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5.30 09:26 수정 : 2019.05.30 20:01

그림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그림 김태권 만화가
일본 덮밥 중에 오야코동이라는 메뉴가 있습니다. 부드러운 달걀과 닭고기, 향긋한 파와 양파, 달금하고 짭짤한 양념. 맛있어서 종종 먹어요. 그런데 먹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합니다. 오야코동이라는 이름 때문이죠. 오야(親)은 어버이, 코(子)는 자식. (조폭 영화에서 ‘오야붕’, ‘꼬붕’이라고 할 때의 그 ‘오야’와 ‘코’.) 닭과 달걀, 즉 부모와 아이를 함께 먹는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대요.

유대교의 음식 금기로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 것’이 유명하지만, 젖과 고기를 함께 먹지 말라는 율법도 있대요. 옛날에 다른 종교를 믿던 사람들이 우유에 고기를 삶아 제사상에 올렸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는데요, ‘부모의 젖으로 자식을 삶는 일’에 느끼는 불편함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고기를 먹는다”라는 말에는 “가족과 함께 살던 짐승을 잡는다”라는 말과 “가축을 자식처럼 키운다”라는 말이 숨어 있습니다. 잊으려 애쓰긴 하지만요. 육식의 불편함에 대해 고민할 때 제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미지는 ‘부모가 자식의 고기를 먹는’ 끔찍한 이야기들이에요. 그런데 세계 곳곳에 이런 이야기들이 많더라고요.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봤어요.

① 모르고 먹은 경우 : 속아서 자기 자식의 고기를 먹는 이야기. “내 엄마는 나를 죽이고, 내 아빠는 나를 먹었네.” 이 노래는 그림 형제가 수집한 동화 <노간주나무>에 나옵니다. 엄마가 아이를 죽인 다음 요리해 아빠한테 먹이는 이야기죠. 그리스 신화에도,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도 ‘식사를 대접받았는데 알고 보니 자기 아이의 고기’였다는 이야기가 등장하고요.

② 알지만 모른 체하고 먹은 경우 : 옛날 옛적 중국의 폭군이던 은나라 주왕이 자기 신하였던 주나라 문왕을 괴롭히기 위해 문왕의 아들 백읍고를 죽여 그 고기를 상에 올렸대요. 여기까지만 보면 앞의 경우(①)와 비슷하죠. 그런데 주나라 문왕은 중국에서 성인(聖人)으로 이야기되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모르고 먹었다고 하면 체면이 깎일 것을 걱정했는지, 나중 사람들은 ‘문왕이 알고도 모른 체하고 먹었다’고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글쎄요, 알고도 먹은 쪽이 더 안 좋은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나중에 먹은 것을 게워내고 울었다고는 하지만요.

③ 알고 먹은 경우 : 알지만, 배가 너무 고파 먹은 이야기가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옵니다. 동료에게 배신당하고 자식들과 함께 탑에 갇힌 우골리노 백작. 우골리노 가족은 굶어 죽어갑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우리 살이라도 드세요”라고 이야기하며 죽어가고, 처음에는 거부하던 우골리노도 나중에는 아이들의 살을 먹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처참한 복수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이죠. 아이의 고기를 먹게 되는 상황이야말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자기 아이의 고기를 남에게 먹이는 이야기도 많은데, 이쪽은 다음에 정리하겠습니다.)

아무튼 오야코동을 먹을 때면 제 마음은 복잡합니다. 그래도 먹는 까닭은 맛있기 때문이죠. 달걀도 닭고기도 씹기 편하니 아이 먹이기 좋은 음식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3살 된 아이와 덮밥집에 가면 오야코동을 주문합니다. 남의 부모와 자식을 우리 부모와 자식이 먹는 셈이니 불편하지만, 육식은 원래 불편하지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