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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2 19:57 수정 : 2019.06.12 20:04

그림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그림 김태권 만화가
“언젠가는 함께 중화요리를!” 큰아이가 이유식을 먹을 때 아빠는 꿈(?)을 키웠습니다. 먹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아빠가 아는 만큼은 알게 해주고 싶었죠.

한때는 이상한 공상도 했어요. ‘아이가 친구들이랑 새우버거를 먹고 오면 아빠는 음식점에 데려가 깐쇼새우를 사줄 테다. 그래, 바오샤(멘보샤)도 먹여야지.’ 바오샤는 새우 살을 다져 얇게 썬 식빵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채우고 튀겨낸 음식입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새우 살로 촉촉하죠. 맛이 일품이지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인지 취급하는 가게가 많지는 않습니다. “어느 프랜차이즈의 새우버거에 새우가 너무 적게 들어서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가 모르고 먹었는데도 탈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의 일이었지요.

이제 이유식은 뗐지만, 아직도 머나먼 미식의 길. 큰아이와 중국음식점을 종종 가지만 이 친구가 좋아하는 것은 오직 자장면. ‘내 그럴 줄 알았다.’ 아빠는 가위를 들고 면과 고명을 잘라줍니다. 그런데 저번에는 자장면에 든 새우를 자르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말하더라고요. “새우 아야, 아야!”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은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을 쓰며 고민해온 문제들입니다.

① 첫째로, 육식하는 불편함. 나는 고기 요리를 좋아합니다. 맛있게 먹었던 고기를 보면 군침이 돌고, 안 먹어본 고기를 보면 호기심이 동합니다. 그런 저도 육식은 불편해요. 목숨을 빼앗는 일이니 당연하죠. 게다가 동물들이 죽기 전부터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니, 요즘은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옛날에 저는 ‘오도리’를 종종 먹었어요. 산 채로 껍데기를 벗겨 먹는 새우인데 살은 달콤하고 씹는 맛은 쫄깃해요. ‘오도리’는 일본어로 ‘춤’이라는 뜻입니다. 껍데기를 벗길 때 새우가 펄떡대는 모양 때문에 붙은 이름이래요. 그런데 새우 같은 갑각류가 사실은 고통을 심하게 느낀다는 글을 읽었어요. 새우는 아파서 펄떡댔나 봐요. 이 사실을 알고 미안해하던 차. “새우 아야”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묘했습니다.

② 둘째로, 문화로서의 육식. 이를테면 음식과 종교의 문제 같은 거요. 새우는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따르면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먹지 못해요. 그런데 모세를 예언자로 인정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입장이 오늘날 다 달라요. 독실한 유대교인은 새우를 먹지 않는대요. 기독교도는 마음 편히 먹죠(율법이 저런 줄 모르는 신자도 적지 않을 듯). 이슬람교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들었고요. 얼핏 이상해 보이는데, 왜 이런 차이가 있는지 설명을 찾아 읽으면 나름 타당한 맥락이 있어 보여요. 음식을 배우는 것은, 낯선 문화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죠.

③ 셋째로, 육식과 계급의 문제. 프랜차이즈 새우버거와 요릿집 바오샤는 어떻게 다를까요? 한때 나는 취향의 차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은 ‘흙수저’와 ‘금수저’의 격차일 수도 있습니다. 새우버거는 싸고 바오샤는 비싸거든요. 취향을 따지는 일부터가 계급을 나누고 차별하는 일 일지도 모르죠.

이 세 가지 고민은 갈수록 깊어질 듯하네요. ① ‘공장식 축산’은 앞으로 더 입길에 오를 거예요. ② 종교와 삶의 방식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더 부대끼며 살게 될 테고요. ③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겁니다. 자장면에 고명으로 얹힌 새우 한 마리도 마음 편히 먹기가 쉽지 않은 시대랄까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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