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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8 09:22 수정 : 2018.12.28 09:34

첫아이 출산 직전 제주에 갔을 때의 일. 맛있는 음식 사진을 찍어 보냈지요, 갓난아이 돌보느라 바쁜 친구한테요(예, 제가 나빴어요). 곧바로 날아든 분노의 답신 문자. “똥 기저귀 옆에 서서 불어터진 컵라면을 먹어 봐야 이 양반이 정신을 차리겠구먼.” 예언대로 되었어요. 이제 첫째는 말 안 듣는 네 살, 둘째는 태어난 지 반년이 안 된 꼬꼬마. 송년 모임의 유쾌한 식탁을 언제 즐겨 보았는지 아빠는 기억이 가물가물. 그래도 12월 말의 푸짐한 식탁은 포기 못 하겠네요. 2018년을 보내는 소소한 도전.

① 연말 모임에 무엇을 먹을까 ? 여러 나라의 크리스마스나 송년 만찬을 알아보았어요. 영미권은 단연 칠면조. 찰스 디킨스가 쓴 <크리스마스 캐럴>의 영향이래요. 작품이 발표된 해가 1843년이니 아주 오랜 전통은 아닌 셈.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은 ‘현재의 유령’과 함께 크라칫 가족의 성탄절을 훔쳐보아요. 여덟이서 거위 하나를 나눠 먹는 오붓한 식탁. 소설 말미, 개과천선한 스크루지는 익명으로 큼직한 칠면조를 이 가족에게 선물합니다.

칠면조가 유행하기 전에는 거위를 먹었대요. 소설대로죠. 소금과 흑설탕으로 간을 맞추고 사과, 오렌지, 레몬을 곁들여 오븐에 구운 것이 영국의 성탄절 거위 요리. 향긋하고 달짝지근. 그러고 보니 <비비시>(BBC)에서 소개하는 연말 만찬 돼지 수육 요리도 달콤합니다. 메이플 시럽이나 살구나 생강으로 양념. 심지어 콜라로 끓이는 조리법도 있어요.

일본은 성탄이나 연말 모임에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을 먹는대요. ‘연말이나 크리스마스에는 켄터키!’ 구하기 힘든 칠면조 대신 치킨을 먹으면 된다는 1974년 광고가 전통처럼 굳었어요.

사실 저도 이 음식들을 글로만 읽었습니다. 외국에서 경험한 크리스마스나 송년 만찬은 신혼여행 때 스위스에서 먹은 저녁 식사가 전부. 아이들이 어린 데 어느 천년에 다시 외국을 갈까요. 심지어 올해는 동네 마실도 못 나가네요. 성탄절인데 큰애가 열이 나거든요. 아내는 한 푸드 오투오(O2O) 서비스 업체에 음식을 주문했어요. 딸기 생크림 케이크와 크리스마스에 먹는 빵 슈톨렌도 이곳저곳에서 구했고요. 그런데 음식을 마련하고 보니 다음 단계가 더 큰 문제.

② 아이를 보며 만찬을? - 아내가 첫째, 내가 둘째를 보기로 역할 분담. 부부가 식탁에 앉자마자 큰아이가 칭얼칭얼. 아내는 아이를 달래러 일어섰죠. 나는 둘째를 왼팔로 안고 흔들며 혼자 ‘만찬’을 즐겼고요. 적당히 배를 채울 무렵 둘째가 잠투정을 시작. 이번에는 내가 아이를 재우러 일어섰죠. 그동안 아내가 식사를 마치고 케이크를 꺼냈습니다. 둘째를 재우고 돌아와 보니 고새 첫째가 달려와 케이크에서 딸기만 빼먹었네요.

힘들어도 맛있는 식사였어요. 어쩌면 힘들어서 더 맛있었을 지도요.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허브와 통후추를 넣고 삶은 돼지고기며 라구 소스를 얹은 파스타를, 이튿날은 돼지 바비큐인 풀드 포크를 먹었습니다. 연말의 고기고기 잔치.

③ 만찬에서 고기가 빠진다면 ? 그런데 고기를 배불리 먹고 난 다음에는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칼럼을 쓰느라 이런저런 논쟁을 찾아 읽다 이렇게 되었네요. 그래도 식탁에 고기가 없다면 연말연시 흥성거리는 즐거움이 사라질까 걱정이네요. 채식하는 친구들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죠. 아무려나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듯 세밑이 이렇게 지나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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