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10 09:43
수정 : 2019.01.10 20:40
|
그림 김태권
|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
그림 김태권
|
소고기와 관련된 인도 근현대사 여섯 장면, 그리고 한국이 등장하는 막간극 하나. 책 읽고 건너 들어 아는 정도지만 정리해볼게요.
(1) 세포이 항쟁(1857~1858년) : 영국 정부에 고용된 인도인 용병을 ‘세포이’라 불렀어요. 소총을 장전하려면 탄약통을 이빨로 뜯어야 하는데, 19세기 중반 영국 사람들이 탄약을 싼 종이를 방수처리 한다며 쇠기름과 돼지기름을 입혔대요. 힌두교의 소고기 금기와 이슬람의 돼지고기 금기를 무시한 셈. 용병들은 영국에 맞서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인도 곳곳으로 반영 투쟁이 퍼졌어요. 오늘날 인도 민족주의 운동의 상징. 세포이 항쟁의 시작을 조명한 영화 <망갈 판데이>가 2005년에 개봉하기도.
(2) 다른 한편, 영국에 맞서려면 영국을 따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어요. ‘따라 할 서양 문화’ 가운데 하나가 육식. 젊은 시절 마하트마 간디가 반영 투쟁을 위해 염소 고기를 먹을지 말지 고민한 일화를 이 지면에 소개한 적 있어요. (오늘날도 ‘외국물을 먹은’ 인도의 엘리트들은 소고기를 즐기는 경우가 있대요)
(3)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1947년) : 영국의 분할 통치 전략은 인도 사회의 갈등을 키웠습니다. 지배층이 특히 파고든 지점은 해묵은 종교 갈등이었다고 해요. 한때 나란히 영국에 맞섰던 힌두교 신자와 무슬림은 결국 원수처럼 돼 인도와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를 각각 세웠어요. 그 과정에 적지 않은 피를 흘렸고요.
(4) 아요디아 사태(1992년)와 구자라트 학살(2002년) 그리고 인도 국민당 : 아요디아 사태는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오래된 이슬람 사원을 때려 부순 사건, 구자라트 학살은 10년 후 수천명의 무슬림을 조직적으로 ‘인종청소’한 사건. 일이 터질 때마다 인도 전역에서 유혈 충돌이 일어났고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은 보복 테러를 했으며, 1980년대만 해도 군소 극우 정당이던 인도 국민당은 크게 세를 불렸습니다.
(5) 모디의 집권(2014년), 가짜뉴스와 ‘소 자경단’ : 지금 인도의 총리는 인도 국민당의 나렌드라 모디. 구자라트 학살 당시 주지사로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지요. 모디 집권 후 ‘소 자경단’의 폭력이 는 것도 우연은 아니겠죠. 죽은 소의 가죽을 벗기고 처리하는 일을 전통적으로 ‘달리트’라는 최하층 계층이 맡았는데, 극우파들이 “신성한 소를 우리가 지키자”며 달리트를 고문하고 살해한다나요. 다른 한편 옛날 인도의 세속주의 정권이 ‘소고기를 먹는’ 무슬림을 편들어 힌두교 신자를 학살했다는 가짜뉴스도 판을 칩니다.
(막간극) 서울평화상과 허왕후 : 이러는 와중에 모디가 2018년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됩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학살자에게 평화상이 웬 말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어 항의했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한국과 인도 정부는 “가야의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다”는 옛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이라 믿(는 척하)고 뭔가 해보려고 애쓰는 듯했습니다.
(6) 지난 세밑 : 12월3일, 폭동이 일어나 시민 한 명과 경찰 한 명이 총에 맞아 숨졌어요. 폭동의 이유는 “도축된 소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것. 힌두교 원리주의 세력의 아직도 여전한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뒤이은 12월11일의 주의회 선거에서는 인도 국민당이 참패. ‘소고기의 정치학’이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일까요? 지켜볼 일입니다.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