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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19 09:24 수정 : 2018.10.19 09:28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아파트 앞에서 아이와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엘리베이터에 치킨집 사장님이 함께 탔습니다. 상자 안에서 갓 튀긴 치킨의 고소한 냄새가 물씬. 사장님이 치킨을 배달하기 위해 8층에서 내리려고 하자 아이가 따라 내리려고 하더라고요. “아이고, 남들이 보면 집에서 너 굶기는 줄 알겠다, 허허.” 세 돌이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아이를 보며 ‘육식의 대물림’이라는 주제를 고민했어요. 우리는 왜 육식을 할까요? 맛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육식이 불편한 이유는? 죄책감이 드니까요. 술이며 담배며 다른 육체적 쾌락이며, 몸은 즐거운데 마음이 켕기는 일들이 있죠. 이런 일은 대체로 자라서 어른이 된 다음 스스로 결정하는 쪽이 바람직하다고들 우리는 생각합니다. 심지어 종교를 선택하는 일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육식에 대해서만 예외에요. 엄마·아빠처럼 아이도 육식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실제로 우리 집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예를 들어 생각해보죠. 아이가 유대교 신자가 되라고 내가 결정한다면 어떨까요. 이슬람의 ‘할랄’처럼 유대교에는 지켜야 할 음식계율인 ‘코셔’가 있어요. 이를테면 어미의 젖과 자식의 고기를 동시에 먹지 말라는 규칙. 아이는 치즈버거를 먹지 않게 되겠지요. 아빠가 그러라고 결정했기 때문에요. 독실한 신자라면 잘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 주위의 친구들은 왜 그런 결정을 내가 하느냐고 타박할 거예요.

또 예를 들어, 아이가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아빠가 결정한다면? 그래서 집 밖에 나가서도 고기를 먹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잔소리를 한다면? 아마 채식을 고집하는 내 친구들도 내게 핀잔을 줄 거예요. 왜 그렇게 유난을 떠느냐고, 아이에게 못 할 짓이라고, 아빠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아이에게 육식을 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런 논리를 적용한다면 이상한 일일까요? 왜 아이에게 돼지고기를 먹였느냐, 왜 치즈버거를 먹였느냐, 아니 애초에 왜 동의도 안 받고 아이에게 고기를 먹였느냐고 한 번쯤 따져 물을 수 있는 일 아닐까요.

말장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정말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고요. 오늘날의 공장식 축산을 돌아보면 켕기는 부분이 많아요. 가두어 키우는 일도 잔인하고 키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 파괴도 엄청나다죠. 얼마 전 유발 하라리가 공장식 축산을 ‘아주 나쁜 일’이라고 성토했죠. (육식을 즐기는 저로서는 그가 한 말을 옮기지 못하겠네요.) 지금은 세상이 이 문제를 모른 척하지만 다음 세대에는 어떨까요. 아이가 공장식 축산에 기초한 육식의 습관에 왜 자기를 끌어들였냐며 따지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요.

그러나 먼 미래에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를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네요. 당장은 아이가 고기 냄새를 맡고 들뜬 상태. 일단 치킨집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바로 주문하자니 조금 머쓱하더군요.

공장식으로 키운 닭을 먹을 때면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죽은 닭에게도 산 닭에게도 미안한 일이지요. 하지만 또 공장식 축산이 없다면 닭고깃값은 어떻게 될까요. 가난한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요. 당장 치킨집 사장님들은 어떻게 될지도 걱정입니다. 생각이 꼬리를 무는 사이 벌써 치킨이 도착했습니다. 공장식 축산이 없어지면 생길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더 고민해봐야겠군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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