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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8 19:57 수정 : 2019.05.08 20:04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캅살롱은 먹어 보았습니까?” 네덜란드에서 사회주택을 공부하던 ㅊ박사가 내게 물었어요. “캅살롱이 뭔가요?” “네덜란드에서 먹는 케밥의 일종이지요.” “케밥을 권하시다니 의외군요. 다른 지역하고 많이 다른가요?”

ㅊ박사는 눈을 빛내며 말했죠. “독일 베를린에 유학하던 친구가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제가 물었죠. ‘캅살롱은 먹어 보았나?’ ‘캅살롱이 뭔데?’ ‘케밥의 일종이지.’ ‘어이없네, 베를린에서 온 사람한테 케밥을 권하는 거냐?’ ‘네덜란드 것은 또 달라.’ ‘설마.’ 결국 그 친구가 캅살롱을 먹어 보더니 이러더군요. ‘이럴 수가, 고맙다, 나의 케밥 인생에 새로 한장을 쓰게 되었다’라고요.” 나는 놀랐죠. “베를린 유학생이 그럴 정도라니, 먹어봐야겠군요!”

왜 베를린이 기준일까요? 터키 사람이 많이 사니까요. ①이슬람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시는 이희수 선생님이 일전에 독일을 가셨어요. 독일어 대신 터키어를 쓰고도 따뜻한 환대를 받고 길 안내를 받아가며 여행한 일이 한국 텔레비전에 나온 적 있죠. ②독일어권에 가 있던 친구 이야기로는 터키 친구 만나 “수도가 어디냐” 물었더니 농담으로 “베를린이다, 엄청 많이 살잖아”라고 답했대요.

그러다 보니 베를린에 케밥 가게가 많아요. 그만큼 독일사람 입맛에 맞춰져 있고요. ‘되네르 케밥’을 주문하면 햄버거처럼 두툼한 빵 사이에 끼워 나오는 것이 보통. 푸짐하고 맛이 진한 터키식 샌드위치랄까요. 접시 요리로 먹으려면 따로 ‘접시(teller) 케밥’을 주문해야 하고요. 독일 다른 지역, 독일어권 스위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도 케밥을 많이 먹어요.

프랑스에서는 ‘기로스’를 많이 먹어요. 그리스 음식점에서 팝니다. (터키의 케밥이 그리스에 전해져 기로스가 되었다는 설명이 있지만 그리스 사람들도 인정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두 나라 사람들이 앙숙이라서요.) 파리 소르본 거리 쪽에 기로스 골목으로 유명한 곳을 종종 갔는데, 한번은 우연히 한국어를 아는 직원분을 만났습니다. “어디서 왔냐”고 프랑스어로 묻더니 불쑥 한국말로 “고기 사랑해요, 고기 많이많이!”라거나 “고추 사랑해요, 고추 많이!”(후추와 헷갈리신 것 같아요)라고 외치며 그릇이 넘칠 듯 고기를 담아주셨어요.

이민자들이 사는 곳. 파리의 경우는 불안하고 위험하지만 베를린의 터키인 구역은 쾌적하고 안전한 편입니다.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 차이 등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수많은 케밥 가게와도 관계있을 것 같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해요. 자기 점포가 있는 베를린의 자영업 사장님은 실업과 차별에 시달리는 파리의 이민자보다 사회에 대한 분노가 덜할 테니까요. 한국 사회도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부분 같아요.

캅살롱 맛이 어땠는지 말씀드릴 차례. 네덜란드의 아담한 도시 델프트, 나는 케밥 가게에 들어가 캅살롱을 주문했습니다. “네가 캅살롱을 어떻게 아느냐”는 듯 흘겨보며 터키계 청년이 한 그릇을 만들어줬지요. 은박도시락에 케밥 고기를 층층이 담고 치즈와 네덜란드의 진한 마요네즈를 켜켜이 깔더니, 오븐에 데워 주더군요. ‘고기고기’의 ‘끝판왕’ 같은 진한 맛. 한 그릇 먹으면 북해의 차가운 바람을 맞아도 끄떡없겠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가끔 찬바람 맞는 날이면 캅살롱 생각이 납니다. ㅊ박사, 고마워요, 그리고 결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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