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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07 10:12 수정 : 2018.09.07 10:17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미꾸라지의 인(仁)에 관하여. 네 가지 이야기.

① 미꾸라지와 드렁허리 : 드렁허리는 미꾸라지처럼 논두렁에 사는 물고기인데 뱀장어처럼 생겼대요. 젊어서 가난으로 고생하다가 늦깎이 공부로 철학자가 된 명나라 사람 심재 왕간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시장에 갔다가 통에 가득 담긴 드렁허리를 보았다. 얽히고 짓눌려 마치 숨이 끊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아래위로 좌우로 앞뒤로 쉬지 않고 움직이자… 드렁허리들도 미꾸라지 덕분에 몸을 움직이고 기운이 통해 살려는 뜻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런데 ‘드렁허리의 목숨을 건진 것은 미꾸라지의 공이지만 그 역시 미꾸라지의 즐거움이기도 했다. …드렁허리가 은혜 갚기를 기대하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송나라 때 철학자 정명도 이후로 ‘인’이란 말은 삶을 향한 의지를 뜻하게 되었어요. 자기도 살고 남도 살고. 삶을 향한 의지는 그 자체로 즐겁다는 뭉클한 이야기.

② 미꾸라지와 메기 : 반대로 미꾸라지가 든 수조에 메기를 집어넣는다는 ‘불인’(不仁)한 이야기도 있어요. 메기는 미꾸라지를 잡아먹는 천적. 미꾸라지들이 달아나려고 버둥거리다가 더 건강하고 잘살게 된다는 주장인데, 사실일까요? 거짓말이래요. 천적 가까이 살아 좋을 일이 없다는군요. 도마뱀은 사냥을 못 나가 굶주리고 곤충은 스트레스를 받아 쉽게 죽는대요. (이상하게도 2·3세 회장님들이 ‘메기 효과’ 이야기를 좋아해요. 본인이 겪을 일이 아니라서 그럴까요?)

③ 추어탕과 추탕 : 지역에 따라 미꾸라지를 갈아 넣은 요리가 추어탕, 갈지 않고 통으로 넣으면 ‘추탕’이라 부르고요. (얼얼한 입맛을 위해 넣어 먹는 가루 이름이 제피냐 초피냐 산초냐 역시 논란거리입니다.) 먹을 때 미꾸라지가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 추어탕의 ‘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미꾸라지의 몸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일어나 먹지 못한다는 쪽이 ‘인’일까요? 또는 먹는 사람 마음 편하겠다고 형태도 알아보지 못하게 갈아버리는 쪽이 ‘불인’일까요? “제 손으로 키우던 닭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와 더불어, 남의 살을 먹을 때마다 부딪치는 낯익은 문제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만.

④ 미꾸라지와 두부, 잔인한 요리법 : 냄비에 찬물을 붓고 살아있는 미꾸라지와 두부 한 모를 넣는대요. 물을 끓이면 미꾸라지가 살고 싶어서 그나마 덜 뜨거운 두부로 파고든다는군요. 미꾸라지가 송송 박힌 두부를 나중에 썰어 먹는다는, 잔인한 레시피. 미꾸라지의 살려고 하는 의지를 인간이 악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요리법 역시 거짓말. 실제로는 미꾸라지들이 두부를 파고들지 않고 냄비 뚜껑을 들이받고 뛰쳐나오거든요. 나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까요. 어릴 때 크게 아팠습니다. 집 앞 시장에서 어머니가 “훌륭한 보양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꾸라지와 두부를 사 오셨지요. 그러나 삶의 의지가 넘치던 미꾸라지들은 양은냄비를 뒤집고 튀어나와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어놨습니다. (사실은 어린이의 호기심으로 ‘정말 파고드나’ 확인하고 싶었던 나의 잘못일 수도 있고요. 어머니 죄송해요, 그때 내가 뚜껑을 살짝 열어봤어요.)

‘인’은 옛날에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틋한 마음을 뜻하는 말이었대요. 가족을 먹이기 위해 살아 있는 미꾸라지를 삶고 짐승의 목숨과 살코기를 빼앗는 일은 ‘인’일까요, ‘불인’일까요? 육식이 던지는 어려운 질문입니다.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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