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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26 10:07 수정 : 2018.10.26 20:15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냉동육 대 냉장육. 흥미진진한 주제입니다. 영양 차이는 별로 없대요. 안전성 문제는 논란이 좀 있죠. 오래 묵은 냉동육을 신선한 척 속여 팔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합니다. 반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식탁에 오를 때까지 어차피 며칠 걸린다면 차라리 냉동육이 안전하다고도 하고요. 고기 자체보다 고기 유통에 대한 신뢰의 문제겠습니다.

맛의 차이는요? 문제는 숙성과 육즙. 냉장 상태에서는 숙성이 진행되지만, 냉동에서는 아닙니다. 긴 숙성 기간이 필요한 소고기는 냉동육이 불리하겠네요. 한편 육즙은 어떨까요. 고기가 얼었다 녹을 때 그 안의 작은 물방울의 부피가 변합니다. 수도관 동파와 같은 원리죠. 이 과정에서 살코기의 미세한 조직이 파괴되며 육즙이 흘러나온대요, 냉동실에 들어갔다 나온 카레나 찌개가 더 맛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고기구이에는 불리한 점이겠죠. (해동을 기다리는 ‘냉동인간’에게도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냉동 삼겹살만의 조리법이 발달했어요. 육즙이 달아나면 큰일이니까요. 철판에 은박지를 두르고 고기를 빈틈없이 빼곡하게 덮습니다. (소싯적에 고기를 띄엄띄엄 올렸다가 고깃집 사장님한테 혼난 추억이 있어요) 석쇠 구이와 달리 불판에 고인 육즙과 기름으로 고기를 데치는 느낌. 함께 올린 김치와 파절임이 육즙을 머금고 맛있어지지요.

물론 냉장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육즙을 잃을 걱정이 없으니 두꺼운 고기를 불에 바로 올리니까요. 제주에서 유행하던 두꺼운 근고기는 본토에 상륙하여 삼겹살의 개념을 바꿔놓았지요. 어느 쪽이 맛있을까요? 취향의 문제 같네요. 냉동 삼겹살 가게를 다녀온 후 “1980년대 콘셉트의 고깃집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방문할 만했다”고 적은 백문영 음식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추억의 몫도 크겠죠.

“요즘 트렌드는 냉동 삼겹살”이라며 창업을 권하는 말이 있던데, 저는 모릅니다. 아이 보느라 고깃집 가본지 한참이거든요. 빅데이터를 찾아보았어요.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그 책은 ‘구글 트렌드’를 통해 미국 사회를 들여다보았죠. 저는 ‘네이버 데이터랩’의 검색어 트렌드를 들어가 보았어요.

주제어 ‘냉동 삼겹살’, 완만한 상승 가운데 눈에 띄는 두 번의 피크. 첫 번째는 2016년 7월 중순. 무슨 일이 있나 찾아봤더니 이 무렵 <수요미식회>에 냉동 삼겹살 가게가 등장했더군요. 그러나 추세에 영향을 주지 않고 하루 이틀 만에 이전의 지수로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는 2017년 2월12일. 이날 ‘냉동 삼겹살’이라는 말의 검색 지수가 평소의 열 배 가까이 솟구쳐 최고 기록을 찍습니다. ‘삼겹살’이라는 주제어의 검색 지수를 넘어설 정도였지요.

2017년 2월 초, 구제역 발병. 얼마 후 돼지고기 사재기 우려에 대한 보도가 나왔습니다. 검색 지수가 치솟은 것은 그 직후의 일. 축산유통종합정보센터의 누리집에서 날짜별 돼지고기 가격을 확인해봤습니다. 이 무렵 소비자 가격이 출렁인 것은 사실이더군요. 이날 사람들이 냉동 삼겹살을 검색한 까닭은 고깃집을 가기 위해서는 아니었나 봐요.

차가운 냉동 삼겹살이 뜨겁게 유행할 날은 올까요? 검색 지수는 꾸준히 상승하는데요, 기울기가 너무 완만하긴 하네요. 각자 판단하셔야 할 문제 같습니다. 제 취향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두꺼운 냉장 삼겹살도, 추억의 냉동 삼겹살도 모두 좋아합니다. 돼지에게 미안하지만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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