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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9 19:39 수정 : 2019.06.19 19:48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두루치기란 무엇인가. 한국 음식의 수수께끼 중 수수께끼죠. 이름은 두루치기지만 지역마다 다른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웹 크롤링으로 빅데이터를 모아 뭔가 해보려던 시도도 실패. 배고프고 머리가 복잡한 나머지 신령님이라도 만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어찌하여 괴로워하느냐?” “제 두루치기가 그만 미궁에 빠졌습니다.”

① 친절한 신령님, 돼지고기와 은박지와 불판을 들고 오시겠죠. “이 두루치기가 네 두루치기냐? 평평한 불판 위에 은박지를 깔고 맵고 달게 양념한 돼지고기를 얹는다. 고기가 익었다 싶으면 무채니 파채니 콩나물 무침 같은 채소를 불판에 듬뿍 올린다. 상추에 싸 배불리 먹고 불판에 밥을 볶아 먹을지니.” “신령님, 신령님, 정말 맛있겠네요! 제주에서 먹던 그 맛이군요.” “그래, 제주에서는 전주식이라고 하더구나.”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말하는 두루치기는 맛이 다릅니다.”

② 신령님은 돼지고기와 육수와 냄비를 들고 다시 나타나실 거예요. “그렇다면 이 두루치기가 네 두루치기냐? 부대찌개 끓이는 얕은 냄비에 양념하지 않은 돼지고기와 신김치를 넣고 육수를 조금 부을지어다. 양파를 많이 썰어 넣으면 단맛도 난다. 김치찌개처럼 끓이고 또 끓이면 국물은 거의 다 날아가고 신김치의 시고 매운 맛이 돼지고기에 맛있게 밴다. 이걸 숟가락으로 떠서 밥에 얹어 먹는다. 라면 사리를 넣어도 좋으니라.” “신령님, 신령님, 말만 들어도 배가 고프네요. 서울 쪽에서 먹던 맛이군요.” “수도권에서는 경상도식이라고 하니라.” “그런데 두루치기는 꼭 돼지고기가 들어가나요?”

③ 신령님은 이번에는 풍선처럼 신기하게 생긴 물고기를 들고 왔어요. “그렇다면 이 물고기가 들어간 도치 두루치기가 네 두루치기냐? 신김치를 먼저 볶다가 도치를 넣은 다음 마무리로 알집을 터뜨리고 알을 넣어준다.” “신령님, 신령님, 아직 못 먹어본 음식이지만 군침이 돕니다.” “도치 두루치기는 강원도의 별미니라.”

④ 여기서 잠깐. ‘두루치기’란 이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충청도의 명물 두부 두루치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손님들이 ‘두부를 맛있게 매쳐라, 때려라, 두루 쳐 내오라’고 주문하다가 ‘두부 두루치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충청도 한 지역 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포(오래된 가게) 진로집 사장님이 밝힌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두루치기란 조리법의 이름일 수 있습니다. 1980년 신문에 ‘남은 양념에 고등어를 넣고 두루치기를 한다’는 표현도 나옵니다.

두루치기가 먹고 싶네요. 저는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신령님, 신령님, 세 가지, 아니 네 가지 두루치기가 모두 다 제 것이 되면 좋겠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제가 전부 먹고 ‘두루치기란 무엇인가’에 답하겠습니다.” 그러나 신령님은 혀를 찹니다. “딱하구나, 인간! 두루치기 1인분도 혼자 먹기 힘든데 어찌 4인분을 탐을 내느냐? 심지어 도치는 겨울이 제철인 것을. 오늘 점심은 편의점에서 먹도록 하라. 요즘은 편의점 식사도 괜찮더구나.” 상으로 밥 한 끼도 사주지 않은 채 신령님은 홀연히 사라집니다. 마치 내 상상 속 존재였던 것처럼 말이죠.

두루치기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면 내가 두루치기를 찾아갈 수밖에 없죠. (올 초 칼럼에 언급한 대로) 언젠가는 전국 유람을 다니며 ‘두루치기 맛 지도’를 만들고 싶네요. 버킷리스트에 담아둘게요.

글·그림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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