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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06 20:12 수정 : 2019.03.06 20:27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꿈을 꾸었습니다.

문명사회가 무너졌어요. 도시 사람들이 이상한 병에 걸려 서로 잡아먹었죠. 멀쩡한 사람들은 차를 타고 달아났어요. 폐허가 된 도시를 벗어나자 제가 탄 차가 나무를 들이받고 멈추었습니다. 작은 농장이 딸린 외딴집에 더부살이하게 되었어요. 꿈속에서 저는 어렸습니다. 달아나던 가족의 맏이였어요. 외딴집에 갇힌 사람들은 가진 물자를 나누었어요. 식사 때면 다들 모여 앉았지요. 주인집 두 아이는 나와 비슷한 나이. 큰아이는 하얀 땡땡이가 박힌 하늘색 원피스를 입곤 했어요.

끝내 운명의 때가 왔어요. 먹을 것이 동났지요. 주인댁 아주머니는 최후의 만찬을 차렸습니다. 식사 때가 되었는데 주인집 아이들은 나타나지 않았죠. 커다란 냄비 가득 정체불명의 고기가 담겨 있었어요.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습니다. “집 뒤로 따라와 볼래?” 아주머니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나와 동생을 불렀어요.

나는 마지막 모퉁이를 돌고 싶지 않았어요. 주인 잃은 하늘색 원피스를 볼 일이 두려웠습니다. 주인댁 아주머니는 나를 향해 돌아섰지요. 목소리가 떨렸어요. “너희가 먹은 만큼 너희도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주머니 안에서 주먹을 쥐었어요. 꼬챙이 끝이 날카로운 포크를 주머니에 숨겨 왔거든요. 그러다 꿈을 깼습니다.

왜 이따위 꿈을 꾸었을까요.

① 요즘 끔찍한 소설들을 읽었기 때문일까요. 따분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죽음의 위기를 맞는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를 읽었거든요. 어쩌면 대프니 듀모리에의 <새> 때문일지도 모르죠(히치콕 감독 영화 ‘새’의 원작). 그러고 보니 꿈에 나온 농장이 소설들의 배경과 비슷하네요.

② 예전에 읽었던 신화와 전설 때문일까요. 자기 아이를 죽이거나 그 살을 먹는 모티프는 옛날이야기에 종종 등장하지요. <아폴로도로스 신화집>을 보면 그리스 신화의 아트레우스는 조카들을 살해해 그 고기를 아이들의 아버지 티에스테스에게 먹입니다. <봉신연의>에서 은나라의 주왕은 백읍고를 죽여 그의 아버지 주나라 문왕에게 먹이고요.

거꾸로 자기 아이를 죽여 남을 먹이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로마시인 오비디우스의 서사시 <변신이야기> 첫머리에는 신들의 신통력을 시험하겠다며 자기 아이를 요리해 식탁에 올린 잔인한 악당 뤼카온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제나라 환공의 눈에 들기 위해 요리사 역아가 자기 아이를 삶아 식사로 바친 이야기도 유명하지요.

③ 어쩌면 이번 원고 때문일지도 몰라요. 잔털이 남은 돼지 껍질이랄지, 사람 손과 닮은 닭발이랄지, 인체를 떠올리게 하는 고기 요리를 생각하다 잠이 들었거든요. 원래 쓰려고 준비한 글감이 많아요. 그런데 꿈이 더 주제에 맞는 것 같아 내용을 바꾸었습니다.

먹히는 쪽도 먹는 쪽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 칼럼의 주제죠. 그래도 먹는 쪽은 어떻게든 먹을 것끼리 구별을 짓습니다. 먹어도 좋은 것과 먹으면 안 될 것, 먼저 먹을 것과 나중에 먹을 것을요. 스티븐 킹이 쓴 단편 <서바이버 타입>의 주인공은 외딴 섬에 난파된 외과 의사죠. 먹을 것이 없어 마취 주사를 놓아가며 자기 살을 잘라 먹으면서도 순서를 정하죠. 다리 먼저, 다음은 왼손, 오른손은 나중에.

꿈에서도 먹고 먹히는 순서가 있었어요. 나는 또 그 순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궁리만 했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지독하군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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