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1.03 09:08 수정 : 2019.01.03 20:34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이번 글은 기해년 ‘황금돼지해’에 관해 써보려고.”, “그거 틀린 이야기라며.”, “그치, 틀렸지만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고. 오행(五行) 따지면 금이 아니라 토, 색은 황색 맞고. 오미(五味) 중에는 단맛. 그래서 달게 먹는 돼지고기 이야기 어떨까.”, “허, 갖다 맞추기는 잘하네.”, “뭐, 황금돼지해라는 말부터가 갖다 맞춘 거니까.” 새해 친구들과 나눈 대화입니다.

그러고 보니 돼지고기를 달게 양념하는 경우가 많네요. 이 지면에 다룬 요리도 여럿. 양념한 돼지갈비, 베트남 국수 분짜에 얹는 구운 돼지고기, 무화과나 멜론을 얹어 먹는 스페인 햄 하몬, 콜라를 듬뿍 붓고 졸여 만든 콜라 수육, 달짝지근한 소스를 곁들인 정통 바비큐인 풀드 포크.

한국에서도 돼지를 달콤하게 조리해 먹어요. 돼지 불고기는 돼지갈비보다 맵지만 역시 달게 양념했고요, 장조림은 풀드 포크와 비슷한 맛이 나죠. 두루치기는 어느 지방 두루치기인지 따져봐야 해요. 어디서는 달게, 어디서는 시고 짜고 맵게 먹으니까요. ‘두루치기 전국지도’를 만든다는 핑계를 대고 팔도 미식 여행을 떠나고 싶네요.

한국 사람 입맛이 단맛에 지금처럼 익숙해진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라는 지적이 있어요.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단것을 좋아했대요. 의사이자 선교사이자 외교관으로 조선에 왔던 호레이쇼 뉴턴 앨런은 흥미로운 회고록을 남겼어요(우리말 제목은 <조선견문록>). “조선 사람은 단맛을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감 말고는 단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며 당황했지요. 없어서 안 먹었을 뿐 언제라도 달콤한 음식에 빠질 준비는 되어있던 셈.

돼지고기를 달게 먹는 일은 외국에도 많아요. 햄과 과일 말고, 훈제 햄에 과일 잼을 발라 먹어도 잘 어울리죠. 돼지고기라면 역시 중화요리. 오향장육에 따라 나오는 검은 젤리 소스 ‘짠 슬’은 복잡한 향기와 달고 짠맛이 매력. 삶은 다음 튀겨내는 중화풍 돼지갈비도 달죠. 탕수육과 꿔바로우(궈바오러우)의 단맛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탕수육 이야기가 나왔으니 ‘부먹 찍먹’의 논쟁을 피해갈 수 없겠네요. 소스를 튀김에 부어 먹느냐, 소스에 튀김을 찍어 먹느냐. 저는 찍어 먹는 쪽입니다만, 기원을 따지면 ‘찍먹’파가 불리합니다. 꿔바로우는 튀김과 소스를 함께 볶아 상에 올립니다. 탕수육도 원래는 그랬을 터. 하지만 오늘날 튀김과 소스가 따로 나오는 이유를 따져보면 ‘찍먹’파도 할 말이 있어요. 탕수육을 배달할 때 소스가 잘 배는 것보다 튀김옷이 바삭한 것을 중히 여긴다는 뜻이니까요. 부먹 대 찍먹, 일승일패의 무승부. 양쪽 다 일리 있다고 해두죠.

그런데 양념하지 않은 돼지고기도 사실 단맛이 납니다. 기름진 음식을 평소에 꺼리던 저도, 돼지고기 김치찌개나 수육을 먹을 때면 비계부터 젓가락이 가요. 김치나 새우젓의 짠맛 덕분에 돼지비계의 단맛이 도드라지거든요. 도토리만 키워 먹인 돼지로 만들어 하몬 가운데 으뜸이라는 하몬 이베리코도 하얀 지방 부분이 어찌나 고소하고 달콤한지요. 햄의 짠맛 때문이겠죠.

돼지해에는 돼지 디저트가 어떨까요. 한국에 분점이 들어온 홍콩 맛집 ‘딤딤섬’에서 식사할 일이 있다면 입가심으로 ‘피기 커스터드 번’을 드셔보세요. 귀여운 돼지 얼굴 모양의 딤섬에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이 듬뿍.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돼지바는 옛날보다 더 단맛이 강해진 느낌. 아무려나 돼지는 달콤하고, 단맛 사랑은 인간의 본성 같아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