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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3 10:05 수정 : 2018.11.23 19:06

그림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그림 김태권 만화가
보글보글 끓는 부대찌개가 생각나는 날씨입니다.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 개중 가장 특징적인 재료는 무엇일까요? ‘집단지성’에 물어봅시다. ‘만개의 레시피’는 요리법을 모아놓은 대표적인 사이트. 부대찌개 끓이는 법만도 200여 가지더군요. 이곳의 조리법을 컴퓨터로 분석했습니다.

음식 재료 가운데 국어사전에 올라있지 않은 말이 많아요. 인터넷 문서다 보니 맞춤법에 맞지 않는 경우도 흔하죠. 그래서 직접 코딩해 세었습니다, 특정 재료를 나타내는 단어가 언급되었나 아닌가를요. 재료에는 언급되어 있지만, 조리법에 누락된 경우나 ‘고춧가루’와 ‘고추가루’처럼 맞춤법이 헛갈린 경우(‘고춧가루’가 맞습니다)도 집계했지요.

결과는 흥미롭습니다. 210건의 레시피 가운데 김치가 들어간 부대찌개는 174건(83%). 라면 사리는 123건(59%), 당면 사리는 24건(11%). 라면이 당면보다 인기네요. 나는 부대찌개에 들어간 빨간 콩 통조림을 좋아해요. ‘콩’이나 ‘빈’이 들어간 레시피를 세어보았습니다. 97건(46%)이라, 입맛이 비슷한 분이 생각보다 많네요.

스팸은 어떨까요? 저는 부대찌개에 스팸이 언제나 들어가는 줄 알았어요. 결과는 생각과 달랐습니다. 스팸이 언급된 레시피는 101건(48%). 콩 통조림과 비슷한 수준이네요. 저는 적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은 결과를 보더니 많다고 놀라더군요. “그 비싼 스팸을 저렇게들 넣어 먹는단 말이야?”

부대찌개와 스팸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드네요. 20세기 현대사가 깃든 음식이니까요. 부대찌개는 우리한테 전쟁을 떠올리게 하죠. 미군 부대에서 먹다 남은 재료로 끓인 찌개라는 설명을 듣고 자랐어요. 부대찌개를 보면 한국전쟁 이후 가난하던 시절이 생각난다는 어르신이 많아요. 그런데 영국에서는 스팸이 그 비슷한 음식이더군요. 2차 세계대전 시절을 연상시킨대요.

미국에서 스팸이 발명된 때는 1937년. 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 식량으로 사랑받습니다. 미군이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며 스팸도 널리 퍼졌지요. 영국에서도 각별한 인기를 누립니다. 전쟁 때문에 바닷길이 막히자 영국 사람들은 ‘피시 앤 칩스’가 먹고 싶을 때 물고기 대신 스팸을 튀겨서 먹었다지요.

스팸을 너무 많이 먹은 영국 사람들은 스팸이 지겨워졌나 봅니다. 영국의 유명한 코미디 그룹 몬티파이튼은 1970년에 ‘모든 메뉴에 스팸이 들어가는 레스토랑’의 이야기를 방송합니다. “스팸, 스팸, 스팸, 콩 스팸을 주세요.”(손님) “콩이 떨어졌어요. 스팸, 스팸, 스팸, 스팸, 스팸을 드세요.”(점원) 1993년부터 ‘스팸 메일’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도 이 방송 때문이라고 합니다(서양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몬티파이튼은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거든요).

2013년 영국의 <비비시>(BBC)는 “한국 사람들은 왜 스팸을 좋아할까”에 관한 특집 기사를 냅니다. 추석 선물로 스팸을 주고받는 게 신기했나 봐요. 비슷한 무렵에 전쟁을 겪었는데 영국 사람은 스팸을 지겨워하지만, 한국 사람은 여전히 좋아하니까요. 부대찌개에 넣어 먹기도 아깝다는 정도로요. 하지만 영국 사람도 여전히 스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스팸을 자작하게 튀긴 영국요리 ‘스팸 프리터’는 우리네 스팸전과 닮았습니다. 오늘날 백여 개 나라로 스팸이 수출됩니다. 율법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곳을 빼면 ‘세계가 즐기는 고기 요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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