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21 09:44
수정 : 2019.03.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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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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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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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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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대한 한국 지식인의 동경. 1990년대보다 1890년대가 한술 더 떴을지 몰라요. 김옥균과 친구들이 외투 앞섶에 손을 꽂고 찍은 ‘나폴레옹 코스프레’ 사진은 유명하죠. 고종은 황제가 되겠다며 프랑스 나폴레옹의 사례를 들어 각국을 설득했고요. 독립문은 파리 개선문과 닮은꼴이죠.
김옥균을 죽인 홍종우도 프랑스 유학생 출신. 파리의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을 가본 적 있어요. 한국 관련 고미술품이 잘 전시돼 있어서 ‘어찌 된 사연일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홍종우가 유학 시절 이곳에서 근무했다더군요. 홍은 <춘향전> 등 고전소설도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했대요. “제법 잘 쓴 프랑스어 문장이었다.” 찾아 읽은 ㅇ 선생님 얘기로는 그래요. 이런 재주꾼이 귀국해도, 그에게 ‘정치깡패’ 자리나 제안하던 당시 조선의 상황이 참담하지요.
“홍종우가 김옥균을 꾀어내기 위해 프랑스 요리로 유혹했다던데, 알고 있었어?”
“몰랐지. 무슨 요리를 해줬을까? 그 이야기 흥미로운데.”
“그러게. 당시 일본에 들어온 서양 요리들 자료가 있으니까, 음식 만화를 그리면 재밌겠다. 메뉴 가운데 분명히 고기 요리도 있었겠지.” 친구와 저는 긴 시간 대화를 나눴지요.
갑신정변에 실패하고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 안동 김씨 대갓집 도련님답게 “이곳 친구들을 사귀어야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술잔치를 벌이곤 했으나, 간도 쓸개도 빼줄 것 같던 일본의 정객과 논객들은 김을 슬슬 피하고. 서재필과 박영효 같은 ‘혁명 동지들’은 속도 없이 군다며 김을 비난하고. 한국에 남은 가족은 비참하게 죽고. 호탕한 척해도 속은 타들어 갔을 겁니다.
그런 김에게 홍종우는 한국 소식을 들려주고. 아니, 한국뿐 아니라 그토록 궁금하던 프랑스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전하고. 프랑스 요리도 직접 해주고. 살갑게 굴며 함께 프랑스에 가자고 권하고. 김옥균은 생각했겠죠. 프랑스 생활이 익숙한 홍과 함께라면 유럽을 둘러볼 수 있고, 조선 혁명의 영감을 서양에서 얻게 될지도 모른다고요.
‘메이지 유신은 음식 유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 일본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서양 요리 소개와 육식 보급에 힘을 썼던 터. 김옥균과 교유하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고기를 먹어야 선진국이 된다며 널리 육식을 권하던 ‘육식 전도사’. 홍종우가 일본에서 구한 재료로 프랑스풍으로 요리한 만찬을 먹으며 김옥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개화한 조선 곳곳에서 프랑스 고기 요리를 먹는 미래를 상상했을지 모릅니다.
프랑스 요리를 먹고 힘이 났을까요? 망명 10년 만에 김옥균은 일본을 떠나 중국 상하이로 향합니다. 이홍장과 조선 문제를 의논하고, 상황이 되면 여러 나라를 돌아볼 참이었겠죠. 단짝 친구가 된 홍종우도 함께. 그런데 상하이에 도착하자 홍은 본색을 드러냅니다. 탕, 탕, 탕! 1894년 3월28일, 소매에 숨긴 권총을 꺼내 숙소에서 김옥균을 쏜 홍종우. 김에게 외유를 권한 것도 일본 밖에서 그를 죽이기 위해서였죠. 그래야 조선 정부에 인도돼 자기가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이야기 전체가 육식에 관한 상징 같지 않아?”
“그건 무슨 소리야?”
“홍이 김을 먹이고 돌본 것은 자기 몸을 위해 김을 죽이려는 의도였잖아. 정성껏 사육해 마지막에 잡아먹는 모양새잖아.”
“아니, 별로야. 그건 너무 이상한데.” 이렇게 하여 <김옥균의 만찬> 만화를, 저는 그리기도 전에 중단하고 말았네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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