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30 10:07
수정 : 2018.08.30 10:10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닭도리탕이냐 닭볶음탕이냐, 음식 이름을 둘러싼 격렬한 싸움의 현장입니다. 역사적인 전투 ‘짜장면 대 자장면의 싸움’ 못지않지요. ‘도리’라는 말이 갈등의 핵심. 닭볶음탕을 미는 쪽은 ‘도리’란 ‘새’를 뜻하는 일본어 ‘토리’라고 주장하고, 닭도리탕을 지키는 쪽은 이 주장이 억지스럽다고 반대합니다.
모르겠어요. 닭‘새’탕이라 부를 이유가 없는데 굳이 일본어 ‘토리’를 썼을까요. 반면 ‘토리’라는 단어가 굉장히 익숙한 말이었던 것도 사실. 1980년대만 해도 포장마차에 별 설명 없이 ‘야키도리’가 차림표에 붙어 있었죠. 한편 ‘닭볶음탕’이라는 말은 이상합니다. 원래 볶음요리가 아니니까요. 따지자면 탕도 아니고요. 일단 닭아무탕이라 불러볼게요.
프랑스 음식 코코뱅하고 닮았어요. 뭉텅뭉텅 닭을 잘라 포도주로 졸인 요리 코코뱅. 당근과 감자를 잘라 넣어 푹 졸인 맛이 의외로 닮았어요. 코코뱅의 검붉은 색과 닭아무탕의 붉은 국물도 어두운 부엌 불빛에 보면 비슷해요. 둘이 닮은꼴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나는 내가 독창적인 생각을 한 줄 알고 제법 우쭐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제법 있으시더라고요. 아쉽네요.
양념은 다르지만 찜닭도 비슷한 맛이 납니다. 단맛과 짠맛이 강하지만 사실 매운 음식이기도 하죠. 고추와 마늘을 듬뿍 넣으니까요.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던 ‘콜라 닭’도 있습니다. 코코뱅에서 포도주를 빼고 콜라를 넣었다고 할까요. 직접 먹어보니 코코뱅과 콜라 닭은 딱 와인과 콜라만큼 차이가 나더군요.
닭을 조릴 때는 탄수화물을 곁들여야 제맛. 당면이 없는 찜닭은 생각하기 힘들 정도죠. 달고 짠 당면이 먹고 싶어 찜닭을 먹는 날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역시 닭아무탕도 찜닭도 코코뱅도 감자가 들어가야 합니다. 제주에서는 감자를 지슬이라 부르는데요, 뭍의 감자보다 맛이 진해요. 그래서인지 제주시에서 먹어본 닭아무탕이 나는 제일 맛있었어요. 특이하게 김도 잘라 넣어주었는데, 밥을 비벼 먹으니 궁합이 좋더라고요.
닭아무탕이나 찜닭이나, 국물이 밥도둑입니다. 짠맛과 단맛과 닭 껍질의 고소한 맛과 살코기의 감칠맛이 밥맛을 돋우지요. 그러고 보니 일본 음식 닭고기 달걀덮밥도 생각나네요. 흰 쌀밥을 일본 특유의 달짝지근한 국물에 적셔 달걀과 달콤한 양파를 듬뿍 얹어 입에 넣는 것을 나는 좋아합니다.
닭고기 달걀덮밥의 일본 이름은 오야코동. ‘오야’(親)는 어버이, ‘코’(子)는 자식, ‘동’(?)은 덮밥. 어버이는 닭이고 자식은 달걀을 뜻하지요. 먹히는 쪽에서 보면 잔인한 농담. 그런데 인간은 이런 농담을 해야 마음이 편해지나 봐요. 정육점에 소가 웃는 얼굴을, 돼지고깃집에 돼지 가족을 그려 붙이잖아요. 생명을 빼앗고 살을 뜯는다는 육식의 불편함을 잊기 위해 이러는 것일까요?
닭아무탕이나 코코뱅에는 가슴살 같은 몸통 부위도 많이 들어갑니다. 살코기가 맛있어야 요리도 맛이 있지요. 이것은 전에도 다루었던 주제인데요, 닭의 살코기 맛을 따지다 보면 공장식 사육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동물권이라는 주제를 건드리게 됩니다. 우리 대부분은 닭고기를 즐기지요. 그런데 닭도 조금이나마 덜 불행하고 인간도 닭고기를 더 맛있게 먹을 사육 방법이 있어요. 문제는 비용. 닭값이 오르면 닭고기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확 줄어들 겁니다. 두고두고 짚어봐야 할 이야기입니다.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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