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5 20:03
수정 : 2019.06.05 20:13
|
그림 김태권 만화가
|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
그림 김태권 만화가
|
베를린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자주 가던 동네 식당에 안내문이 붙었어요. ‘수렵 번호 ○○○○번, 우리의 사냥꾼 아무개씨가 잡은 멧돼지 고기로 만든 스튜 팝니다.’ 이럴 수가, 오페라 <마탄의 사수>에서나 보던 독일 사냥꾼이 잡은 멧돼지 고기를 맛볼 수 있다니. 주문부터 하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고기 맛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어요. 가축을 잡을 때 맛을 위해 지키는 규칙이 많아요. 죽이기 전 기절시키는 것은 인도적인 이유도 있지만, 버둥대던 상태로 죽은 고기가 되지 말라는 이유도 있겠죠. 피도 단번에 깨끗이 빼야 하고 죽인 다음 며칠 숙성도 시킵니다. 이런 고기보다 사냥 고기가 맛있을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도 사냥으로 잡은 고기 맛이 궁금한 까닭은 뭘까요? 사냥이라고 하면 왠지 모를 호기심이 생깁니다. 죽은 짐승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지만요.
기독교 : <저주받은 사냥꾼>, 프랑스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의 교향시.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귀족이 일요일에 사냥을 나서죠. 사람들이 말리지만 아랑곳하지 않아요. 끝내 귀족은 신의 노여움을 사 지옥의 악마에게 쫓기는 사냥감 처지가 됩니다. 그의 죄는 신성모독.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나요. 우리가 보기에는 부하들을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게 하고 농민의 땅을 짓밟은 일이 잘못이고요.
불교 : 젊은 시절에 사냥꾼이던 석공혜장, 자기 직업 탓인지 스님을 싫어했다죠. 암자 앞을 지나며 큰스님 마조대사에게 물었답니다. “내가 쫓던 사슴을 보지 못했소?” 일부러 사냥 이야기를 꺼내 스님을 괴롭히려던 심사일 터. 그런데 마조대사는 도리어 되묻습니다. “당신은 화살 하나로 몇 마리를 맞추시나?” 사냥꾼이 잰 체하며 답합니다. “저는 한 발로 한 마리씩 맞추죠.” “에이, 활 쏠 줄 모르는구먼.” “그러는 스님은 활 좀 쏩니까?” “나는 화살 하나로 한 무리를 맞추지.” 큰스님의 ‘무리’라는 말은 사슴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겠죠. 그런데 사냥꾼은 곧이곧대로 듣고 놀랍니다. “아니, 저쪽이나 이쪽이나 같은 생명인데, 한 무리를 다 쏘다니요?” “그러는 그대는 왜 스스로 쏘지는 못하는가?” 어떤 의미일까요? 선불교 이야기는 알 듯 모를 듯합니다. (오죽하면 ‘선문답’이란 말이 있겠습니까) 아무튼 석공혜장은 마음이 움직여 그 자리에서 활과 화살을 꺾고 출가해 훗날 큰스님이 되었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냥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통점 몇 가지가 눈에 띄어요. ① 사냥꾼 본인은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긴다. ② 하지만 사냥터 주위의 사람들은 민폐로 받아들인다. (낯선 사람이 무기를 들고 나타나니 당연한 노릇) ③ 사냥꾼 본인도 켕기기는 한다. 죄책감이라고 해야 할지, 미안함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스튜가 나왔습니다. 사냥으로 잡은 멧돼지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모르겠습니다. 돼지고기 맛이더군요. “그래, 이 맛이야”라고 콕 찍어 말하기에는 국물은 많고 고기는 적었어요. 덕분에 한 가지 더 생각할 거리가 늘었죠. ‘공장식 축산이 아니라 사냥으로 고기를 공급하게 되면, 우리는 더 비싼 값을 내고 더 적은 고기를 먹겠구나.’ 고기는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대신 죽는 동물의 수는 줄어들 테고.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