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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1 19:59 수정 : 2019.05.01 20:07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추웠다가 더웠다가 몸이 힘든 이런 날씨엔 뜨끈한 국물 요리가 생각나요. 맑은 국물의 곰탕, 복지리, 닭고기 수프. 탁하고 흰 국물로는 설렁탕, 돈코츠라멘. 얼큰한 붉은 국물의 육개장, 물곰탕, 홍어애탕, 산라탕…. 이름만 들어도 몸이 풀릴 것 같네요.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뜨끈한 국물 요리, 문학과 역사 속 세 장면.

①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인력거를 끄는 남편 김첨지는 손님을 받을 때마다 아내에게 설렁탕을 사줄 생각을 하며 뿌듯해합니다. 조밥을 급히 먹다 체하여 몸져누운 아내는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거든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으며 궁금했어요. 왜 하필 설렁탕일까? 처음에 저는 ‘혹시 그때 설렁탕은 평소에 서민이 먹지 못할 귀한 음식이었나’ 생각했어요. 아니더군요. 음식문헌연구자 고영씨에 따르면 설렁탕은 1920년대에 이미 편하게 배달해 먹는 대중적인 음식이었대요. 잡지 <별건곤>에는 ‘일반 하층계급에서 많이 먹는다’고도 했고요.

그렇다면 역시 설렁탕이 몸보신에 좋은 음식이라서? 남편 김첨지는 아픈 사람 다 먹는 설렁탕을 아내만 못 먹는다는 생각에 더 속이 상했을 터. 아무려나 설렁탕이나 곰탕을 잘 먹으면 어지간한 병은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우리 집도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가 자주 설렁탕을 포장해 드렸어요.

② “그동안 내가 너무 못되게 굴었지. 닭고기 수프 조금만 갖다줘.” 오 헨리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 존시는 비바람에도 버텨낸 ‘마지막 잎새’를 보고 폐렴을 이겨낼 용기를 얻습니다. (뒤에 반전이 있지만요.) ‘죽지 않아, 병과 싸워 이겨낼 테야’라는 굳은 결심을 보여주는 대사가 바로 “닭고기 수프를 먹겠다”였죠. 감기나 폐렴에 걸렸을 때 닭고기 수프를 먹으면 낫는다고 서양 사람들은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염증을 완화시켜 준다는 실험도 있고요.

닭고기 수프가 등장하는, 제가 <마지막 잎새>보다 좋아하는 작품은 옛날 시트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1996~2001년. 미국 엔비시 제작. 한국에서도 방영된 시트콤). 지구침공(!)을 위해 지구인으로 위장해 지구에 살던 외계인들이 지구의 감기에 걸려 고생하던 중, “지구인들은 닭고기 수프로 감기를 이겨낸다더라”는 정보를 입수. 다음 장면. “으으, 뜨듯해. 감기가 낫는 것 같아.” “지구인들은 현명하군.” 외계인들이 닭고기 수프를 마시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수프에 발을 담근 채 족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③ 레스토랑의 탄생 : 1765년 프랑스의 불랑제라는 사람이 루브르박물관 가까운 곳에 가게를 열고 ‘부용 레스토랑’(bouillons restaurants)이라는 음식을 팔았어요. ‘부용’은 소나 닭으로 말갛게 끓인 수프를 말합니다. 레스토랑은 ‘회복시켜 준다’는 뜻이죠. 물론 불랑제는 양다리 요리도 팔았죠. 대박이 난 쪽은 이쪽이랍니다. 그래서 오늘날 레스토랑들도 고기구이를 많이 팔죠. 그래도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에는 ‘몸에 좋은 고깃국물’의 흔적이 남은 셈.

그런데 뜨거운 고깃국은 정말 몸에 좋을까요? 그렇다면 어째서일까요. 영양 때문일까요? 고기를 구워 먹는 것보다 국물로 마시는 쪽이 소화가 잘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늘어놓자 친구가 딱 잘라 말하더군요. “그냥 맛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무슨 소리야?”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그럼 몸에도 좋을 테고.”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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