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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27 20:27 수정 : 2019.02.27 20:35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스테이크’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대표적 맛집 리뷰 사이트 ‘식신’에 올라온 관련 글 5천7백여건을 컴퓨터로 분석해보았어요. 우리가 스테이크를 평가하는 제일 중요한 기준은 ‘맛있다’, 다음은 ‘가격’. 곁들여 먹는 음식은 ‘파스타’와 ‘샐러드’. 자주 언급되는 스테이크는 안심도 등심도 아닌 ‘함박스테이크’.

소고기 스테이크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 티본 스테이크를 최고로 치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비싸서 문제죠. 티(T)자 모양 뼈에서 이쪽은 안심, 저쪽은 등심. 스테이크 한 장, 두 가지 맛. 둘은 익는 속도도 다르다죠. 티본의 양쪽을 두루 맛있게 익혀내는 것이 셰프의 빼어난 솜씨라고 하네요.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에서 티본 스테이크를 부르는 이름이랍니다. 쩨쩨하게(?) 1인분 2인분 팔지 않고, ㎏단위로 주문을 받지요. 기본이 1㎏입니다. 무척이나 두껍다 보니, 겉은 빵 껍데기처럼 버석버석한데 속에는 육즙이 듬뿍 고여요. 피렌체에서 식당을 잘 찾아가면(관광객 식당을 피한다면) 서울의 비싼 고깃집보다 싸고 푸짐하게 먹는답니다. 식탁 위의 포도주도 물처럼 마시지요.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의 높은 지붕을 흘낏 바라보며 그늘지고 오래된 골목을 빙빙 돌아 이탈리아 사람들과 함께 비좁고 왁자지껄한 맛집에 들어가 한 식탁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손가락 한 마디보다 두꺼운 고기를 톱니 달린 칼로 석석 쓸어 턱이 얼얼해질 때까지,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덩어리를 씹다가 식탁 위의 시큼한 포도주를 막잔에 따라 벌컥벌컥. 고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보다 호사가 없죠.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과 미술은 덤.

이름의 유래. ‘알라 피오렌티나’는 ‘피렌체 스타일’란 뜻. ‘비스테까’는 어디서 온 말일까요. 영어 ‘비프스테이크’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오늘날 영국 요리는 맛없다고 유명(!)하지만, 옛날 잉글랜드 부자들은 소고기를 잘 먹는다고 유럽에서 유명했어요. 잉글랜드는 중세 시대에 이미 부유한 지역이었습니다. 돈이 많기로는 피렌체의 유력자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도 빠지지 않지요. 카니발 때마다 피렌체의 시민들에게 두툼한 스테이크를 대접했대요.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의 기원입니다.

도시국가 피렌체는 명목상 민주 공화국. 기회가 공평해야 한다며 정치지도자를 제비뽑기로 추첨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번번이 로렌초 데 메디치의 친구가 당첨되었대요. 우연까지 메디치의 편이었을까요? 물론 추첨을 조작했겠죠. 드러내 놓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죠. 시민들은 메디치 가문이 돈을 댄 덕에 세계 최고 수준의 조각과 벽화와 건축을 공짜로 즐겼는걸요. 심지어 맛있는 비스테까도 공짜! 그러나 관점에 따라서는 로렌초 데 메디치가 동료 시민들을 매수했다고도 볼 수 있겠죠. 로렌초의 사후, 피렌체는 메디치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내전에 시달립니다. 메디치 가문의 빛과 그림자.

한편 메디치 가문의 당주는 대대로 지병에 시달렸습니다. 병명은 통풍, 바람만 닿아도 아프다는 끔찍한 병. 토스카나 사람들은 정말 고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메디치 가문 사람들은 더 아팠을 겁니다. 로렌초도 중년 이후로는 가마에 실려 다녔어요. 비스테까를 대접하던 메디치가 통풍에 시달린 일을 생각하면 얄궂습니다. 통풍을 앓는 지인들이 생각나 속상하기도 하고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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