게 졸여 먹어도 양념이 듬뿍 배어 밥 도둑입니다.

생선 대가리에 맛을 들린 후, 나는 생선을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발라먹게 되었어요. (이 점을 보면 (1)의 주장도 일리가 있을지 몰라요.) 포항에서 나고 자란 K선생은 내 그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요. “저렇게 먹는 사람 본 적이 있어요?” 제주의 항구에서 생선구이를 먹다가 K선생은 가게 사장님께 물었습니다. 사장님은 저를 보더니 어이없어합니다. “나는 어려서 항구에서 살아서 저렇게 발라먹을 필요가 없었어요. 저분은 왜 저러죠?” 결국 어릴 때 생선을 많이 못 먹어봐서 제가 이런 것인가 생각도 해봅니다.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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