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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8 09:21 수정 : 2019.03.28 20:18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식사에 좀비를 초대한다면? 좀비의 식성에 대해 알아봅시다.

①일단 양 많이 : 좀비는 죽었다 살아난 자. 옛날 좀비는 장례를 치르고 땅에 묻은 사람을 나중에 주술사가 몰래 꺼내 되살려낸 노예였대요. 며칠은 굶었을 터. 배가 무척 고플 겁니다. 요즘 좀비는 어떨까요. 영화를 보니 죽자마자 되살아나던데요. 그래도 자제력을 잃은 상태라고 하니, 다이어트고 뭐고 입 닿는 대로 먹을 겁니다. 좀비를 대접하려면 일단 양을 많이 준비하셔야 해요.

②먹기가 편해야 : 좀비는 둔하다고들 하죠. 옛날 좀비는 노예 노동을 위해 되살린 존재, 영리하면 부려먹기 힘들어질 테니 주술사 쪽에서도 똑똑한 상태를 원하지 않았겠죠. 좀비 쪽에서도 살아나 일만 하는 처지, 무기력한 편이 나을 겁니다. 요즘은 돌림병에 걸려 좀비가 된다죠. 머리를 쓰는 일은 병 때문에 잘 못 하나 봐요. 젓가락질이 어렵거나 골라 먹어야 하거나 직접 조리해야 하는 ‘복잡한’ 음식을 내놓는 건 좀비에게 예의가 아니겠죠.

③빨리 나오는 음식 : 좀비가 둔하다고 해서 느리다는 뜻은 아니에요. 옛날 좀비는 멀리서 일하는 모습만 보아서는 살아있는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워요.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어 봐야 알 수 있죠. 하지만 다가가기가 어렵답니다. 좀비를 되살려낸 주술사가 근처에서 늘 감시하니까요. 어쩌다가 주술사의 눈을 피해 주술을 풀어주면 좀비는 죽음을 맞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무덤으로 달려갔대요. 요즘 좀비도 느린 친구들은 아니에요. 20세기 후반 저예산 공포 영화에 나오는 좀비를 보면 느리게 걷기는 해요. 아마추어 배우의 어색한 연기에 지친 감독이 차라리 카메라 앞에서 느리게 움직이라고 지시했다나요. 최근 좀비 영화를 보면 달리기도 제법 잘하더군요. 아무려나 음식이 느리게 나와도 마냥 기다려줄 친구들은 아니라는 것.

④소금 간을 할 것인가 : 대접할 손님이 20세기 중반 이전에 좀비가 된 경우라면, 소금으로 간한 음식을 내놓아서는 안 됩니다. 좀비에게 걸린 주술을 푸는 방법이 바로 소금을 먹이는 것. 소금 맛을 본 좀비는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죽어도 죽지 못한 채 일만 하는 저주에서 풀려나는 거죠. 아니, 이렇게 생각하니 소금을 억지로라도 먹여야겠군요.

⑤ 육식 : 좀비가 사람 고기를 먹은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죽은 사람이 살아나 산 사람의 살코기를 먹는 이미지는 20세기 후반 공포영화를 통해 널리 퍼졌습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조지 로메로 감독의 1968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떨까요. 제가 본 작품 중에는 공포소설의 대가 러브크래프트가 1922년에 발표한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가 제일 오래되었어요. 러브크래프트 본인은 이 소설을 ‘망한 작품’이라 여겼다지만, 꽤 재미있는 단편입니다. 그런데 두 작품 모두 ‘좀비’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아요. ‘식인’과 ‘좀비’는 원래 별개의 개념이었기 때문이죠.

눈썰미 빠른 분은 눈치챘겠지만, 옛날 좀비는 지금과 달라요. 원래 섬나라 아이티의 사탕수수나 커피 농장에서 돈 안 주고 주술로 부리던 노예였거든요. 사람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점에서 ‘요즘 좀비’보다는 차라리 ‘요즘 산 사람’과 비슷하지요. 맛있는 음식 원 없이 먹지도 못한 채 날마다 일만 한다는 점도 그렇고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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