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06 09:42
수정 : 2018.12.0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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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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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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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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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저는 돈코쓰라멘을 먹다가 망신을 당한 일이 있지요. “그렇게 마늘을 듬뿍 넣다가는 우리 가게의 섬세한 국물 맛을 못 느낀다고요!” 참다 참다 일갈을 날리신 주방장님. ‘아이 억울해, 시오라멘(소금라면)도 아니면서!’라고 생각했지만, 주방장님이 무섭게 생기셔서 저는 입을 다물었어요. 하기야 일본에서라면 그렇게 마늘을 잔뜩 넣지는 않았겠죠. 돈코츠라멘의 진한 국물이 한국인 입맛에 맞는다고는 하지만,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자주 비교되는 음식이 제주 고기국수죠. 그런데 고기국수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요리입니다.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단 하나, 역사가 그리 오래된 음식이 아니라는 사실. 돼지고기 육수에 메밀국수를 넣어 먹던 풍습이 20세기 후반의 고기국수로 이어졌다는 한라대 오영주 교수의 설이, 마침 10년 전 이 ESC 지면에 소개되어 있네요.
고기국수와 돈코쓰라멘,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를까요.
우선 면발이 다릅니다. 고기국수는 굵은 중면이, 돈코쓰라멘은 알덴테(면의 심이 살아있는, 다소 딱딱하게 익혀진 상태)로 삶은 라멘이 제맛. 무엇보다 국물 맛이 비슷하면서도 달라요. 그런데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자니 막연하네요. 사람들이 무슨 말을 쓰는지 ‘텍스트 마이닝’(텍스트 분석. 비정형 빅데이터 분석의 한 분야)으로 알아볼게요.
맛집 리뷰 대표 사이트 식신과 망고플레이트에 올라온 돈코쓰라멘에 관한 1640여 건의 글과 제주 고기국수 관련 글 950여건을 간단히 코딩하여 분석해봤어요. 돈코쓰라멘에 대해 언급할 때는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고기국수를 품평할 때는 자주 쓰는 어휘가 있을까요?
결과는 모호해 보였어요. 처음에는 공통점에 가려 양쪽의 차이가 눈에 띄지 않았지요. 돈코쓰라멘도 고기국수도 ‘맛있고’, ‘진하고’, ‘느끼하면서도’, ‘깔끔하고’,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있어야 손님들이 ‘줄 서서’, ‘웨이팅’하며 차례를 ‘기다리는’, ‘유명한’ 맛집이 되더군요. 고명으로 올라가는 돼지고기도 ‘두툼하고’, ‘두꺼워야’하고요.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들은 이렇듯 둘 다 비슷했습니다.
‘두 음식의 맛이 닮아 보여 리뷰를 분석해 보니 과연 닮았더라.’ 이렇게 맥 풀리는 결론도 없죠. 차이도 드러나고 안 보이던 점이 보여야 고생한 보람이 있을 텐데요. 고민하던 중에 부산 음식 돼지국밥이 혹시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돼지국밥 맛집 리뷰 1400여 건을 추가로 조사했어요.
세 가지 음식 4천여건의 리뷰를 분석해 보니 흥미로워요. 돼지국밥과 고기국수를 평할 때는 자주 쓰는데 돈코쓰라멘에 대해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지요.
문제의 단어는 다름 아닌 ‘시원하다’였어요. 결과를 이렇게 해석해 봅니다. 고기국수와 돼지국밥을 먹으며 우리는 ‘시원하다’고 느끼지만 돈코쓰라멘을 먹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 고기국수가 같은 국수인 돈코쓰라멘보다 돼지국밥에 더 가깝다고 많이들 생각한다는 의미죠. 돼지고기 육수의 ‘시원함’이 한국입맛에 잘 맞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맛을 우리는 ‘시원하다’고 부를까요? 이거야말로 어려운 문제죠. 대중목욕탕에 간 아빠와 아들 이야기도 있잖아요. “어어, 시원하다!” 아빠 말을 듣고 어린 아들이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가 악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오며 말하더랍니다. “세상에 믿을 X 하나도 없네!” 한국말 참 어렵습니다. 아무려나 고기국수와 돼지국밥의 '진하고 뜨끈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씨네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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