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15 19:59
수정 : 2019.05.1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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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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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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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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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마치고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어요. “이민 받고 난민 받고 요즘 이러는 것이 미국 같은 좋은 우방을 버리고 이슬람 쪽과 친해지려는 움직임 아닙니까. ‘박근혜 대통령님’(?)도 감옥에 보내고 말이에요.” 난처하더군요.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기 어려웠거든요. 심지어 그날 강연 주제는 ‘미술작품으로 보는 오늘날의 인권 문제’였다고요.
말씀이 길어지려던 참에, 강연을 주최하신 분이 마이크를 잡으셨어요. ‘아, 이제 살았다!’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지요. 그런데 마른하늘 날벼락 같은 말씀. “자, 강연자와 질문자 두 분만 남겨놓고 다음 행사장으로 이동합시다. 두 분은 강당에 남아 충분히 말씀을 나누시고요.” 아이고, 나도 데려가 주셔야죠.
나중에 생각하니 질문자분께 이 기사를 소개해드릴 걸 그랬다 싶더군요. 2018년 5월16일, 미국 언론 <시엔엔>(CNN)이 ‘라마단에티켓’이라는 기사를 인터넷에 냈어요. 라마단은 이슬람의 종교적인 달, 한 달 내내 낮에 금식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라마단 기간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에게 이런 에티켓을 권합니다. 제목은 거창한데, 내용은 지극히 상식적이에요. ①무슬림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밥을 먹어도 됨. 다만 ②점심 무렵 식당에서 회의를 잡으면 곤란. ③같이 굶어줄 필요 전혀 없음. 다만 뭐라도 같이 하고 싶다면 ④해 떨어진 후에는 만찬을 벌이니 이때 와서 같이 먹읍시다.
⑤라마단 기간은 음력으로 계산, 양력 날짜로는 해마다 달라지니 무슬림 아니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음, 다만 ⑥직장에서는 이런저런 일정을(특히 식사) 융통성 있게 잡아주면 고마울 것. ⑦커피 마시러 같이 가자고 해도 실례가 아님. 다만 ⑧함께 커피를 마시지는 못하니 양해를. ⑨그래도 무언가 챙겨주고 싶다면 (성탄절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듯) “라마단 무바라크”라고 인사해주면 감사.
⑩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실례. “나도 금식할 거야! 안 그래도 살 빼려던 참이거든.” 라마단은 다이어트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해진 후에 많이 먹기 때문에 사실은 체중이 는다.” 기사 말미의 재치있는 지적.
라마단 기간의 만찬을 ‘이프타르’라고 불러요.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 푸짐하게 상을 차려주기도 한대요. 케밥이니 사모사(감자로 속을 채운 만두)니 (우리도 살펴본) 다양하고 맛난 요리들을 ‘야식’으로 즐기죠. “금식 때문에 라마단을 엄숙하다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흥성흥성한 분위기 속에 자선을 베푸는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네요. 카타르에서 활동 중인 이원선 박사님의 증언.
라마단은 18억 명,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참여하는 문화적 풍습. 그래서 무슬림이 아니어도 이프타르를 챙기는 경우가 많아요. (올해는 지금이 라마단 중이에요.) 미국은 백악관에서도 종종 이프타르 만찬을 연대요. 1805년에 제퍼슨 대통령이 튀니스 대사를 만나며 저녁 식사를 미룬 일을 그 최초로 친다나요.
아무튼 그날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미국 말씀 잘 꺼내셨습니다. 제가 드리려던 말씀이 한국사회도 이제 글로벌 기준에 맞추자는 것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미국처럼요.” 그랬더니 질문하신 분 표정이 굳더니 항의를 하시더군요. “아니, 왜 우리가 난민하고 이민을 받는 문제에서 미국을 따라 해야 해요? 우리는 한국 사람인데!” 글쎄요, 그러게요, 미국 이야기는 내가 꺼낸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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