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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05 10:45 수정 : 2018.10.05 21:05

김태권 그림.

김태권 그림.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여름 과일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가을 과일을 맞이할 아름다운 계절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고기와 과일의 궁합에 대해 알아볼까요.

① 배와 육회 : 배와 육회는 사랑받는 조합. 둘 다 차게 먹어야 제맛. 한국 배는 향기가 강하지 않죠. 빵이나 과자에 들어가면 서양 배처럼 향긋하지는 않아요. 반면 서양 배보다 크고 달고 단단해요. 육회의 달고 짠 양념에 밀리지 않고, 고기의 질깃한 식감에 뒤지지 않아요. 배와 물회도 잘 어울립니다. 가자미 물회에 오이 대신 배를 넣어보세요. 시원한 맛이 최고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비리지 않고 물리지 않아요.

② 사과와 부댕 : 사과는 신 과일. 살코기에 숨은 시큼한 맛과 궁합이 썩 좋지는 않아요. 하지만 사과를 익히면 어떨까요. 예전 글에서 프랑스 요리 부댕을 소개했지요. 돼지 피를 창자에 넣어 익힌 프랑스식 피순대죠. 잘 구운 사과를 곁들이면 그렇게 맛있답니다. 크레올이 먹는 부댕에는 숫제 사과를 썰어 순대에 넣어요. 크레올은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을 이르는 말. 유럽계 백인과 현지인 사이의 혼혈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피순대에 사과를 넣는다더라’ 정도로 요약하면 어떨까요. (물론 한국 순대와 굽지 않은 사과는 별로 좋은 조합이 아니더군요.)

③ 멜론과 프로슈토 : 고기와 과일 커플 가운데 가장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멜론과 생햄의 조합이에요. 짠맛도 감칠맛도 강한 생햄. 날고기의 비린 맛도 남아있죠. 돼지고기를 숙성 건조해 만들어요.

프로슈토와 하몬이 대표적인 생햄입니다. 그런데 둘은 다르면서도 비슷해요. 본고장 서양 사람들도 헛갈릴 정도. 두 음식의 차이를 설명하는 기사가 영국과 미국의 언론에 잊을만하면 등장하더라고요. 첫 번째 차이는 국적. 하몬은 스페인, 프로슈토는 이탈리아 음식. 두 번째 차이는 숙성 기간. 하몬이 더 오래 말려 만들어요. 예를 들어 ‘프로슈토 디 파르마’는 열두 달, ‘하몬 이베리코’는 스물네 달에서 서른여섯 달. (하몬 이베리코는 돼지 먹이도 독특해요. 다른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이런 생햄을 빨간 고기와 하얀 지방이 함께 드러나도록 얇게 저밉니다. 잘 자른 생햄은 복어 회처럼 반투명하게 비쳐 보일 정도지요. 여기에 곁들이는 것이 바로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농익은 멜론이죠. 과즙이 흥건한 멜론과 비릿한 생햄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야릇한 조화. 한번 맛 들이면 잊을 수가 없어요. 프로슈토가 하몬보다 촉촉하고 비린 느낌입니다. 그래서 가장 잘 어울리는 고기와 과일 커플로 나는 프로슈토와 멜론을 꼽고 싶어요.

④ 무화과 : 프로슈토와 멜론을 처음 먹어 본 것은 외국에 나갔을 때였어요. 동네 슈퍼에서 가볍게 사다 먹을 가격이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비싸고 사치스럽게 들리지요. 그래서 생햄과 어울릴 과일을 고민해보았습니다. 물이 많은 과일이 잘 어울린다면 복숭아는 어떨까요. 주머니를 털어 시도해봤는데 아쉽게도 수밀도(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맛이 단 복숭아)와 프로슈토는 그렇게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어요. 복숭아의 살짝 신맛 때문에 생햄의 시큼한 맛이 도드라지더군요.

그런데 저는 어느 식당에서 프로슈토에 무화과를 얹어주는 것을 먹은 적이 있어요. 한국산 무화과는 지중해 무화과와 달리 덩치도 크고 물기도 무척 많아요. 무화과 특유의 향긋함도 좋고요, 마침 무화과 철이라 친구가 무화과를 보내줬습니다. 이제 생햄을 싸게 파는 곳을 찾아봐야겠네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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