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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0 20:10 수정 : 2019.04.10 20:24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일의 소중함을 잘 알았나 봐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보면 작전 회의를 하려 해도 식사부터 하고, 죽은 동료를 애도할 때도 고기부터 먹고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한번은 영웅 아킬레우스가 죽은 친구의 복수부터 하고 식사는 뒤로 미루자고 나서는데(<일리아스> 19권) 오디세우스가 제지한 일도 있어요.

우리는 보통 문상부터 하고 밥을 먹죠. 전주와 제주에 문상하러 간 일이 있어요. 난처했습니다. 상갓집 밥이 너무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식사를 즐기게 되었거든요. 전주에서는 간자미국과 간자미찜을, 제주에서는 돼지고기 수육을 먹었는데, 빈소에 와서 나 혼자 살아있는 기쁨을 누려도 되나, 두고두고 죄송한 마음이었어요.

가장 악명 높은 장례식 만찬은 1783년 파리에서 열린 ‘알렉상드르 발타자르 로랑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의 장례식일 겁니다. (이름이 너무 길죠? 보통 줄여서 ‘그리모’라고 부르더라고요. 우리도 그렇게 해요.) 부고를 듣고 드 라 레니에르 저택으로 찾아온 손님들은 기겁했어요. 젊은 그리모가 뻔뻔히 살아 나타나 손님들을 관처럼 생긴 자리에 앉혔거든요. 만찬을 열기 위한 가짜 장례식이었던 거죠.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한 돼지고기 요리가 밤새 상에 오르고, 십여명의 손님은 식사를 강요당했습니다.

그나마 그들은 처지가 나았지요. 다른 손님 수백명은 식탁 주위 발코니에 세워 이 엽기적인 만찬을 지켜보게 했거든요. ‘문상객’ 사이에서 분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대요. “정신병자들을 가둔 시설에 그리모를 집어넣어야 한다!”

그리모는 왜 이런 기행을 벌였을까요? 부모님에게 복수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모는 양손이 불편한 채로 태어났어요. 의수를 착용하고 글을 써 평론가로 이름을 얻었고, 20대에는 변호사가 되었죠. 하지만 아버지는 그리모를 부끄러워했어요. 자기 친구들에게는 “아이가 돼지우리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돼지에게 물어 뜯겼다”고 거짓말까지 했고요.

그리모의 엽기행각은 금세 소문이 났습니다. 참다못한 아버지, 며칠 집을 비운다고 거짓말한 다음 저녁에 예고 없이 들이닥쳤어요. 마침 그리모는 살아있는 돼지를 데려다 아버지의 비싼 옷을 입히고 식탁에 앉혀 만찬을 대접하던 참. 아버지는 “식탁예절을 배우라”며 시골의 수도원에 그리모를 가두어 놓았습니다.

팔자에 없던 금욕생활을 마친 후 몇 년 만에 돌아온 그리모. 세상은 변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앙시앙 레짐’이라 불리던 옛 체제는 무너지고 흥성거리던 만찬 문화도 빛을 잃었죠. 드 라 라니에르 집안의 막대한 재산도 사라졌습니다. 아버지의 옛날 직업은 세금징수인,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 가장 미워하던 직업이었죠.

먹고 살기 위해 그리모는 식료품 거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어요. 그러다 자기랑 꼭 맞는 일을 찾았죠. 미식과 평론의 결합. 당시는 파리 시내에 레스토랑이 처음 생겨나던 무렵이었어요. 그리모는 파리 시내의 레스토랑을 돌며 음식을 맛보고 리뷰를 써서 <미식가 연감>을 여덟 권 발행했습니다.

그리모의 장례식이 1812년에 다시 열렸어요. “그리모가 진짜 죽었을까?” 갸웃거리는 문상객을 맞이한 사람은 살아있는 그리모. 이번에도 가짜 장례식이었어요. 유쾌한 만찬을 즐기며 그리모는 은퇴를 선언했고, 편안한 여생을 보냈습니다. ‘맛집 리뷰’라는 새로운 글쓰기를 후세에 남겼지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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