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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1 09:35 수정 : 2018.12.21 19:52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옛날 한국에서는 처가댁에 온 사위를 먹이려고 닭을 잡았다죠. 미국 콜로라도에는 장모님을 위해 닭을 잡은 사위가 있습니다. 1945년 9월10일, 농부 로이드 올슨은 넉 달 남짓 키운 닭 마이크의 목을 쳤지요. 그러나 마이크가 죽지 않고 몸부림치는 바람에 사과 상자 안에 넣어두었어요.

이튿날 아침 올슨 부부는 놀랐어요. 마이크가 멀쩡히 살아있었거든요. 머리가 잘린 채로 말이에요. 닭을 두 번 죽일 수 없던 올슨 부부는 마이크를 계속 기르기로 했어요. 닭고기를 못 먹게 된 장모님도 양해해주셨을 터.

닭은 머리 뒤쪽에 뇌 대부분이 몰려있대요. 머리 없이도 마이크가 살아남은 까닭이죠. 아무려나 유명한 닭이 되었어요. 잡지에 실리고 미국 순회공연까지 하고요. 마이크 덕분에 올슨이 돈을 번 것은 사실이랍니다. 그렇다고 목 없는 닭을 기른 정성이 폄하될 일은 아니에요. 음식을 식도로 넣어주고 기도가 막히면 주사기로 뚫어주었죠. 이렇게 마이크는 목이 잘린 채 열여덟 달을 더 살았대요. 우리가 먹는 치킨이 대개 달포를 살다가 식탁에 오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태를 산 마이크는 장수한 편이죠.

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 떠올랐어요. “닭이 살아있는 동안 날마다 먹이를 주던 사람이 결국은 닭목을 비튼다.” 러셀은 ‘귀납의 오류’에 대해 지적하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먹이를 주던 농부를 보며 ‘언제나 먹이를 주는 사람’이라고 추론하면 오류라는 것.

거꾸로 사람이 닭을 죽이기만 한대도 오류겠지요. 올슨이 깜빡하고 주사기를 두고 오자 하룻밤 만에 마이크는 숨이 막혀 세상을 떠났대요. 올슨이 얼마나 애지중지 마이크를 돌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닭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사람입니다.

데이터를 찾아봤습니다. 얼마나 많은 닭을 우리는 살리고 죽일까요. 한 달에 도축하는 닭은 8천만마리 안팎. 자릿수를 잘못 센 것 아닐까 놀라 다시 세었지요. 보양식을 찾는 여름에는 더 많아요. 축산물 안전관리시스템 도축 검사 현황을 보면 최근 5년 동안 7월마다 도축되는 닭은 1억마리가 넘더군요. 한편 키우는 닭은 더 많습니다. 고기를 먹는 육계 말고도 달걀을 낳는 산란계와 번식을 위한 종계가 있거든요. 지난 6월 기준 한국에 1억9천만마리가 살고 있었다는군요.(국립축산과학원 자료)

이래도 되는 걸까. 어마어마한 숫자를 보니 멀미가 날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해도 수요를 맞추지 못해 닭고기 자급률은 80%대래요. 저만해도 엊그제 자축할 일이 있다며 치킨을 먹은걸요.(정석대로 ‘양념 반 갈릭 반’이었습니다)

올슨은 왜 마이크를 살려냈을까요. 미안해서였을까요, 신기해서였을까요? 첫 마음은 몰라도 나중에는 돈 때문이었어요. 순회공연은 수입이 짭짤했다나요. 꺼림칙하죠. 하지만 이익 거둘 생각 말고 닭을 돌보라고 남이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곰 사육 농가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는 보았어요. 판로가 막힌 농장들은 좁은 우리에 가둔 곰을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한 채 시간만 끌고 있지요. 애물단지가 된 곰을 누가 값을 치르고 데려가기만 바라며.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라 지적하기는 쉽지만, 해법은 어떻게 마련할까요. 다행히 며칠 전 12월7일에 강원도 한 농가에서 곰 세 마리가 새 삶터를 찾았습니다. 시민들이 모금한 덕분이었죠. 좋은 선례를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어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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