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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4 09:13 수정 : 2019.03.14 20:56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말고기 좋아하냐고? 물론 좋아하지. 어떤 식당이 맛있냐고? 허허, 그건 모르겠는데. 친구들 여럿이서 말 한 마리를 부위별로 나누어 집에 가져가 냉동실에 넣어놓고 일 년 내내 조금씩 꺼내서 요리해 먹거든.” 제주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은 말고기 마니아였어요. “간이 귀해. 잡은 직후에만 먹을 수 있어. 그래, 곱창 한번 먹어봐. 말 창자를 ‘검은 지름’이라고 해. ‘검은색 기름’이라는 뜻이야. 다른 동물하고 달라. 기름 덩어리가 느끼하지가 않아서 수육으로 삶아 먹어.” “곱창 수육이라니, 와. 감사합니다.”

말고기와 저. 처음 인연은 일본요릿집에서 먹은 말고기 회였습니다. 신선한 고기를 양념하지 않고 얇게 저며 작고 예쁜 접시에 서너 점씩 내어줬어요. 기름이 끼지 않은 붉은 살코기가 어찌나 연한지 살살 녹더군요. 비싼 고기인 줄만 알았어요. 오해를 푼 것은 유럽에 갔을 때였어요. 스위스의 고깃값 순위는 한국과 달랐죠. 닭고기는 비싼 편이고, 말고기와 타조고기가 제일 싸더군요. 한 덩이씩 진공 포장해 파는 붉은 살코기를 사 팬에 직접 구워 먹었습니다. 겉만 살짝 익힌 말고기 스테이크를 그때 원 없이 즐겼어요.

기름기 없이 살코기만 먹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말고기 마니아 기사님께 추천받은 대로 ‘검은 지름’을 먹으러 갔어요. 소 곱창도 돼지 곱창도 지방 덩어리. 겉이 탈 정도로 바싹 익혀 기름을 빼거나 시뻘겋게 매운 전골로 끓여 먹습니다. 느끼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말 곱창은 아니에요. 냄새도 없어요. 양념 안 하고 수육으로 먹을 정도니 말 다 했죠.

말은 이렇게 삶아도 먹고, 구워도 먹어요. 생으로 먹기도 해요. 가게에서 말 차돌박이를 먹어보라며 주셨는데, 동전처럼 동글납작한 노란 기름 덩어리가 익지 않은 채 접시에 놓여있었어요. 저는 말 곰탕 한 그릇과 말 불고기 2인분을 혼자 먹은 일이 있어요. 말고기가 맛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날 말고기를 함께 먹을 사람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죠. 기사님의 사연 가운데 제일 부러웠던 대목도, 실은 친구들끼리 말 한 마리를 나눠 먹는다는 부분이었어요.

일전에 제주에서 번역가 ㅇ선생님을 모시고 식당에 갔어요. “선생님, 말고기 안 드실래요? 돼지고기도 파는 집이에요.” “글쎄, 괜찮을까. 태권씨가 가고 싶다면 가보죠.” 결국 말고기에 손을 대지 않으셨죠. “입에 안 맞으세요?” “사실 어린 딸이 말을 좋아해요. 이 친구가 상상 속 친구로 애완용 말을 키워요. 딸 생각을 하니 말을 먹지 못하겠네.”

말은 잡아먹기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운 동물이라는 이야기를, 저는 이 지면에 쓴 일이 있죠. “나이가 들며 고기 먹는 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 선생님의 이어지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먹을 줄 아는 고기의 종수를 늘리는 것이 좋은 일인가 고민을 하게 돼요.”

선생님 몫으로 주문한 말고기까지 결국 내가 먹었어요. 맛있었죠. 하지만 머쓱하더군요. 잡아먹히는 동물들 생각을 간간이 하면서도, 육식이 께름칙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 저는 육식을 줄이지 않으니까요. 먹어본 고기의 맛을 그리워하고 안 먹어본 고기의 맛을 궁금해하며 나는 더 많은 육식을 꿈꾸니까요.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찾아 읽으면서도 공장식 축산 이전의 고기 맛을 상상하며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니까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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